'간신' 연산군 김강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간신> 속 김강우를 보고 많이 놀랐다. '국민 형부'라는 애칭으로 불린 그는 없었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충격이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간신> 속에서 김강우만의 연산군을 만든 그를 만난 소감을 주관적으로 말하면,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로 분했던 히스레저를 만났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김강우는 <간신>의 공식 석상에서 거듭 '연산군' 캐릭터에 대해 가졌던 욕심을 전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햄릿'과 같은 캐릭터를 찾는다면 '연산군'이라고 생각했었다고. 그래서 언젠가 한 번 만나리라 믿었었고, 그 때문에 더 몰입했다. '연산군'을 준비하던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눈빛은 달랐다.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일단 비슷한 인물을 찾게 되잖아요. 그런데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국 역대 연쇄 살인마들을 심문하는 동영상을 봤어요. 그리고 히틀러가 군중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을 구해서 봤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요. 그래도 안 풀려서 나중에는 동물들을 봤어요. 이빨을 드러낸 짐승. 홀로 고독하게 걷는 표범, 사슴의 목을 물고 있는 수사자, 먹이를 집어삼킨 독사 이런 것들을 집에 붙여놨어요."

김강우의 집에 어린 아들들은 들어갈 수 없는 방이 생겼다. 앞서 언급한 동물들부터 나체로 구르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여체를 붓 처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 행위예술을 하는 사람 등 김강우의 표현을 빌리면 "입이 떡 벌어질만한 이미지들"이 그 방 벽에 붙었다. 책도 많이 집었다. 책 속에는 같은 연산군이 극과 극의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져있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정답도 없고, 그냥 저는 뭐 하나라도 잡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실밥 하나 찾으면 찾기 시작한 거지. 책을 백 권 읽었다고 잘한 것도 아니고요. 준비하는데 정말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우선 혼자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일주일간 홀로 지냈어요. 방을 깜깜하게 해놓고 마음 내킬 때 즉석 밥과 배달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어요. 연산군이 새벽 3시에도 신하들을 불러서 술을 마시고, 밤에 사냥을 나가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여튼 엉뚱해요. 그 패턴을 가보고 싶었어요. 혼자 지내며 시도 쓰고, 아침에 술도 마시고."

5일간을 소득 없이 지냈다. 그리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깨달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 왜 이렇게 했느냐고 했을 때, '당신은 살아본 적 있어?'라고 하면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역사에 기록된 글을 각자의 지식과 덧붙인 상상으로 인물이 그려지는 거잖아요. 그다음부터 술술 풀렸어요. 역사학자들이 나를 공격하고, 제 전작과 비교하고 이런 것에 대한 부담감 속에 틀에 갇혀있던 게 풀린 거죠."

그는 '연산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산군'은 실제로도 예술적인 성향이 강했다. '연산군'이 생전에 탈을 쓰고 처용무를 추면 이를 보는 여자들이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김강우는 '똑똑하고 끼도 있는데, 나라를 위해 조금만 일했어도 문화를 꽃피울 왕으로 기록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했어요?'라고 물었다.

"저는 '연산군'을 앤디 워홀이나 백남준 씨를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만약에 이 사람들이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저는 전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 같아요. '연산군' 처럼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 같아요."


이 정도 대화를 나눴을 때, 살짝 걱정됐다. 여전히 '연산군'에 빠져나오지 못한 눈빛이었다. 김강우는 "저는 되게 캐릭터에 잘 빠져나오는 편"이라며 "주로 작품이 끝나면 전 여행을 가요. 햇볕 좀 쬐고 물에 들어가면 금방 잊히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연산군'은 좀 달랐다. "바로 작품에 들어갔어요. 너무나 이성적인 역할을 맡았죠. 그런데 미치겠더라고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도 방에 붙여놨던 이미지들을 떼지 못했어요. 한 번 더 확인하고 떼야 할 것 같아요."

지금 38세라는 김강우는 30년 쯤 더 연기하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말하며, 아마도 무궁무진한 캐릭터들을 만나지않겠냐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은 한 남자라고 말했다. 그 말에 살짝 걱정의 마음을 내려놓았다.

"저는 배우잖아요. 직업이 배우예요. 배우로 흥행하고 좋은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죠.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는 두 아이의 아빠고 한 가정의 가장이에요. 어느 게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한쪽의 무게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면 하지 말아야 할 일 같아요. 두 가지 일이 잘 병행이 되어 좋은 가장이고, 좋은 아버지라는 얘기도 더 듣고 싶어요.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38살의 잘 살아가는 남자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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