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타리뷰] 주지훈-김강우-임지연 '간신', '야하다'부터 '아프다'까지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파격적인 요소가 참 많은 영화다. 조선 팔도에서 1만의 미녀를 강제 징집해 왕에게 바친다는 설정부터, 최고의 흥청이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연산군(김강우)의 어명까지 모든 것이 파격이다. 볼 때는 '야하다'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본 후에 남는 여러가지 생각은 참 '아팠다'.

영화 <간신>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에 적힌 "임숭재와 임사홍을 전국 각지에 보내고 채홍사라 칭하여 아름다운 계집을 간택해 오게하라"라는 글에서 시작한다. 실제 역사적 사건에 기반해 채홍된 1만 여인에 영화적인 상상력을 보탰다. 1만 여인이라는 말이 의자왕과 함께 뛰어내렸다는 3천 궁녀처럼 그 엄청난 수와 비명 소리가 마치 신화적 상상력인 것 처럼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간신>은 보다 참혹하고 사실적으로 이를 다룬다. 물론 자극적인 측면도 있다. 연산군(김강우)의 말은 법이었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운평(채홍된 여인)들은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했다. 이들은 왕을 즐겁게 해줄 가무 뿐만 아니라 잠자리에서 왕을 모시기 위한 기술 또한 익혔다. 앵무새 피로 처녀와 아닌 자를 가려냄은 물론 수 만가지의 방중술을 익혔다. 채소를 허벅지로 깨는가하면, 얼음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물을 단전으로 받아냈다. 홍시를 혀로 핥으며, 괴이한 체위를 연습하며 자극적이지만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1만 명의 운평 중 왕의 눈에 든 이를 '흥청'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흥청이 된 단희(임지연)와 설중매(이유영)는 최고의 흥청이 되기 위해 연산군(김강우) 앞에 선다. 그리고 연산군은 이 둘에게 서로의 몸을 탐해 먼저 절정에 도달하게 한 사람을 최고의 흥청으로 삼겠다고 어명을 내린다.


임지영과 이유영의 몸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답다. 색(色)과 화면의 미장센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수상연회는 <간신> 속에서 강조되는 적색과 흑색의 대비를 극대화 시킨다. 하지만 이후 귀에 남아있는 말은 "어느 누가 미치지 않고 이 난세를 살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 변신은 한 축의 볼거리가 된다. 고개를 뻣뻣이 든 모습이 잘 어울릴 것 만 같은 주지훈은 최악의 간신 '임숭재' 역을 맡아 왕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채홍의 패를 쥔 간사한 모습과 함께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모습까지 <간신>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의 모습은 부드럽게 이어가는 축이 된다. 또한 훈남의 선한 이미지를 가진 김강우는 연산군을 맡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안면근육까지 바뀐 느낌으로 실감나게 보여준다.

임지연과 이유영의 아름다움은 그녀들이 보여준 '파격'과 더해져 더할나위 없다. <인간중독>과는 다른 시대를 보여준 임지연은 한층 깊어진 연기를 보여준다. 낮은 음성은 '단희'의 묵직한 매력을 더해준다. 반면 이유영은 당돌한 '설중매'의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연민과 질투까지 여린 설중매를 보여준 이유영은 처음 본 관객들을 끌어드리기 충분하다.


<간신>의 연출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1만 미녀를 채홍한다는 것이 굉장히 슬픈 역사적 사건이다. 연산군은 다수의 작품에서 그려졌지만 이는 터부시되며 자세히 그려진 적이 없었다. 실록에 1만 여명의 여인이 잡혀온 기록은 있지만 잡혀온 여인에 대한 기록은 없으니 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 여인들은 가볍게 혹은 에로틱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힘들었다"라는 설중매 역의 이유영의 말처럼 <간신>은 이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영화적인 상상력이 달리 해석되는 부분도 있다. 단희(임지연)와 숭재(주지훈)이 만나는 지점의 감정이다. 단희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숭재의 감정을 사랑으로 보느냐 아니냐는 관객들의 몫이다. 하지만 민규동 감독은 "<간신>의 시작부터 끝까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 두 사람의 감정을 죄의식이라고 생각했다. 숭재는 자신의 아버지(천호진)이 단희의 아버지 '김일손'을 밀고한데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후에 전혀 다른 관계로 만나 이뤄질 수 없는 사이가 됐다는데 연민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신>을 보면 흥청과 망청에 서린 1만 여인의 피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흥청과 망청을 구분짓는 것들에 대한 허망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당시 처럼 현재를 사는 이들도 여전히 힘들다. 어떤 의미에서의 '난세'는 현재에도 이어진다. 그래서 관객들이 <간신>을 보는 다양한 시선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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