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0.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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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 신원호 PD 서면인터뷰 / 사진: tvN 제공

Q. 시즌제 드라마를 처음 연출했는데, 시즌제의 장단점에 대해 느낀 바가 있나.
시즌제의 가장 큰 강점은 내적 친밀감 아닐까 싶다. 모든 드라마가 마찬가지겠지만, 제작진에게 가장 큰 숙제는 1회다. 1회에서 드라마의 방향성과 캐릭터들을 효과적으로, 지루하지 않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늘 큰 고민인데, 시즌제에선 시즌1을 제외하고는 그 고민을 생략하고 시작할 수 있다.
기획을 할 때 예상을 했었던 부분이긴 해도 이 정도로 큰 강점으로 올 줄은 몰랐었다. 제작 단계에서도 편리하다. 캐스팅이며 로케이션이며 세트며 소품이며 의상이며 모든 면에서 각기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을 보충하는 것 외에는 이미 세팅되어 있는 부분들이 많다 보니 준비 기간도 어마어마하게 단축된다. 그래서 중간에 '하드털이'도 할 수 있었던 거고… 어쨌든 여러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고도 영리한 형식인 건 확실하다.
![[픽터뷰②] 신원호 PD "3년 동안 '슬의생' 생각만…이젠 쉬고 싶다"](https://pickcon.co.kr/site/data/img_dir/2021/10/07/2021100780164_1.jpg)
이제 주 2회 드라마는 다신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2개씩 했었던 전작들은 어떻게 해냈던 건지 지금으로선 상상도 안 간다.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공히 피부로 체감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현장의 피로함이 줄어드니 그 여유가 결국 다시 현장의 효율로 돌아오게 된다. 그 점이 주 1회 드라마가 가진 최고의 강점 아닐까 싶다. 매회 그 어려운 밴드곡들을 위해 연기자들에게 그렇게 여유 있는 연습 시간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도 주 1회 방송이라는 형식이 준 여유 덕분이다.
![[픽터뷰②] 신원호 PD "3년 동안 '슬의생' 생각만…이젠 쉬고 싶다"](https://pickcon.co.kr/site/data/img_dir/2021/10/07/2021100780164_2.jpg)
기다리시는 입장에서는 마치 12회를 끝나고 13회를 1년 동안 궁금해하며 기다려야 하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어떤 보상을 좀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하드털이'를 시작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라는 매체를 실질적으로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5~10분 사이로 짤막하게 하고 싶었는데, 하면 할수록 분량이 늘어나고 점점 더 꼼꼼하게 체크하게 되고 하다 보니까 갈수록 예능 할 때만큼이나 힘들었었다. 나중에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근데 한편 너무 재미있었다. 십 년 만에 예능을 하는 셈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내가 십 년 만에 자막을 뽑을 수 있을까, 예능 버라이어티 편집에서 자막을 뽑는다는 일 자체가 핵심이라 예능 감이 떨어져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예전에 그 세포들이 다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사실은 힘든데 되게 재미있었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 할 때보다 더 즐기면서 했던 것 같다.
![[픽터뷰②] 신원호 PD "3년 동안 '슬의생' 생각만…이젠 쉬고 싶다"](https://pickcon.co.kr/site/data/img_dir/2021/10/07/2021100780164_3.jpg)
슬기로운 캠핑생활의 경우는 정말 순수히 배우들로부터 시작된 콘텐츠였다. 시즌2 준비 과정과 겹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그렇게 단순하고도 순수하게 콘텐츠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 그렇게 순수한 진심으로 만들면 큰 기술 없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우연한 콘텐츠 하나가 '출장 십오야' 같은 다른 줄기로도 충분히 확장되어 갈 수 있다는 점들을 목격하면서 수년간 쌓아왔던 많은 편견들을 스스로 깨트릴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픽터뷰②] 신원호 PD "3년 동안 '슬의생' 생각만…이젠 쉬고 싶다"](https://pickcon.co.kr/site/data/img_dir/2021/10/07/2021100780164_4.jpg)
환자와 보호자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애초에 기획했던 것은 정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주된 축이었기 때문에 할 얘기, 에피소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마치 우리 일상이 오늘 지나면 또 내일의 이야기가 있고, 내일 지나면 모레 이야기가 있듯이 구구즈의 일상도 무궁무진할 것이다. 다만 시즌제를 처음 제작하면서 쌓인 이런저런 고민들과 피로감들이 많다 보니 그 이야기를 다시금 이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픽터뷰②] 신원호 PD "3년 동안 '슬의생' 생각만…이젠 쉬고 싶다"](https://pickcon.co.kr/site/data/img_dir/2021/10/07/2021100780164_5.jpg)
멀티 캐릭터들의 드라마는 사실 길어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고정 캐릭터가 등장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다 보니까 분량이 길다.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무르익다 보면 호흡이 길어지기 마련인데, 이게 시즌2까지 이어지다 보니 그 감정과 호흡이 더욱 깊어져서 짧게 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작품에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Q. 시청률은 이전 시즌보다 높았지만, 몰입도가 약하다는 평이 있다.
몰입도가 약하다고 느끼시는 건 아마도 시즌1과 시즌2가 큰 사건 없이 비슷한 리듬으로 전개되는 일상물이라 그런 것 아닐까 짐작해 본다. 저희도 시즌제를 처음 시도하면서 스스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이런저런 반응들 모두 기억하고 치열하게 고민해보겠다.
![[픽터뷰②] 신원호 PD "3년 동안 '슬의생' 생각만…이젠 쉬고 싶다"](https://pickcon.co.kr/site/data/img_dir/2021/10/07/2021100780164_6.jpg)
시즌제를 처음 시도해 보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고민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려면 우리에게 쌓인 여러 고민들이 해소되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 거기에 시즌제가 주는 피로감이 유난히 크다. 지난 3년 동안 제 검색창은 항상 '슬기로운 의사생활'만 있었을 정도로 3년이라는 시간이 모두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꽉 차 있었다.
3년 내내 그 작품 하나만 생각하면서 살아야 되는 게 너무 피로감이 쌓이더라. 콘텐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만약에 똑같은 기간에 똑같은 노동량을 들이더라도 중간에 다른 작품으로 리프레시 하고 다른 신경을 쓰고 다른 뇌를 쓰면서 살았으면 피로감이 훨씬 적었을텐데 한 작품만을 신경 쓰고, 오로지 그 캐릭터들과 관계들을 신경쓰면서 살다보니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일단은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