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배우 강동원 / 쇼박스 제공


“제 나이가 서른 중반인데, 소년 역할을 하라니..감독님도 고집이 있으시더군요.” 영화 <가려진 시간>의 성민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이 한 말이다. 신인감독 엄태화는 자신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에 강동원을 출연시키기 위해 당시 <검사외전>(감독 이일형) 촬영이 한창이었던 부산을 내려갔다. 제작자인 윤종빈 감독이 엄태화 감독과의 친분으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던 강동원은 “해보고 싶다”고 그 자리에서 정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단다. “며칠 시간을 두고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에 올라와서도 역시나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감독님께 같이 하자고 하니 굉장히 좋아하셨죠. 막상 찍어 보니 잘하시더군요, 후훗!”

영화 <가려진 시간>은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며칠 만에 어른이 되어 나타난 '성민'(강동원 분)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소녀 '수린'(신은수 분) 사이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감성멜로. 개봉을 앞둔 주연배우 강동원을 삼청동 부근 카페에서 만났다.

극 초반, 아역들의 눈부신 (연기) 활약이 돋보인다는 평가. 어린 성민(강동원 분) 역의 이효제를 두고 강동원은 “닮지 않았다”고 웃으며, “효제는 굉장히 차분하고 말도 별로 없는 데, 어릴 적 제 모습은 엄청난 개구쟁이에 운동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달라요.”라고 말했다. 이 작품으로 ‘강동원의 그녀’로 통한 신예 신은수에 대해 그는 “말 편하게 트는 사이 정도요. 대화가 거의 없죠. 촬영장서 연기할 때를 제외하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음악을 주로 듣는 요즘 중학생이죠. 한동안 같은 게임을 은수와 감독님 셋이서 즐겼는데, 제가 가장 못했어요. 그래서 하다가 말았죠.”

막상 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현장에 와 보니 이게 왠 걸? 강동원 자신도 어느새 나이로, 경험으로 보나 베테랑급 선배가 되었다고. “신인감독님에, 프로듀서도 데뷔작인데다, 제작사도 이 영화가 창립작품이었죠. 걱정을 했었죠,. 다행히 촬영팀이 <검은 사제들> 당시 함께 했었고, 분장팀장님도 워낙 유명했고..요즘 한국영화계에 젊은 감독들은 많은데 비해 전문 조감독이 없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이에요. 그래서, 처음 이 영화가 시작될 무렵엔 원활하지 못했어요. 오죽하면 제가 ‘여기 이 세트는 치워야지, 다음 장면에 걸리면 촬영감독님께 혼나요’라고 스태프들을 다독일 정도였죠.(웃음)” 결국엔, 성민의 은둔지가 될 초록이 무성한 숲의 색깔이 변한다며 3월 중엔 무조건 끝내야 한다고 했지만 늦여름까지 촬영을 했던 사연도 들려줬다.

<가려진 시간> 속의 멈춘 시간이 실제로도 일어난다면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다시 돌아가는 거? 끔찍하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어떻게 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상상하기도 싫죠.”라고 웃었다. 그는 또, 언론시사회 후 간담회에서 밝힌 ‘시간이 멈추면 맛집을 찾아 다니겠다’는 것에 더해 “북한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는 것도, 유럽까지 걸어가 맛난 음식을 즐기는 것도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라고 여유로운 상상을 즐겼다. 덧붙여 그는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제 집에 손님이 오면 바비큐도 해주고 꽃게탕도 끓여주거든요. 맛도 괜찮아요”라고 자랑했다.

사진 : 신예 신은수와 호흡을 맞춘 강동원 / 조선일보일본어판DB

극 중 멈춘 시간이 다시 흘러 갑작스럽게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느꼈던 공허함, 허무함, 두려움 등을 한 순간에 표현한 강동원의 감정 연기가 좋았다는 말에 강동원은 “크게 고민은 안 했는데, 공황장애를 겪는다면 ‘이 정도 수준이겠다’라고 이미지적으로 생각했어요. 실제 저 또한 사람 많은 곳에서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어요. 어느 날, 뉴욕의 길거리를 걷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려 쉬어야 하는 경험이 있었죠. 그 당시, 여러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많이 온 기억이 나요.”

11월 16일엔 <가려진 시간>, 다가오는 12월엔 이병헌-김우빈과 호흡한 <마스터>(감독 조의석)의 개봉을 앞둔 ‘열일 배우’ 강동원은 연기 외에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연출을 할만한 탁월한 능력은 안되지만 제작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단다. “요즘 그 분야에 흥미를 많이 느끼고 있어요. 누군가 만들지 않는, 참신한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도 있고요. 전 만드는 걸 좋아해서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보거든요. 충무로에서 이젠 서로 다 아는 사이고..다만, 아직 배우로써 써먹을 것은 남았다는 거죠.”

강동원도 상황에 따라 애드립을 할까. 대답은 “NO”였다. “거의 안 해요. 항상 시나리오에 써 있는 대로 해서 논리적으로 극의 흐름이 맞지 않는 것만 제외하고는 감독님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도 없고 해서 대부분 편안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왜냐, 귀찮게 안 물어보거든요.(웃음) 그런데, 막상 촬영장에 가면 갑작스레 대사를 바꿔오는 상대 배우들이 있어요. 어떻게 하든 상관은 없지만, 다음 제 대사는 나와야 하잖아요. 하하!”

수 없이 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아 온 강동원도 아쉬운 작품은 있었더라. “’형사’(감독 이명세)죠. 흥행 실패는 아닌데, 당시 생각보다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작품이었어요. 다시 찍고 싶죠. 캐릭터에 대해 몰입하는 자세가 뭔지 일깨워주는 영화였죠. 칼 다루는 법은 물론, 콩쿠르 대회도 나갈 수준의 5개월간 하루 10시간 배웠던 현대무용 등등 말이죠.”

영화 <가려진 시간>의 손익분기는 2백만 명. 가을 극장가가 비수기라도 해도 ‘배우 강동원’의 스크린 등장만으로 타 영화가 줄줄이 개봉을 미뤘다는 소식은 그 결과를 더욱 기대케 만든다. 강동원은 “포스터 한 장으로는 이 영화를 설명하기 어렵다”란 말과 함께 늘 그렇듯, 자기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전 여전한 상업 영화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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