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나라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hcosun.com


‘평범’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라는 뜻이다.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2002), ‘동안미녀’(2011), 최근 종영한 ‘운명처럼 널 사랑해’(2014)까지 장나라가 열연했던 작품 속 캐릭터들은 남자에게 사랑받던 착하고 평범한 여자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결국 일어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솔직하고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 대세로 떠오른 이 시대에 진부한 평범녀라니. 하지만 '장나라표 평범녀'는 2014년에 와서도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착한 여자 김미영(장나라)가 초현실 완벽남 이건(장혁)과 원치 않은 결혼으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사를 겪으며 운명 같은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의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결말이 뻔히 보이는 드라마였다.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엔 ‘장나라는 또 평범녀야?’라는 우려 섞인 시선이 분명 있었다. 그 동안 연기했던 평범한 캐릭터들과의 차이점은 물론이고, ‘평범’의 기준을 세우는 것 역시 장나라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왔던 상황이었다.

“글로 볼 땐 ‘평범’이라는 ‘평범’으로 정의되는데 연기할 땐 어떻게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 우려와 달리 시작할 때 시청자께서 미영이를 안쓰러워 해주는 걸 보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했어요. 평범을 어떻게,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방송 전까지 엄청 걱정했거든요. ‘운널사’를 하기로 하고 제작진과 밥 먹을 때 저희끼리 그런 얘기를 했어요. 거절도 못 하는 착한 미영이가 잘못한 걸까, 세상이 각박한 걸까? 현실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착한 친구들이 사랑받고 예쁨 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하고 시작했고 그걸 표현하려고 굉장히 애썼어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김미영은 장나라가 생각해도 ‘어떻게 연기하나’ 싶을 정도로 착해도 너무 착해 이상할 정도였지만, 작정하고 캐릭터를 사랑하고 나니 예뻐 보이고 그 인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장나라가 이해한 김미영을 시청자에게도 고스란히 보여주자는 목표도 그 무렵 세울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 게 현장이 이렇게 좋을 수 없었어요. 감독님 표현을 빌리자면 향후 50년간 나오기 힘든 현장이었죠. 모두 온화하고 애정이 넘치는 현장이 김미영 캐릭터를 만들어줬고, 덕분에 저도 자연스럽게 미영이가 됐죠.”


스쳐 지나듯 보면 다 똑같게 느껴지는 평범한 캐릭터들은 장나라를 거치며 저마다의 색을 가졌다. 캐릭터의 평범함 속에 단 하나의 특별함을 찾는 데는 장나라의 보이지 않는 열정이 깃들여 있었다. 그는 ‘평범녀’나 아니냐를 따지기 보다, 각 캐릭터가 갖는 갈등과 상황에 집중해 같은 유형의 캐릭터라도 다르게 보이도록 애썼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2014년판 장나라표 평범녀 탄생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만, 장나라는 극중 김미영이 견디기 힘든 일들을 계속해서 겪는 상황 설정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미영이가 견디기에 힘든 사건들은 연기하는 저도 세상이 깨지는 것처럼 힘들었어요. 건이의 여자친구가 나타났는데 미영이도 건이가 좋아졌고, 이미 건이의 아이를 가졌고, 죄책감은 있는데 잡고는 싶은, 정말 복잡한 상황들이 한꺼번에 다 들어가 있는 거죠. 거의 멘붕이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미영이가 건이에게 ‘그래도 나랑 같이 있어주지 않을래?’라고 물어볼 때였어요.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들었고, 그 정도의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싶었어요. ‘옆에 있으면 안 되겠니?’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들은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로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상대 배우 장혁의 배려 속에 별 탈 없이 일사천리에 진행됐다. 장나라는 “부부 연기할 때 곤란할 때가 있어요. 팔짱을 낄 때 어색하면 정자세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끼면 몸을 기대잖아요. 실제처럼 연기할 땐 그런 느낌이 중요한데 장혁 오빠는 다 받아주셔서 편했어요”라며 장혁과의 완벽 케미를 자랑했다.

특히 태교교실을 찾은 이건이 아내 김미영의 가슴 마사지를 해줘야 하는 장면은 눈빛만 봐도 통한다는 장나라와 장혁의 열연 끝에 화제의 명장면으로 탄생했다. 극중 이건과 김미영이 예상치 못한 가슴 마사지 교육에 당황한 것처럼 장혁과 장나라도 19금 수위(?)에 놀라 자연스럽게 상황에 이입된 것. 장나라는 “아름다운 모습인데 코앞에서 보기 힘들었어요. 그 장면 찍을 때 많이 당황했는데 다행히 잘 나온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시간에 쫓겨 연기하기에만 바빴던 10여 년 전 ‘명랑소녀 성공기’ 때와는 달리 이번 ‘운널사’를 하면서 장나라와 장혁은 작품 얘기를 많이 나누며 합을 맞춰나갔다. 작품이 끝나고 나서는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저는 주로 형님이라 부르고, 형님은 제 이름을 부르거나 의동생이라 불러요. 사실 지금은 대화하면 순간순간 어색할 때가 있어요. 둘이 성격이 비슷하거든요. 이번에 연기하면서 제가 갖고 있지 않을 걸 형님이 정말 많이 갖고 계셔서 제가 의형제 맺자고 했어요. 콕 찍어 말하긴 어렵지만, 저와 다른 눈빛과 캐릭터 해석 방식 등 탐 나는 게 많더라고요.”


남자 선배를 오빠 또는 선배 대신 ‘형님’이라 부르는 장나라는 “저랑 3일만 살아보면 아실 거예요. 재미없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제가 연기하는 게 감사하고,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요”라며 인터뷰 내내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 말했다. 다수가 말하는 ‘비슷한 캐릭터만 했기 때문에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도 그 자신은 예전에도 지금도 전혀 없다. 오히려 변신에 실패하면 장점이 반감되고 무리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장나라가 이 작품 하는구나.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볼까’라고 천천히 지켜보면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은 있다고 했다.

“20대 초반엔 엄청 조급했어요. 두 작품밖에 안 했는데 맨날 똑같은 것만 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죠. 지금은 연기를 계속 하리라고 생각하니 여유로워졌어요. 앞으로 미혼일 때 빛을 발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하지원 선배의 ‘다모’를 인상 깊게 봐서 다모 역이나 고현정 선배의 ‘히트’처럼 에너지 넘치는 역할을요. ‘추노’ 대길이 같은 역이나.(웃음) 결혼을 한다면 결혼하고 나서 얻는 감정이 유리할 수 있는 역할을 중점적으로 해보고 싶은데 고지를 두진 않아요. 한계 없이 계속 뚫고 가고 싶어요.”

“20대 초반에 어렵게 생각했던 일들을 지금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니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던 장나라에게서 포근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데뷔 13년 차 임에도 여전히 자신은 천천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앞으로 보여줄 모습이 무궁무진하다 말하는 장나라의 새로운 매력들을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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