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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일하게 될 것 같아."

배우 이정재는 요즘 느낌을 묻는 후배 배우 유아인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정재의 말처럼 완전히 다른 세상이 도래했다. 서서히 변화할 수도 있었는데,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이를 앞당겼고, 재촉했다. 사람들에겐 거리가 필요했고, 극장과 방송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OTT(Over The Top의 줄임말로,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급부상했다.

올해 눈물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보자.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 곳은 '극장'이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억 2천 6백만 명에 달했던 국내 관람객은 지난해 5천 9백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고,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예상된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간한 '2021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2020년 한국 영화시장 극장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가 감소한 5104억 원을 기록했다. 한국상영관협회를 비롯한 영화업계는 결국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영화업계 정부지원 호소 결의 대회'를 개최하며 극장 영업시간 제한 해제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방송가의 풍경도 달라졌다. 일단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은 연예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방송인 유재석(12월 13일 확진)의 확진으로 MBC '놀면 뭐하니?'의 '도토리 페스티벌' 일정이 뒤로 연기됐다. 그리고 가수·배우 김요한(11월 13일 확진) 소식은 드라마 '학교 2021'의 첫 방송을 미뤄졌다. 이외에도 연예인들의 확진 소식은 이어졌고, 뒤따르는 스케줄 변동은 피할 수 없었다. 그 속에서 가수·배우 로운, 가수 임창정 등이 백신 미접종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민폐"라는 입장과 "개인의 자유"라는 입장이 맞섰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이제 팬데믹이 바꾼 환경에서 더욱더 드높아진 K-콘텐츠의 위상을 말해보자. 사람들 간의 거리에서 급부상한 OTT를 통해 국내에서 주로 소비되던 드라마와 영화 등이 앱 하나로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게 됐다. 특히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된 시리즈는 스토리 전개, 연출, 연기, 음악 등 다방면에서 완성도 높은 영상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오징어 게임'은 대표 주자였다. 말 그대로 열풍이었다. 지난 9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게임 등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놀이와 돈을 위해 냉혹한 게임에 뛰어든 어른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역대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가장 많은 구독자가 시청한 시리즈에 등극했다. 글로벌한 수상 행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2021 고담어워즈에서 '최우수 장편 시리즈'에 해당하는 '획기적인 시리즈-40분 이상'의 트로피를 안았고,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후보에도 올랐다.

'오징어 게임'이 끝이 아니었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난 10월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네임'은 일일 넷플릭스 월드 차트에서 3위에 이름을 올렸고, 11월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다시 일일과 주간 넷플릭스 월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사진 : 넷플릭스 제공


그 도약에 배우들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OTT라는 바다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도에는 배우들의 새로운 도전도 뒤따랐다. 먼저 황동혁 감독은 이정재의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기훈' 역에 캐스팅했다고 했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홀어머니에 얹혀살며 딸의 생일 선물을 살 돈을 도박으로 날리는 기훈의 모습을 '수트의 레전드' 이정재가 보여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런' 이정재가 '기훈'으로 있어 줬기에 '오징어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은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도전은 이정재뿐만이 아니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D.P.'에서 호열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구교환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미 영화 '반도', '모가디슈',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아신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 이전에는 다수의 독립영화에서 감독하고 연기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던 배우였다. 이 이상으로 헐렁할 수 없을 것 같은 구교환의 모습은 'D.P.' 호열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오게 했다.

배우 한소희의 '마이 네임' 속 도전도 눈에 띈다.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네임'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박희순은 "한소희가 근육량만 10kg 증량했다"고 남다른 노력을 전했다. 이후 한소희는 "근육뿐만 아니라, 지방도 포함돼 있을 거다. 잘 먹고, 잘 운동하다 보니 10kg가 쪘다"라고 정정했다. 하지만 '예쁨'을 뒤로하고 '지우'에 빠져서 연기한 한소희의 연기는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덕분에 지우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조직에 들어가 위장 경찰 생활을 하는 가장 독하고, 가장 뜨거운 캐릭터로 탄생했다.

배우 유아인과 김현주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도전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유아인은 신흥 종교 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 역을 맡아 당일 받은 A4 2장 분량의 대사를 소화해내며 몰입감을 높였다. 김현주는 민변호사 역을 맡아 액션 스쿨에서 3개월 이상 훈련을 거치며 액션 도전에 나서기도 했다.

사진 :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애플TV+, 디즈니플러스, 티빙 홈페이지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닥터 브레인'에서 세원 역을 맡은 이선균은 OTT 시리즈 작업의 차별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장점을 혼합한 게 OTT 드라마가 된 것 같다. 연속적인 시리즈물로 간다는 건 드라마의 장점이고, 시간을 갖고 후반 작업을 거쳐 완성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영화적 장점인데 이 둘을 잘 혼합해서 작업한 것 같다"라고 기존 작업과의 차별화된 점을 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 그리고 무한한 내공을 가진 배우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과감하게 자신의 몸을 내던지고 있다.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는 오래전부터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지지하는 평단과 산업 안에서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한국 영화에 관심이 없던 시절부터 영화인들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왔다. 그런 시도들이 모이고 모여서 세계 시장에 균열을 내고 한꺼번에 쏟아져 지금 같은 상황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을 만들 때도 "가장 모험이라고 생각한 작품"이라며 "모 아니면 도, 망작(망한 작품) 아니면 걸작"이라는 소리를 예상하고 만들었다고 했다.

꿈틀꿈틀 움직이던 한국 콘텐츠가 OTT라는 '새로운 바다'를 만났다. 가장 먼저 한국에 상륙한 넷플릭스, 국내 플랫폼 웨이브, 왓챠, 티빙을 비롯해 올해 상륙한 애플TV+, 디즈니플러스, 그리고 오는 2022년 국내 런칭을 예고하는 HBO MAX 등 더욱 그 바다는 넓어질 예정이다. 그 세계에서 어떤 새로운 K-콘텐츠의 자리를 잡게 될까. 더불어, 그 새로운 항해에 엔진이 되어줄, 밑바탕이 되어줄 영화와 극장을 지키기 위한 관심과 지원 역시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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