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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주연, 김우빈의 나쁜여자? "오히려 좋게 들려요"
스크린이지만, 김우빈에게 "야, 주둥이 갖다 대"라고 명령하는 여자. 또, "네가 날 사랑했으면 또 얼마나 사랑했겠니"라며 김우빈을 쿨하다 못해 싸늘하게 보내는 여자. 눈길이 안갈 수 없었다. 하지만, '치호'에게 아픈 사랑을 알려준 '은혜' 역의 정주연은 환한 미소와 다소곳한 자태로 인터뷰장에 등장했다.
정주연을 검색해보면 알 거다. 우리에게 낯선 신인 여배우가 아니다. 지난 2010년부터 드라마 '폭풍의 연인', '오로라 공주', '태양의 도시'에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다만 영화 <스물>에서 연기 지망생 '은혜'로 등장하는 정주연이 전작과는 다른 행보라 낯설 뿐이다. 하지만 정주연은 '은혜'와 자신이 이질감이 없어서 쉽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은혜가 겪는 고충이나 이런 건 저도 아직 신인이라고 생각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상황을 직시하며 다가갔어요. 이병헌 감독님께서 '은혜는 가장 성숙해 보이지만 미성숙한 선택을 함으로써 아직 스무 살이구나, 아직 어리구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하셨어요. 성숙한 부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려운 건 없었어요. 아무래도 욕도 좀 하고, 세게 나오지만 그전에도 센 캐릭터들을 많이 해서 그 부분도 크게 무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마지막에 은혜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그것에는 좀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관객분들이 오해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걱정과 달리 <스물>을 본 관객들은 은혜의 선택을 보며,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판단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대신 관객들은 "근데 이 배우 누구지? 신선하다"라는 반응들로 관심을 대신했다. 정주연은 그 관심에 감사함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 역시 '은혜' 역을 해낸 정주연에게 칭찬을 이어갔다. "굉장히 임팩트 있었다, 강렬했다라고들 하셨어요. 마냥 예쁜 캐릭터보다는 제가 조금 예상외의 대사들을 많이 했다는 것에 놀라시더라고요. 주변 분들은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감칠맛 나게 했냐'고 하시고요."
<스물>로 정주연은 '나쁜 여자'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정주연은 감사하다. "저는 오히려 센 게 좋아요. 너무 순둥이 같거나 착해 보이기만 하면 매력 없잖아요. 나쁜 여자라는 말이 개성과 캐릭터가 뚜렷하다는 얘기로 들려서 오히려 좋게 들리는 것 같아요. 예쁘고 순하고 이런 분들은 많잖아요. 그런 분들보다는 경쟁력이 조금 더 있지 않나 싶어요. 저는 '여배우가 멋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거든요."
정주연은 <스물> 속 '은혜'로 나쁜 여자였고 미성숙한 선택을 했지만, 자신의 판단에 도망치지 않았다. 그가 꿈꿨던 말처럼 '멋있었다.' 정주연은 '은혜'를 멋있게 만들어 준 것에 김우빈에게 고마움을 돌린다. 치호와 은혜의 이별 장면을 찍을 때는 그의 2, 3번째 촬영이었다. 호흡을 많이 맞춰본 상태가 아니었다.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영화로 나온 것 보니 (김)우빈이가 워낙 잘 살려줘서 제가 덤덤하게 표현한 부분도 오히려 잘 살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저한테 '감정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라고 하셨거든요. '화양 연화'의 장만옥 씨가 하신 연기처럼요. 정말 덤덤하지만 거기 느껴지는 슬픔과 애잔함 등 여러 가지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제가 하다 보니 너무 덤덤하지 않았나, 감정 전달이 안되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편집이 되고 (김)우빈이가 잘 해줘서 제가 한 부분도 잘 보여진 것 같아요."
명장면으로 꼽는 장면은 치호가 버스정류장에서 은혜의 얼굴에 점을 그리는 장면이다. 당시 전광판에 크게 붙여진 '은혜'의 모습은 에필로그로 나오지만 실제로 포스터 촬영을 거쳤다. 감독은 '은혜가 자기가 원하는 광고도 찍고 한 발짝 나아갔지만, 행복하거나 만족감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은 공허하고, 쓸쓸한 모습을 주문했다.
"저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데 치호가 점을 찍는 게 잘 매치가 될까 싶었는데, 오히려 그런 상반된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슬프면서도 웃겼던 것 같아요. 그래도 현실적이잖아요. 둘이 다시 촬영현장에서 만난다거나, 치호가 저를 보면서 눈물짓거나 그랬다면 영화가 무거워지거나 비현실적일 수 있는데, 점을 찍는 치호가 캐릭터를 잘 보여주면서도 너무 재밌었어요."
'은혜'는 <스물>에서 사랑보다 일을 선택했다. 좀 더 빠르고 쉽게 가기 위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정주연의 '스무 살'에도 조급함이 있었다. 일에 대한 목표치에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었다. 일을 시작했는데 뭔가 딱 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은혜'와는 달랐다. 정주연은 현장이 좋았다. "저는 시작하자마자 연기를 하는 게 재밌었고 현장이 신기했어요. '내가 TV에 나오네?' 이런 점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건국대학교 영화과에 입학해서 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창시절도 보냈다. 학교 워크숍에 참여하며 친구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게 재밌었다. 캠퍼스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빠른 길보다 더욱 소중한 경험이었다.
"연애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천천히 갈 수 있었던 게 그런 과정들이 녹아있어서 연기에도 조금 더 성숙한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제 스무 살을 놓치지 않고 갔던 것에 삶을 살아가면서 큰 의미를 두고 있거든요. 어린 나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았던 게 조금 더 배우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것들을 얻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그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면 어떻게 대처할지도 몰랐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 알 것 같다는 나이가 되니까, 제 생각도 생기고 감성도 깊어지고, 더 겸손하게 되고, 사람과 과정, 호흡에 대한 기쁨과 의미를 찾게 된 것 같아요."
정주연은 <스물>을 통해 많은 것을 받았다. 일단 '내 스무 살이 어땠지?'라는 회상을 하며 그때 나이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던 점이 이전과는 달랐다. 예전에는 캐릭터의 직업과 스타일, 외적인 면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캐릭터가 처한 상황, 그때의 감정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은혜'를 연기하면서도 예쁘게 나오려는 것을 포기했다. 거의 노 메이크업으로 '은혜'에 순수하게 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주연이 꾸는 꿈은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배우다.
"대중들이 제 연기를 보시고 자연스레 '이 배우 뭐지? 누구지?'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매력적으로 다가가서 대중들에게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는 게 제 숙제겠죠.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 분, 두 분 관심을 두게 되고 그러면서 제 입지가 다져지고요. 제가 느낀 많은 시간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길 바래요. 결론은 롱런할 수 있는, 살아남을 수 있는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