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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터뷰] 유아인, 정답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소리도없이' 던진 화두
배우 유아인은 대답하기 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질문과 대답 사이, 그때도 '음'이라는 나즈막한 소리가 이어졌다. 가다듬고 제대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그는 소리가 없다. 말을 못하는 캐릭터, 비어있는 대사, 그곳을 채운 것은 눈빛이었고, 표정이었고, 숨소리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감독도, 작품 속 인물도, 배우도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스스로의 질문이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독특한 영화이다. 일단 제목처럼 유아인이 연기하는 태인이 말을 할 수 없다. 범죄를 그리지만, 이를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은 범죄조직이 남긴 시체를 처리해주는 일을 한다. 성실하게 시체를 묻고 처리한다. 업무로서는 죽은사람만 대해왔는데, 산사람을 하루만 맡아달라는 의뢰가 왔다. 창복은 이를 어렵게 수락하게 되고, 두 사람은 아이 유괴에 '의도치 않게' 가담하게 된다.
'소리도 없이'는 예산이 작은 영화이기도 하다. 총 촬영 일수가 30일 정도였다고 하니, 다른 상업영화의 1/3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아인에게 '소리도 없이'는 충분히 '큰 영화'였다. 충분히 그렇게 느껴졌다.
Q. 독특한 설정이다. 시체를 처리하는 성실한 두 인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시체를 잔혹하게 처리하는 장르적 특성이 강한 영화는 꽤 있었죠. 범죄자의 하수인, 그 역시 범죄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을 표현하는 태도가 독특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독특한 직업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 수 있는 효과를 극대화하기보다 반대로 그것들을 담담하게 일상의 톤으로, 심지어 코믹하게까지 그려내면서 우리에게 다른 시선을 준다는 점에서 달랐던 것 같아요. 너무 막 노골적으로 사회를 고발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막 아름답고, 착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주는 영화도 아니지만. 고고하지 않게, 나즈막히 관객들과 호흡하면서, 관객 스스로가 저마다의 메시지를 가져갈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작품이라는 점이 특별한 부분인 것 같아요. 과한 우아함과 고고함이 보여지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Q. 라디오에 출연해서 '소리도 없이'에 대해 "양심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표현했다. 앞선 질문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답변인가.
"다른 작품은 양심이 없는 것 마냥, 위험한 발언을 했는데요.(웃음) 비슷한 느낌으로 그런 점을 가진 것 같아요. '우리 행복하고, 즐겁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요'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게 상술이 될 수도 이고요. '소리도 없이'가 양심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 양심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요. 영화가 취하는 태도가 비교적 양심적인 척하지 않고, 착한 척 하지 않고, 위악을 떨거나 하지 않고,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이야기,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확장성을 열어둔 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홍의정 감독님에 대해 '한국 영화계를 평정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감독님을 꾸준히 극찬하고 있다.
"다분히 전략적이었고, 하지만 강한 애정에 기반합니다. 희망을 걸어도 좋을만한 감독님이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작은 힘이라도 실어드리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감독님이다라는 생각도 있고요. '소리도 없이'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을 앞 세우고, 저는 뒤로 빠져있는 게 편해요. 그럴만한 사람이고,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이니까. 장난삼아 '홍의정을 브랜딩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나쁘게 써먹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감독인 것 같아요. 감독님에게 느껴지는 가능성? 희망? 기대같은 것들이 더 가시적으로 펼쳐질 수 있게 압력을 가하는 것도 있죠. '너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좋은 사람 흉내라도 내게 되잖아요.(웃음) 계속 그렇게 같이 놀고 싶은 감독님인 것 같아요."
Q. 15kg을 증량했다. 홍의정 감독님의 제안이 있었나?
"'소리도 없이'를 소개해주시는 컨셉 영상이 있었어요. 그 속에서 태인이 꼭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속 종대같은 모습이었어요. 마르고, 안되보이고, 초췌하고, 마이너함의 전형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인물이었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삭발도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전적으로 캐릭터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제법 잘 어울릴 것 같고 신선한 느낌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Q. 이렇게 '묵직한 유아인'은 처음 마주하게 된 것 같다. 스크린에서 두둑한 뱃살의 자신을 보니 어땠나?
"배 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유아인이 주는 느낌이 있어서 임팩트가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비교적 예쁘고 말간 얼굴만 그려온 건 아니지만, 이정도까지 극단적인 변화를 준 적은 없었는데요. 그런 영화적인 효과를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명확한 변화가 잘 전달됐다면 감사한 것 같아요. 그런 식의 플레이도 연기라는 반경에 들어온 것 같아요. 순도있는 연기, 진정성 있는 연기만으로 되지 않는 지점들이 생겨난 거죠. 너무 많이 팔리고, 소비됐으니까. 상당히 다양한 색이 묻어있고, 오염이 됐다면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이미지를 시도하려는 의지가 거기에서도 나오는 것 같아요. '나의 순수함만으로는 되지 않는 게임이 됐다'고 느껴지는 거죠. 그래서 탈색도 해보고, 가발도 써보고,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하지만 모든 연기의 출발점이잖아요. 외모, 보여지는 것. 그런 고민도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Q. 15kg의 묵직함이 만들어주는 자연스러운 태인의 움직임이 생겼던 것 같다. 표정이나 몸짓 등에서 더 부각되는 부분이 있었다.
"정말 입술에도 살이 찌고요, 코에도 살이 찌고, 눈두덩이에도 살이 쪄요. 야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붓기인지 살인지 모르겠는 형태가 됐고, '살이다, 몸이다'를 떠나서 시각적 장치들이니까, 그것들을 잘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의식을 갖고 몸의 태도, 자세를 표현했는데, 이번에는 살을 찌워서 어쩔 수 없이 몸의 태도나 자세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운동하면 점점 펴지고, 과시적인 몸의 태도가 보여지잖아요. 그런데 살이 찌니 구부정하고, 걸을 때 보면 엉덩이가 이상하게 튀어나와있고. 그래서 살을 더 드러내고 싶은 의지가 있었어요. 감독님과 의상 결정하면서 조금 짧은 바지를 선택하게 된다거나요. 길지는 않지만 옷을 갈아입을 때 노출이 되는데, 감독님께 말씀드렸어요. 마음 껏 쓰시라고요. 배우 몸 노출에 배려같은 거 하지 마시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쓰시라고요."
Q. 이런 준비를 거쳐, 태인에게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게 됐나?
"일단은 연민이었어요. 인간으로서 삶의 과업을 수행하는 자에 대한 연민. 촬영 전까지 어떤 형태의 답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임했어요. 아무리 악한 인물이라도 내가 이해도를 가지고 공감을 통해 표현하면 미화가 되는데, 태인이는 제 스스로도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접근했어요. 그냥 호기심 그 자체로 접근한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외적으로 보기엔 윤리적으로, 직업적으로 큰 결함을 가진 인물이죠. 그런데 '누군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나'라는 의구심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판단보다는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 같아요."
Q. '소리도 없이'에서 던지고 싶은 유아인만의 분명한 화두가 있을 것 같다.
"이건 제 삶속에서 가진 문장이기도 한데, '불완전함의 완전함. 불명확성의 명확성.' 말장난같지만요. 명확성과 완전함을 추구하고 지향하는 요즘 세상에서, '정답을 내놓으란 말이야, 마침표를 찍으란 말이야'라고 외부에 압력받는 세상에서, 영화 '소리도 없이'가 가진 태도가 지목하는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모두 다른 생각을 갖겠지만, 저는 '백날 떠들어봐야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는 것만이 명확하고, 우리가 추구하고 고지를 점령한 척하지만 그것은 순간에 지나지 않고 불완전함만이 완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거든요. '소리도 없이'를 통해 다른 위치, 다른 자리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요즘, 그 관계성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전이가 되더라고요. 그게 우리가 지금 느끼는 세상의 불편함, 위험함 같은 것들을 조금 벗어나서, 그런 것들을 부시고, 다음을 그려볼 수 잇는 방법 같은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