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피눈물의 기억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걱정했었어요. 눈을 너무 오랫동안 안 깜빡이니까. 근데 그때 당시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참을 수만 있다면."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전도연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검객 '월소' 역을 맡았다. 박흥식 감독은 눈을 잃은 표현을 눈의 깜빡이지 않는 것으로 보여줬다. <협녀, 칼의 기억>은 짧은 호흡의 영화가 아니다. 전도연은 긴 촬영 시간을 눈을 깜빡이지 않고 버텼다. 거울도 보기 힘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참을 수만 있다면." 도대체 뭐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까? 전도연의 인터뷰를 앞둔 가장 큰 의문이었다.


'월소'는 <협녀, 칼의 기억>에서 이야기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자신이 사랑한 '유백'(이병헌)이 배신해 죽음을 맞은 '풍천', 그의 아이 '홍이'(김고은)를 거두어 유백에게 피의 복수를 준비하는 여인, 그가 '월소'다. '월소'는 무림의 고수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50명의 장정을 검 하나로 맞설 수 있는 여인이다. 전도연은 사랑과 복수의 극한 감정과 설득력 있는 액션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첫 촬영 부담감이 정말 컸어요. 초절정 고수임을 보여줄 유일한 씬이었어요. 스스로도 열심히 연습했다고 생각해서 욕심이 난 장면이었고요. 감독님과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하며 열심히 준비했는데, 현실은 현실이더라고요. 촬영지가 메밀밭이었는데, 한 번 액션 장면을 찍으면 메밀이 다 쓰러져요. 그러면 전처럼 못 일으켜 세워요.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멘붕이 오지 않았나 싶어요. 폐허가 된 메밀밭에서 촬영이 끝난 뒤, 시간도 없고, 장소도 없고. 되게 서럽더라고요. '이럴 거면 뭐하러 그렇게 연습했나?' 싶고. 아파도, 다쳐도, '괜찮아' 하면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더 찍을 수도 없고요. 모든 게 폭발했던 저의 촬영 시작 날이었어요."

<협녀, 칼의 기억>의 촬영 현장에는 주치의가 항시 대기했다. 그만큼 잔부상이 많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전도연은 액션에서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들었다. 실제 검과 비슷해 한 손으로 번쩍 들고 서 있기도 힘든 검의 무게, 촬영하는 시간 동안 눈의 깜빡임을 참아야 해서 '컷' 소리와 함께 눈을 감으면 쏟아지는 눈물, 어느 순간 당연해진 잦은 부상들. 월소의 비극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았다.

"액션도, 앞이 안 보이는 연기도 저는 너무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찰나의 순간에 그게 아닌 거예요.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찰나. 반사 신경적인 건 욕심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진짜 눈이 멀지 않는 이상. 그런 것들을 그 순간에는 포기하지 못했고, 타협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 영화를 봤는데 그런 부분이 저한테는 너무 적나라하게 다 보여서 되게 힘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영화 어떻게 봤는지 너무 궁금하다'라고 하셨는데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앞선 인터뷰에서 김고은은 <협녀, 칼의 기억>을 촬영하며 힘들었던 자신을 위로해준 전도연에게 진한 고마움을 전했다. 24살 김고은에게 전하는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위로. 사실은 그 시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는지 모른다. 전도연은 "저도 되게 힘들었었거든요"라는 대답으로 말을 잇는다.

"<해피엔드>를 촬영하고 상처도 되게 많이 받았었고요. 그런데 '힘들지', '네가 하고 있는 게 잘하고 있는 거야' 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못 들었던 것 같아요.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저는 지지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가 어떤 친구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배우 김고은으로서 좀, 지지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밀양>으로 칸 영화제에서 국내 영화 처음으로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어느 순간, '연기 잘한다'라는 말이 전도연 앞에 당연하게 붙는다. 그런데 도대체 뭐를 위해 아직도 이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걸까?

"그 누구도 자신의 정점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메릴 스트립(Meryl Streep)같은 경우도 그녀의 정점을 찍었지만, 끊임없이 가고 있잖아요. 정점을 찍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오히려 칸이 되게 부담스럽고, 빨리 떨쳐버리고,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에 저를 괴롭힌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칸에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도 그렇고, 사람들이 계속 저를 궁금해해요. 어떤 여배우인지, 어떤 작품을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저를 지지해주는 힘 같아요. 앞으로 얼마만큼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목표나, 정점을 향해서가 아니고 제가 가야할 길을 가는 거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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