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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정재 '빅매치' 후, 아직도 목마르다
한참을 달렸다. 뒤돌아볼 법도 한데, 아직도 앞으로 보이는 길들이 궁금하다.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의 무게가 무겁다. 하지만 '잘생김'이 묻은 채 달리는 이정재는 그 무게를 '멋짐'으로 짊어지려 하나보다.
'신세계', '도둑들', '관상' 이후 이정재가 선택한 작품은 '빅매치' 였다. 그래서 그의 선택만으로도 관객들은 일단 기대했다. 특히 이정재가 '게임'의 말이 된다니, 정말 '오락'영화의 끝판왕이 아닌가. '빅매치'에서 그가 맡은 '최익호'는 그 기대를 통쾌함으로 바꾼다. 타고난 승부사 기질과 맷집(?)을 가진 불굴의 파이터 최익호는 '에이스'(신하균)가 설계한 도심을 배경으로 한 '게임' 위에서 형(이성민)을 구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미션 '클리어'를 이뤄낸다.
최익호를 연기한 이정재는 그래서 말 그대로 죽을만큼 고생했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부류의 영화는 다시는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작품을 선택했고, 미리 각오했던 바였다. 현직에서 뛰는 격투기 선수 중에서도 40대 중후반의 파이터는 없다. 자신도 30대 초반쯤이 적정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제가 한 번 에너지가 넘치는 생동감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라며 '빅매치'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빅매치'의 촬영이 시작하기도 전, 준비과정에서 어깨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평소 이정재의 절친한 친구로 알려진 정우성은 자기 몸처럼 걱정하며 "컨디션이 한참 좋을 때도 (현장에서) 다치는 일이 다반사인데 다친 채 액션 영화를 찍는 게 말이 안 된다"라고 이정재를 말렸다. 하지만 이정재는 촬영에 임했다. "손가락 양쪽이 다 부러지는 것처럼 아팠고, 허리 근육통, 타박상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죠. 그런 건 뭐 잔 부상이라고 치는 거죠." 참, 최익호 다운 긍정적인 대답이다.
최익호는 기존 액션영화의 주인공과는 흐름을 달리한다. '빅매치'를 보다 보면 '이정재가 사실 좀 모자란가?' 싶을 정도. 이정재는 "액션 영화를 한다고 하면 멋있는 캐릭터를 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이번 캐릭터는 멋보다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재미적 요소를 추구해야하니 부담감도 없지는 않았죠"라고 캐릭터를 설명한다. '빅매치' 속에서 게임에 이긴 뒤 껑충 뛰는 세레모니를 하고, 긴박한 상황 속 "몰래 카메라 아냐?"라고 외치며, 고래고래 동요를 불렀던 이정재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 쿨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참 다르다. 최익호 뿐 아니라 으르렁거렸던 '관상'의 수양대군, '도둑들'의 뽀빠이, '신세계'의 이자성 모두 다른 사람이 맡았다는 생각이 될 정도로 다르다. 이정재는 "물론 저도 똑같은 연기를 하는 걸 많이 피하려고 하는 것도 있죠. 다른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관객들에게 좀 더 다양하고 재밌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고요. 계속 조금이라도 뭔가 다르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찾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여심이 이정재의 멜로에 목마른 것도 사실이다. 예전 '인터뷰', '시월애', '선물'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섹시하고 다정한 그의 모습은 한동안 스크린에서 만나기 힘들었다. 이에 이정재는 "항상 (멜로 시나리오를) 기다리고 있는데, 딱 하고 싶다 할만한 게 없었어요"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 선택 기준은 오로지 "과연 이 시나리오가 완성된 다음에도 괜찮은 영화로 나올 것인가, 거기에 내가 이바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다.
배우 이정재는 전작들의 캐릭터에서 왠지 두렵고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익호'는 다르다. 여기에 이정재의 캐릭터 선택의 또 다른 이유가 담겨있다. "거리감 있는 배우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캐릭터로 보여드리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약간 풀어지고, 소위 망가진다는 부류의 캐릭터를 보여드리면 (대중들에게) 친근함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
과거 이정재는 팬과 만난 현장에서 자신에게 '김 묻었어요, 잘생김'이라고 말한 팬을 보며 폭소했다. 그리고 이는 인터넷을 타고 퍼졌고 그 팬을 회사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인 팬과 약 2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길 했다. 이정재는 "고등학교 3학년인 학생과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데 굉장히 재밌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90년대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이정재는 그렇게 세대를 넘어 '잘생김' 묻은 아이콘이 됐다.
그가 연기에 대해 매번 변신할 수 있는 힘은 그가 가까이 있고 싶다고 했던 '관객'에게 있다고 말했다. 오그라드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오로지 관객분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그 말 속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빅매치'를 위해 77Kg 증량했던 몸을 영화 '암살'에 들어가면서 62Kg까지 감량했다. 나이를 먹으니 살 빼기도 힘들다고 투정 조로 이야기했지만, 그는 여전히 목마르다.
"모든 전문 분야가 그렇잖아요, 할수록 할 것도 많고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는 것. 연기도 그런 것 같아요. 갈수록 책임감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항상 더 좋은 것, 새로운 것, 신선한 것, 보여드리고 싶어요. 능력이 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