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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민영 "엄마가 저는 못생기게 나와야 예쁨 받는대요"
“‘박민영’이라는 배우를 여자들은 안 좋아하잖아. 이번에 여자들이 사랑하는 박민영을 만들어줄게.” ‘힐러’를 시작하기 전 송지나 작가는 박민영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터뷰 전 기자도 박민영에게 “만나기 전엔 몰랐지만, 인터뷰 후엔 호감이 생긴 배우였다”고 고백한 후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며 “그죠?”라고 눈웃음쳤다.
KBS 드라마 ‘힐러’(극본 송지나, 연출 이정섭) 종영 후 송지나 작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박민영은 목소리가 명료해서 좋다. 연기를 진짜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 친구”라고 극찬했다. 이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박민영의 봇물 터진 수다가 십여 분간 계속됐다.
“송 작가님의 대본은 눈앞에 그림이 그려질 만큼 섬세해요. 게다가 제 평소 모습을 유심히 보시곤 ‘민영이는 웃음이 많은 애야’라며 웃음이 없던 채영신 캐릭터를 제게 맡게 바꿔주시더라고요. 제가 웃을 때 못 생기게 웃는 편인데 그 모습을 알아챈 작가님께서 ‘민영아 그 동안 왜 네 벽을 안 깼어. 이번에 한 번 날 믿고 모든 걸 내려놓아 봐’라고 하셨어요. 모범생처럼 공부만 해다가 작가님을 믿고 딱 내려놨더니 캐릭터와 더 가까워지더라고요.”
박민영은 작품이나 연기에 관해 얘기할 때 “어떤 표정 근육을 쓰는지, 어미 처리는 어떤지, 내레이션 설정이나 장면은 허투루 들어가지 않는지 다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세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시종일관 뚜렷한 ‘연기관’을 제시한 그는 액션 로맨스 물에서 여주인공이 ‘민폐 캐릭터’로 그려지는 걸 싫어하는데 “‘힐러’ 속 영신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이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인위적으로 위험에 빠진다거나 상처받은 눈빛을 보내곤 하는데, 채영신은 어지간하면 혼자 하려고 해요. 극중 ‘나 보내면 너 평생 울 거야’라는 대사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 대사를 남자가 아닌 여자가 했어요. 그래서 별명이 ‘채남주(채영신 남자주인공)’였다니까요.”
‘성균관 스캔들’(2010), ‘시티헌터’(2011), ‘영광의 재인’(2011) 등 남자 배우들이 돋보이는 작품에서도 박민영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방향성을 잃지 않고 진행된 ‘힐러’가 박민영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했겠지만, 그의 호연은 늦은 밤 작가에게 카톡을 보내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에 관해 묻고, 또 물으며 작품 연구에 집념을 보낸 결과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왜 이런 행동을 하지?’라는 의심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당위성이 없으면 배우는 더 힘들어요. ‘힐러’는 PPL 신마저도 당위성이 있었어요. 그러니 제가 어찌 안 믿을 수 있겠어요.(웃음)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은 춤추고 노래할 때 창피했겠다고 하시는데 저 사실 흥이 많거든요. 근 2년 동안 개인적으로 살짝 힘들었는데 이성적으로 변하려고 했어요. 근데 마지막 신 찍은 다음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많았어요.”
애정신은 2011년 이후 오랜만이라던 박민영은 “전작에 키스신이 없었다”고 운을 띄우며 제작진과의 호흡은 물론, 지창욱과의 케미도 좋았다고 자평했다. “저도 이렇게 많은 애정신은 꽤 오랜만이에요. 그래도 다행인 게 연애를 쉰 지 오래됐는데 연애 세포가 죽지 않았는지 케미를 잘 살렸어요. 작가님과 감독님이 ‘(지창욱과) 잘 어울려서 다행이다. 그림 좋다’고 하셨는데도 서로 워낙 낯을 가려서인지 4~5회쯤에야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힐러’ 같은 작품을 두 번만 더 하면 여성 시청자들에게도 예쁨받을 수 있을 것 같다던 박민영은 연기 변신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어느 순간부터 주로 지적이고 도회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풀어진 역할도 자신 있다고 말한 그였다.
“‘환상의 커플’에서 한예슬 선배가 연기했던 나상실 역할을 신인 때라면 엄두도 못 냈지만, 지금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푼수기도 있고 백치미도 있는 캐릭터인데 제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매력을 모두 가진 캐릭터거든요. 먹방도 자신 있고요.”
색안경 낀 일부의 편견과 달리 박민영은 무조건 예쁘고 빛나 보여야 하는 캐릭터를 우선시하지 않았다. 되려 ‘연기’ 외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며 ‘망가짐’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이번에 좀 더 못생겨 보이게 하려고 헤어스타일을 세 번이나 바꿨어요. 조금 더 신경 안 쓴듯한 헤어스타일, 민낯에 가까운 메이크업을 했죠. 저희 엄마는 딸이 못생기게 나오는 걸 좋아하세요. 이번에 방송을 보시더니 ‘그래! 너는 저렇게 네추럴하게 나와야 사람들이 더 좋아해’라고 하시더군요. 엄마가 되게 객관적이시거든요.(웃음) 그게 저를 놓게 되는 계기가 됐죠.
다사다난했던 20대를 보내며 ‘일에 대한 재미를 알게 됐다’는 박민영은 이 기세를 몰아 2015년 한 해를 ‘소민영’(소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뜻)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막연히 나의 서른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던 그의 말도 현실이 됐다며 삼십 대의 ‘빈칸’을 채우기에 앞서 설렘 가득한 표정이었다. 사랑받기에 앞서 ‘어떻게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이 배우를 어찌 안 예뻐할까.
“한동안 안 좋을 때는 열정을 갖고 연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캐릭터를 위해 노력하는 만큼 연기에 대한 성취감도 높고, 시청자의 애정도 비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연기가 안 좋다면 백날 억울하다고 얘기해도 잘못된 거죠. 충고를 겸허히 수용하고 ‘믿고 보는 배우’가 되는 게 언제나 그랬듯 제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