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연 '덕수'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황정민 하면 생각나는 것들. "드루와"(영화 '신세계'에서), 쉰 목소리(영화 '너는 내 운명'), 그리고 "밥상"(수상소감 중에서). 배우 황정민은 참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칠 때쯤 이런 생각이 든다. 참,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이구나.

오는 17일 개봉을 앞둔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에서 195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 시대의 아버지 '덕수'를 연기한 황정민을 만났다. 극 중 '덕수'는 참 한결같이 가족을 위한다. 황정민은 '덕수'를 맡아 "어떻게 평범하게 보일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덕수'는 위인이나 특별한 누군가의 아버지가 아닌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로 보여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정민은 다큐멘터리나, 영화 속 작품보다 자신이 직접 수집한 자료들을 보며 공부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70대 돈키호테를 준비하며 그는 캠코더를 들고 파고다 공원에가서 그냥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건넸다.

"하루에 식사는 얼마나 하시느냐, 신발은 주로 어떤 신발을 신으시냐, 속옷은 뭐 입느냐. 이런 걸 깨알같이 물었죠. 노인분들 장기 두는 모습들, 담배를 피우는 모습들. <국제시장>에서 덕수가 등 돌리고 창가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다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손 떨리는 느낌도 다. 좋잖아요, 뒷모습이."

덕수의 유년기부터 70대까지의 모습이 모두 <국제시장>에 등장한다. 70대를 보여주기 위해 분장을 했지만 황정민에게 분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말없이 앉아있는 실루엣, 걸음걸이, 손짓, 바라보는 시선들. 그는 이런 것들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건 분장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배우인 황정민이 표현하고 관객에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황정민의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가 있다. 황정민에게도 아이가 있다. 제작발표회 때 황정민이 "제 아이가 볼 수 있는 영화"라고 만족감을 표한 만큼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국제시장> 시사회에 참석했다. 9살 난 아들이 이해할 거란 생각보다 그에게 아빠 영화를 함께 봤다는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저도 그런 기억이 있어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랑 '십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영화 길이가 3시간이 넘나 그래요. 시골 극장에 가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어린 나이에 영화는 너무 재미없고, 길고 힘들었던 생각이 나요. 그런데 아버지랑 봤다는 기억만으로도 저한테는 너무 기억에 남는 일이었거든요."

자신의 아이에게 아빠 영화를 선물해줬다는 벅찬 마음처럼 황정민은 작품을 선택할 때 관객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겠다는 작품을 우선시한다고. "시나리오도 책이잖아요. 저는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좋은 책을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해요. 그럼 답이 딱 나와요. 책 선물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좋은 책을 읽으면 너무 재밌어서 선물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잖아요. 저는 그렇게 작품을 선택해요."

<국제시장> 역시 그런 마음에서 선택한 작품이다. "<국제시장>은 아버지 얘기라기보다 우리의 역사인 거예요. 그 삶 속에 우리가 있는 거예요. 독일 광부,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 등 덕수가 겪어온 사건들이 하나의 역사라는 거죠. 그걸 통해서 잠깐이지만 가족들끼리 잠깐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 그럼 제가 이 영화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아버지든, 어머니든 지나온 시간을 얘기하면 하실 말씀이 있을거고 그렇게 영화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제가 한 이유가 있고, 하길 잘했다는 거죠."


유명 감독도, 유명 작가도 아닌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듯한 겸손한 작품 선택 계기다. 관객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 배우의 마음이라니. 인터뷰 답변이 아니라 구구절절 어록같이 느껴진다. 황정민 하면 '연기 잘하는 배우', '바른 생활 배우'의 느낌이 강하지만 황정민 역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왔다. 어릴 때 연극을 하면서 관객이 없어서 공연을 못 해본 적도 많았다. 가장 잘된 작품이 영화 <신세계>라고 하지만 500만 관객이 안 들었다. 그래서 그는 흥행에 감이 없다고 말했다.

"전 바른 생활 사나이 아닙니다. 밥상 발언은 그냥 일에 대한 직업의식인 것 같아요. 부담감을 가졌던 시기는 한 참 지났죠. 그게 30대에 저한테 온 큰 숙제였던 것 같아요. 40대 전까지 치열하게 '연기 잘해야 해, 잘해야 해, 뭘 하든 잘해야 해' 하던 중압감 아닌 중압감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면 지금은 어깨의 짐을 많이 내려놓은 시기가 됐어요. 어느 순간 편해졌어요. 즐기면서 하는 거랑 열심히 하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열심히만 하면 자기 힘에 어느 순간 지치고 부러지게 되어있어요. 지금은 너무 편해져서 현장 가서 연기하는 게 너무너무 재밌어요."

연기가 '너무너무' 재밌다는 황정민의 순수한 말에 괜히 웃음이 지어진다. 황정민은 나중에 70대의 덕수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어떤 말을 할거냐는 질문에 "뭐 덕수랑 비슷한 얘기 하겠죠, 그나마 나는 덕수보다 좀 나은 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잖아요"라고 답한다. 황정민이 즐기는 연기의 진수는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국제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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