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구마사' 방송 취소 결정 타임라인 / 사진: 스튜디오플렉스,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처웍스 제공
■ '초기 시놉시스'부터 문제가 많았던 '조선구마사'
처음 '조선구마사'의 시놉시스가 알려진 것은,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작년 4월 장동윤의 캐스팅 물망 기사에 따르면, '조선구마사'는 태조 이성계가 교황청의 도움을 받아 조선을 건국했고, 그때 동원된 것이 서역의 구마사와 언데드였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된 뒤, 은폐된 언데드가 태종 시대에 다시 부활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의 근간을 뒤흔드는 역사 왜곡이 고스란히 시놉시스에 담겨있던 것.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며 논란이 불거지자 제작사 측은 초기 시나리오(수정 전)가 기사화 된 것이며, 최종 시나리오에서는 문제가 될 부분을 전부 삭제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조선구마사'는 배우들의 캐스팅을 마치고 촬영을 시작하게 됐다.
■ 본격 역사 왜곡의 시작?…3월 22일, 첫 회부터 '동북공정' 논란
시놉시스가 논란이 된지 약 1년 만인 지난 3월 22일 SBS 새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극본 박계옥, 연출 신경수)의 첫 방송이 시작됐다. '조선구마사'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악령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이에 맞서는 인간들의 혈투를 그린 한국형 엑소시즘 판타지 드라마. 특히 한국형 좀비물의 시초인 '킹덤'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킹덤'과는 분명 달랐다. 실존 인물을 차용했음에도 조선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 왜곡 드라마가 탄생됐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이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들을 자국의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 된 상황 속, 마치 '동북공정'에 가담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 더욱 논란은 커졌다.
◆ 논란 1. '중국식' 인테리어·노래·음식…하지만 조선 기생의 의상은 '한복'
사진: SBS '조선구마사' 1회 캡처
가장 크게 화제가 된 것은 극 중 충녕대군(장동윤)이 구마사와 통역사를 데리고 와 기생집에서 접대를 하는 신이다. 무엇보다 사극은 '고증'을 가장 최우선으로 여긴다. 이에 시대에 걸맞은 소품, 의복 등을 선정하는 것에 많은 신경을 쏟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구마사'에 등장한 조선시대의 기생 집에 달려있는 등불, 배경음악, 그리고 온통 붉은 빛인 인테리어는 모두 중국식이었다. 여기에 조선시대의 상차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마련된 상차림은 물론이고, 이들이 내온 음식 역시 월병, 피단, 중국식 만두, 여기에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 감자까지 완벽한 '중국식 차림'이었다.
마치 우리나라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표현을 해놓은 상황에서 기생들의 의상은 '한복'이었다. 최근 중국이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복'인데, 누리꾼들은 이에 대해 마치 한복이 중국의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제작한 것 같다는 의심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극에 출연하는 남자 배우들이 '갓'을 쓰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조선구마사' 제작사 측은 "명나라를 통해서 막 조선으로 건너 온 서역의 구마사제 일행을 쉬게 하는 장소였고, 명나라 국경에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중국인의 왕래가 잦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소품을 준비하였고, 특별한 의도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 논란 2. 백성을 도륙하는 태종, 조상을 깎아내리는 세종대왕
사진: SBS '조선구마사' 1회 캡처
논란이 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여말선초(고려말 조선초기)' 시대는 그동안 여러 드라마를 통해서도 제작된 바 있고, 무엇보다 태종과 세종대왕의 이야기는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배운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조선구마사'는 이들의 이름을 차용해서 드라마를 제작했음에도, 이들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됐다.
먼저 태종은 백성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그를 환시에 홀려 백성을 도륙하는 살인귀로 그렸다. 또한,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충녕은 "6대조인 목조께서도 기생 때문에 삼척으로 야반도주를 하셨던 분이셨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라며 스스로 조상을 깎아내리는 발언을 한다. 실제로는 다르다. 세종대왕은 선조인 목조에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대의 행적을 찬사하는 '용비어천가'를 집필했다.
여기에 왕세자인 충녕대군이 교황청에서 파견 온 구마사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있는 것, 직접 술을 따라주는 모습, 그리고 호위무사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또한, 중국이 탐내는 것 중 하나인 '농악무'를 연 변사투리를 쓰는 출연자와 연관해 표현했으며, 칼 모양도 중국식 칼을 사용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 시청자의 이의제기…'조선구마사', 방송 하루 만에 광고·협찬 등돌려
무엇보다 '조선구마사' 대본을 집필한 박계옥 작가는 전작 '철인왕후'에서 실존 인물(철종)의 이름을 빌려 집필에 나섰음에도 "조선왕조시록 지라시네"라는 등의 대사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그 이후 박계옥 작가가 쓴 '조선구마사' 역시 내용적으로 역사왜곡 논란이 이어졌다. 하지만, 제작진은 의상과 소품 등에 대해서만 언급하며 "100% 국내 자본으로 만든 드라마"라는 해명만 내놓았다.
이에 결국 시청자가 움직였다.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심의 요청을 하는 것은 물론, 드라마를 편성한 방송국에 직접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협찬사 등의 SNS 채널 및 고객센터에 불만을 제기했다. 특히 각 제작사와 협찬사 등의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했고, 이후 피드백이 된 업체에 대해서는 리스트에서 제거하는 방식 등으로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조선구마사'는 방영 하루 만에 모든 광고가 사라지게 되는 굴욕을 겪게 됐다.
뿐만 아니라 장소 제공 및 협찬 계약을 맺었던 나주시와 문경시 등은 더이상 촬영 장소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여기에 더해 문경시는 지급된 인센티브를 회수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조선구마사'의 의복을 담당한 업체 역시 논란이 커지자 등을 돌렸다. 다만 SBS 측이 언급한 것처럼 이미 촬영의 80% 정도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시청자들은 '폐기'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WeTV에 소개된 '조선구마사' 설명 수정 전후 / 사진: 해당 페이지 캡처(온라인 커뮤니티)
■ 3월 24일, 제작사 사과문 게재 및 SBS 재정비 기간 예고
결국 '조선구마사' 제작사와 SBS는 2회 분까지 송출된 다음 날인 24일 사과의 뜻을 밝혔다.
먼저 제작사 측은 "중국풍 미술과 소품 관련, 예민한 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불편함을 끼쳐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 드린다"라며 "구마사제 일행 신은 모두 삭제해 VOD 및 재방송에 반영하게 됐다. 일부 의복 및 소품이 중국식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다"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SBS 측은 "웰메이드 판타지 퓨전 사극을 소개하고자 '조선구마사'를 편성했지만, 실존 인물과 역사를 다루는 만큼 더욱 세세하게 챙기고 검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라며 "현재까지 방송된 1, 2회차 VOD 및 재방송은 수정될 때까지 중단하고, 한 주간 결방을 통해 전체적인 내용을 재정비하도록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외 플랫폼을 통해 해당 방송 분이 전파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중국 IT 기업 텐센트가 운영하는 플랫폼은 '조선구마사'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북한 건국에 관한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또한 "바티칸이 불교 국가인 '고려'를 대체하기 위해 북한의 건국을 지지했다"는 역사와 다른 설명으로 또다른 논란이 일었다.
'조선구마사' 검색 페이지 / 사진: 네이버 캡처
■ 3월 26일, SBS 측 경제적 손실 언급하며 "방송 취소 결정"
재정비 기간을 갖겠다던 SBS는 계속해서 논란이 커지자 26일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여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라며 "SBS는 본 드라마의 방영권료 대부분을 이미 선지급한 상황이고, 제작사는 80% 촬영을 마친 상황이라 방송사와 제작사의 경제적 손실과 편성 공백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방송 취소를 결정하였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조선구마사'는 단 2회만 방송된 채 종영이라는 결말을 맺게 됐다.
이어 '조선구마사' 제작사 측 역시 "드라마 제작이 중단되었다"며 "해외 판권 건은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있으며, 서비스 중이던 모든 해외 스트리밍은 이미 내렸거나 금일 중 모두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작사 측은 "시청자 분들께 상처를 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조선구마사'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편성을 기록해놓은 시간에 "2021.03.22. ~ 2021.03.23."이라고 적혀있다. 방송된 것은 단 이틀이다.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부터 방송 취소가 되기까지, 강렬한 마침표가 찍힌 작품으로 남게됐다.
글 에디터 하나영 / hana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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