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언론시사회 / 사진: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악인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치열할 수가 있나 싶다. 영화 '기생충'은 자본주의 사회 속 '공생과 상생', 그리고 '기생'의 미묘한 선이 무엇인지 그 화두를 던진다.
28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 언론시사회가 열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이 참석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명문대생 친구가 연결해준 고액 과외를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결코 만날 일 없을 것 같았던 두 가족이 기우의 과외로 접점을 갖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간다.
이번 작품 속 두 가족은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4인 구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지만, 삶의 형편과 인간군상은 극과 극이다.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은 가난한 자와 부자,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인물들을 다룬 이야기"라며 "굳이 '양극화'라는 등 경제·사회적인 단어를 동원하지 않아도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물들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사회·경제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를 학술적으로 분석하는 영화는 아니다"라며 "풍부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로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그 예의를 어느 정도까지 지키는가에 따라 '기생'이 되느냐 좋은 의미릐 '공생, 상생'이 되느냐를 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가족희비극'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에 대해 "'가족'이라는 소재는 선택이라기보다는 애초에 출발점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한강에 괴물이 있고, 기차가 눈사이를 달리듯, 처음부터 가난한 4인 가족과 부자 4인 가족이 기묘한 과정으로 뒤섞이는 내용을 다루려고 했다"며 "2013년도에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해서 스토리 라인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설국열차' 후반 작업 때다. '설국열차'는 부자와 가난한 자 이야기면서 SF적인 장르였다. 그에 반해 내 일상과 현실에 가까운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이 스토리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극 중 송강호와 이선균은 각각 전원백수 가족의 아버지 '기택'과 부자 가족의 가장 '박사장'으로 분한다. 기택은 생활고 속에서도 계획 없이 백수 생활을 이어가는 인물로, 연이은 실패를 맛보다 '계획해 봐야 될 리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아들 기우가 학력 위조를 통해 부잣집 과외 선생이 된다고 하니 앞으로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반면, 박사장은 회사를 스스로 일군 유능한 글로벌 IT 기업의 CEO다. 노력 끝에 부를 얻은 그는 아름다운 아내, 토끼 같은 딸, 아들과 유명 건축가가 지은 저택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일이 바빠 아이 교육, 고용인 관리 등 가정의 대소사는 아내에게 일임하지만, 그럼에도 부에서 나오는 여유로움과 젠틀함이 있는 인물.
이선균은 "박사장 캐릭터는 감독님에 대본에 잘 설계해주셨다"며 "많이 부자로 나와서 부담되긴 했는데, 환경이나 설정이 잘 되어 있어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존경하는 감독님, 선배님과 함께 연기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첫 촬영 때는 신인 배우로 돌아갔을 때만큼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송강호 역시 "우리 배우들끼리 가족 단위로 연기 앙상블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기해갔다"며 "다들 제가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 후배들이어서 현장에서도 늘 행복했다"고 연기 호흡을 전했다.
생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던 장혜진은 이번 작품에선 전원백수 가족의 엄마이자 아내 '충숙'을 연기한다. 전국체전 해머던지기 메달리스트 출신인 그는 무능한 남편과 살아서 인지 박력 있고 다부진 성격을 가졌다.
이번 작품을 통해 큰 배역을 맡게 된 장혜진은 "큰 작품에 큰 역이 처음이라 제가 긴 호흡을 끌고 갈 수 있을까 걱정됐다"면서도 "촬영 현장에서 제 두툼한 턱살을 보고 감독님께서 사랑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정말 모든 것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며 참여 소감을 전했다.
박사장의 아내이자 순진한 사모님 연교 역을 맡은 조여정은 "돌아가는 상황을 모른 채로 전업주부로서의 일에 집중하는 인물"이라고 캐릭터를 소개했다. 그는 "저와 제 가족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돼서 연기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다"며 "평소 다른 작품을 할 때는 너무 많이 생각했어야 했는데, (캐릭터 설정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고 덧붙였다.
최우식과 박소담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기우', '기정' 남매로 등장한다. 기우는 네 번의 대입 실패 후 백수로 살고 있는 기택네 장남이다. 교환학생을 가게 된 명문대생 친구의 부탁으로 못이기는 척 박사장네 과외 면접을 보러 간다. 이를 위해 동생 기정과 가짜 재학 증명서를 만들 정도로 대담한 인물.
박소담은 오빠 기우와 마찬가지로 미대에 떨어지고 백수로 지내는 '기정'으로 분했다. 기정은 뛰어난 포토샵 실력으로 오빠의 신분 위장을 돕는다. 이후 박사장네 막내 다송의 미술 선생님으로 채용되면서 가족 고정수입의 두 번째 희망으로 떠오른다.
특히, 기우는 두 집안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캐릭터다. 이에 대해 최우식은 "제작보고회 때 말을 이상하게 해서 분량 자랑을 하게 됐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첫 촬영에서 제가 비중이 좀 있다 보니 많이 떨었다"고 전했다. 이어 "모든 신이 기억에 남는다. 송강호 선배님이 진짜 아버지처럼 긴장 덜하게 많이 풀어주셔서 기억에 남는다"며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송강호 선배님께 연기 지도를 하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해야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극 중 청년 세대로 등장하는 최우식과 박소담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 여러 어려운 점이 많고, 쉽지 않은데 거기서 나오는 슬픔, 불안, 두려움 그런 복합적인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극과 극 가족의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곳까지 비추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선보일 '기생충'은 신선한 소재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 시너지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은 '기생충'은 오는 30일 개봉, 국내 관객과 만난다.
글 이우정 기자 / thesta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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