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민 인터뷰 / 사진: 제이에스픽쳐스 제공
[인터뷰①에 이어] 배우 윤현민이 KBS 드라마 '마녀의 법정'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중 윤현민은 소아정신과 의사 출신 초임 검사 '여진욱' 역을 맡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여진욱은 오롯이 피해자를 위해 힘쓰는 묵직한 검사로 거침없이 질주하는 마이듬(정려원) 검사와는 상반된 인물이다.
오전 인터뷰인데도 일찍 도착한 윤현민은 예정된 시간보다 10분 먼저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신중한 답변을 이어나가던 윤현민은 "남성적인 캐릭터를 주로 해오다가 친구들과 만나서 얘기할 때처럼 느린 말투로 연기할 수 있고, 자신과 근접해 있는 점이 많아서 편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려원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려원 누나의 필모를 좋아하는 후배였다. 정려원 누나가 해왔던 필모를 존중했고, 누나가 하는 스타일을 따라가고 싶었다. 살아있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 부러웠고,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을 꿈꿨는데 누나가 한다고 해서 '앗싸'를 외쳤다. 결정하기 전에는 회사에 계속 물어봤었다. 누나가 순하고 말수도 적고 조용조용하다. 마이듬과는 전혀 다르다. 어떻게 보면 내성적일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습벌레라는 걸 알았다. 본인도 마이듬처럼 살고 싶다더라. 저도 그 마음이 뭔지 알았다. 저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라 낙천적인 사람이 부럽다. 정려원 누나도 마이듬처럼 속마음을 얘기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더라. 누나가 마이듬을 해내는 것을 보고 최고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파트너였고, 앞으로도 연을 쌓고 싶다. 제가 꾸준히 연락하고 연을 이어나가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마녀의 법정'이 시청자의 공분을 사는 에피소드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는데, 윤현민이 가장 공분했던 에피소드는?
"저는 5부가 가장 힘들었다. 작품 시작 전 작가님이 5부는 진욱이의 회차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진욱이가 의사에서 검사로 넘어오게 된 그만의 상처를 5부에서 풀고 싶었다. 대본이 나왔을 때 너무 힘든 아동 성폭행 사건이라서 한동안 먹먹해졌다. 평소 아동 성폭행 관련 기사도 클릭 못하고 마음이 안 좋았는데 대본으로 나와서 연기를 해야 하니 너무 힘들었다. 혹여 피해를 본 분들의 고통을 상기시키진 않을까 걱정도 많았고 스트레스를 받던 와중에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고 방향성을 찾았다. 감독님도 저와 얘기하다가 눈물을 쏟으셨다. 감독님도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 연출자로서 힘든 점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눈물이 나오셨던 것 같다. 저 또한 배우로서 연기해야 해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 점이 우리 드라마의 방향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성을 갖고 고민하고, 피해자의 입장으로 아파하고 공감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검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에 전념했다. 감독님과 배우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였기에 시청자분들도 같이 공분을 사주셨던 것 같다."
-평소 사회 교양 프로그램을 즐겨보나?
"뉴스는 항상 본다. 작품이 끝나고 뉴스를 보니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서 더 마음이 안 좋았다. 기사를 보면서 내용을 더 주의 깊게 보고 가해자는 어떤 처벌을 받았고, 왜 안 받았는지 내 생각을 가미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배우가 아닌 사람으로서 한단계 성장한 것 같다."
-어금니 아빠 사건을 보고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
"너무 마음이 안 좋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추악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공부하려고 검사님들을 만났다. 만났던 검사님도 성폭행 관련 전담 검사님인데 그렇게 만났을 때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마음인지 몰랐다. 작품이 끝난 후에야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이라는 걸 깨닫게 됐고, 응원하게 됐다."
-시청자들이 '마녀의 법정'을 어떤 작품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나.
"이 작품을 재밌게 본 분들은 저와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우리 삶에서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불법적인 사건들에 공분하고 계실 것 같다. '마녀의 법정'은 끝났지만 사회면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시즌2를 통해서 다시 한번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의 배우 활동은 만족스럽나.
"제 연기를 보고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한 작품에 2~3신 있을까 말까다. 드라마가 끝나면 쉬는 시간에 연기가 잘되고, 촬영 땐 잘 안 돼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지금 그나마 다행인 건 작품을 거칠 때마다 마음에 드는 신이 생겨서 그 점은 다행이다. 현장이 힘들어도 즐겁긴 하다."
-포털사이트에 윤현민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연관검색어'에 어떤 것들이 생겼으면 좋겠나.
"제일 기대하고 좋은 건 타이틀이 올라가면 좋을 것 같다. 타이틀이 올라가는 게 우선이 됐으면 좋겠다."
-예능 출연 계획은 없나?
"작품을 통해 만나는 게 저를 기다려주는 분들께 좋을 것 같다. ('나 혼자 산다'에서 친근하고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아파트 분리수거하는 날이 일요일인데 아주머니들께서 '마녀의 법정 잘 봤다'면서 '깔끔하게 치우는 거 아는데 우리가 치워줄 수도 없고'라고 하시더라.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출연하고 싶다."
-예전에 탈색도 했는데, 작품 끝나고 헤어스타일 변신 계획은 없는지.
"다시는 하지 않을 실수 중의 하나가 탈색이다. 샴푸를 하면 뻑뻑해서 힘들었다.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다.(웃음)"
-쉴 때는 주로 뭘 하나?
"책을 자주 읽는다. 요즘은 '연기수업'이라는 책을 펼쳤다.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사드'인데 김진명 작가의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진짜 일어났던 일을 돌려서 쓴 책을 좋아한다. 내가 살지 않았던 과거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17년과 다가올 2018년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12월은 일본에 다녀오고 연말에 참석해야 하는 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1월부터는 대본을 보고 차기작을 신중하게 고를 예정이다. 지금처럼 또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는 작품을 선택해서 계속 활동하고 싶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도 꼭 해보고 싶고, 소극장 공연도 해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현재에 머물러있지 않고 조금이라도 전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똑같은 연기가 아닌,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연기를 매 작품 하고 싶다. 제일 듣고 싶은 말은 '쟤는 연기 제일 잘하지'라는 말인데 그 말을 들으려면 한참 멀었다. 저는 야구선수로 살았던 시기보다 연기자로 산 시기가 더 짧다. 아직 내 직업에 뚜렷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절친한 선배인 정경호 형이 '10년을 버티고 살아남아야 내 직업이 배우라고 누구한테 얘기할 수 있지 않냐'고 하더라.(웃음)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10년을 버텨보고 살아남아서 그때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저도 궁금하다."
글 더스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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