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인터뷰 / 사진: 싸이더스HQ 제공
“아역을 하다 보면 불안해요. 짧은 시간에 짧고 굵게 나오잖아요. 빠른 시간 안에 감정 표현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나중에 긴 호흡을 잘 이끌 수 있을지 막연히 걱정됐죠.”
2008년 드라마 ‘전설의 고향’으로 데뷔한 김소현은 올해로 데뷔 9년차다. ‘트라이앵글’(2014)까지 주연 배우의 아역을 연기했고, 그 해 ‘리셋’을 통해 1인 2역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2015년 방송된 ‘후아유-학교 2015’에서도 1인 2역을 맡아 기량을 뽐냈고, 3부작 드라마 ‘페이지터너’에서도 피아노 천재 윤유슬 역을 맡아 내면의 예민한 감성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내 호평받았다.
김소현의 터닝포인트는 최근 종영한 ‘싸우자 귀신아’(2016)다. ‘리셋’이 첫 주연작이긴 하나, ‘리셋’과 ‘후아유’, 그리고 ‘페이지터너’는 그가 맡은 캐릭터가 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 전작과 궤를 같이한다. ‘싸우자 귀신아’에서 기억을 잃은 귀신 ‘김현지’ 역을 맡은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하는 것이 많았다.
첫 대학생 역할부터 남자 배우와의 액션신까지 모든 것이 김소현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극 후반부에 대학생이 된 현지를 연기하며 김소현은 캠퍼스 생활을 간접적으로 체험했고, 학생이긴 하지만 성인 연기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옥택연(박봉팔 역)과는 첫 만남부터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와이어 액션은 재미있었어요. 액션이 합을 맞춰야 할 시간도 필요하고 다치면 안 되니까 스트레칭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조심해야 할 점이 많았어요. 모든 배우가 다 맞춰주시고 저를 걱정해주셔서 따로 신경 쓸 건 없었어요. 택연 오빠가 워낙 잘하니까 뭘 해도 잘 받아줬죠. (액션 연기엔 소질 있는 것 같아요?) 아예 없는 것 같진 않아요. 꾸준히 노력하면 실력이 느는 편 같아요.”
영화 ‘순정’ 개봉 당시, 한 매체 인터뷰 기사에는 “김소현이 디테일한 사투리 연기를 위해 대중목욕탕에 다녔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빠르고 편리하다는 장점 외에도 섬세한 현실 연기를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배우들은 더러 있다. 하지만, 열일곱 열여덟 사춘기의 여배우가 대중목욕탕을 가는 모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편하게 갔어요. 한번 갔는데, 그때는 저보다 나이 많으신 어머니들이 계셨어요. ‘여긴 어떤가’ 둘러봤는데 어머니들이 수다 떠는 내용이 들리더라고요. 듣다 보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대중목욕탕도 가고, 카페에도 앉아 있고 그랬어요. (알아보지 않던가요?) 알아보시곤 음료수를 주고 가셨어요.(웃음)”
김소현은 평소 거리를 걸으면서도 사람을 관찰했다. “특이한 행동을 하면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새겼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대중목욕탕까지 간 김소현이 기특했다. 그는 “열두 살 때가 제일 많이 노력했던 때였다”고 했다. 영화 ‘파괴된 사나이’(2010)를 찍을 때였다.
“납치돼서 지하에 갇혀 사는 아이를 연기할 때였어요. 어두운 곳에서 생활하는 친구니까 하루는 온종일 방안에서 불을 끄고 홀로 지냈어요. 코미디 프로도 안 보고 어두운 곳에서 생활했죠. ‘파괴된 사나이’ 오디션을 5차까지 봤거든요. 한 달 내내 오디션을 준비해서 봤어요. 하루에 네다섯 개씩 자유 연기를 해야 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어요. 다크서클을 만들겠다고 밤도 새고, 다크서클 분장도 하고요.(웃음)”
열여덟 여고생, 데뷔 9년차 배우 김소현에게 주어진 부담감 중에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연기는 기본으로 잘해야죠. 나이가 어려도 맡은 역할은 전혀 가볍지 않잖아요. ‘싸우자 귀신아’에서도 성인 역할을 맡게 돼서 믿고 맡겨주신 시청자분들께 실망하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동료 배우들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도 않았어요. 부담감보다는 꼭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해지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고요.(웃음) 박준화 감독님께서 쫑파티때 취기에 얼굴이 빨개지셔서 ‘내가 취해서 이런 얘기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매우 좋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지금보다 더 밝게 지냈으면 좋겠어’라고 하시는데 눈물이 났어요.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연기인데 행복하지 않으면 다 필요 없잖아요. 기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싶어요.”
박준화 감독의 의견이 투영된 것처럼 ‘싸우자 귀신아’ 속 김현지는 그동안 김소현이 맡았던 캐릭터들과 달리 밝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기억을 잃은 귀신이었는데도 말이다. 캐릭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김소현은 “작년에 ‘싸우자 귀신아’를 찍자고 했으면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건 ‘후아유’ 때부터다.
“샤이니 민호 오빠와도 2년을 함께 했는데 말도 못 놓을 정도였어요. 마음은 좋고 편한데 행동은 조심스럽고 낯가림이 심했거든요. 오빠들이나 남자 친구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촬영할 때는 서로 친해져야 만들어가기 쉬워서 ‘후아유’ 때부터 노력했어요. ‘순정’도 오빠들과의 촬영이 많아서 ‘이렇게 친해져야 하는구나’ 깨닫게 된 시간이었어요. 오빠들이 노력해줘서 더 편안해진 것 같아요.”
‘후아유’로 튼 물꼬는 ‘싸우자 귀신아’에서 빛을 발휘했다. 이 작품을 통해 김소현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밝고 통통 튀는 본연의 나를 발견했다.
“텔레비전에서 배우들이 밝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하면 부러웠어요. 언제쯤 나도 저런 연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막상 하게 될까 봐 겁이 났죠. 그런데 박준화 감독님을 만나면서 마음의 벽을 부순 것 같아요. (감독님은 언제 김소현의 밝은 면을 발견했을까요?) 미팅 때요. 원래 대본에는 원작과 비슷하게 싸움도, 말도 세게 하는 강한 캐릭터였어요. 감독님이 미팅하고 나서 저의 밝은 점을 보셨는지 밝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사실 매우 겁이 났는데 ‘네 안에 그런 면이 없지 않으니까 할 수 있어’라는 감독님의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감독님이 아닌 걸 좋다고 하진 않으시거든요. 판단력이 정확하셔서 믿고 갈 수 있었죠. 또,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질투하는 연기도, 애교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김소현의 성격이 많이 반영됐기 때문에 박 감독도 “무언가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긍정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또래 배우 중에서도 유난히 깊은 감성연기, 나이를 뛰어넘은 정극연기로 주목 받았던 김소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도전의 연속에도 모두를 실망시키지 않는 연기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 그에게 상상 속에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달만 타인이 되어 살 수 있다면 누구로 살고 싶은지’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레이첼 맥아담스요. 제가 그 배우를 좋아하거든요. 사랑스러운 느낌이 좋아요. 저도 레이첼 맥아담스처럼 사랑스러운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레이첼 맥아담스가 되면 뭘 하고 싶어요?) 사진을 많이 찍을 것 같아요.(웃음)”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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