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영화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지난 6월 1일 <박쥐> 이후 6년 만에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인 <아가씨>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에도 불구,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의 오프닝 스코어를 앞서며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6월 6일 현재) 182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아가씨>의 원작은 이미 알려진대로 영국의 세라 워터스의 장편소설 '핑거스미스'. <올드보이> 제작 당시에도 츠치야 가론/미네키시 노부아키의 일본만화를 각색해 2004년 제57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그런 박찬욱 감독을 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 궁극적으로는 임승용 프로듀서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그러니까, 그 사람이 흥행 되는 거 다 가지고 갔다? 하하하! 사실, 좋은 작품을 제안해 준 것도 있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험난한데, 큰 의지가 된다"고 농을 던지며 인터뷰의 말문을 열었다.
영화 <아가씨>에는 제69회 칸 영화제서 '벌칸상'을 수상한 류성희 미술감독의 숨은 노력이 보여진다. <올드보이>부터 함께 해 온 이유에서일까. 시대적 배경과 장소는 다르지만, 세트 곳곳 비슷한 장면을 연상케 만들었다.
이에 박 감독은 "그런가? '올드보이' 당시엔 우진(유지태)의 펜트하우스에 수영장이 있었으면 했다. 펜드하우스 유리창 너머로 혼자사는 남자 우진의 모습을 마치 어항속의 장면처럼 연출하고 싶었는데, 당시 류감독도 좋아했지만 돈이 없어 못했다고 나중에 말해줬다. 이번 '아가씨'에서는 전적으로 류 감독의 놀랍고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엿보였다. 코우즈키(조진웅)의 서재는 그의 모든 것이 집약된 곳이다. 그의 우주를 한 눈에 표현하기 위해 서재 바닥에 일본식 정원을 갖다 놓은 것은 코우즈키의 자만심 가득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일본영화에서도 없었던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그 장면을 보고 칸에서 상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하정우, 조진웅, 김태리, 그리고 김민희 등 네 명의 배우들이 연기를 할때 "계산을 하고 연기에 대한 스토리보드를 만든다"고 했다. "배우가 다르게 시도하는 것도 환영이다. 난 당일 촬영분을 미리 다 설명해 주고 촬영에 임한다. 촬영 후엔 배우들에게 부자연스러웠는지, 답답했는지에 대해 자주 확인한다"며 "(최근 인터뷰에서) 하정우가 나와 작업하면서 애드립을 못했다고? 촬영할 때는 아니라고 해놓고 이제와서, 하하!" 그러면서도 박 감독의 차기작에 대해 우선 순위를 둔다고 밝힌 하정우의 고백에 박 감독은 나름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곤 했다.
박 감독은 헐리우드에서의 첫 연출작 <스토커> 이후, <도끼 AXE>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원하는 예산을 얻는 게 힘들어서 구체적으로 밝히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헐리우드 스튜디오의 막대한 자본과 배경을 등지고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처럼 감독의 철학이 담긴 SF영화에는 도전할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나도 그런거 원하지만, 그런 작품을 만들기엔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말미, 실제로도 딸 가진 가장으로서의 박 감독은 <아가씨>의 김태리와 어린 히데코 역할을 맡았던 '조은형'이라는 아역배우를 챙겼다.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 등 세 사람은 자기 알아서 하니 걱정이 안된다. 태리는 다음 작품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시집을 보내는 딸 가진 아비의 마음이다"고 웃으며 "히데코의 성장과정을 세 명의 배우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지만, 은형이란 애가 너무나 특출했기에 방향을 바꿨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아가씨>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내가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선입견 때문에 주저하는 관객이 있다면 걱정 안해도 된다"라고. 그런 그의 당부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첫 5백만 관객을 넘기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드러나고 있다.
글 성진희 기자 / geenie62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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