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배우' 석민우 감독, 스틸컷 / 더스타DB, 영화사 다 제공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공의 가치는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오달수 주연의 영화 ‘대배우’(감독 석민우)는 고달픈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한다. “실패가 끝은 아니야. 실패해도 괜찮아.” 스펙으로 말하고, 성공만이 인생의 길이라고 여겨지는 현 세태에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쉼표’와도 같은 영화가 ‘대배우’다.
‘대배우’에 대한 짤막한 내용을 본 일부 관객은 말했다. “무명 배우가 나중에 성공하는 이야기겠네.” 하지만 ‘대배우’는 관객의 예상을 빗나갔다. 이 영화는 ‘성공’에 초점을 둔 영화가 아니다. 감독의 말처럼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과 실패한 이들이 보고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영화”다.
오달수, 윤제문, 이경영 이름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는 세 배우를 한자리에 모은 이는 유명 감독이 아니다. 박찬욱 감독 애제자로 알려진 석민우 감독은 데뷔작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한데 모았다. 이경영은 박찬욱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조감독으로 활약한 석민우 감독의 데뷔를 누구보다 축하해줬다. 섭외 자리에서 이경영은 석민우 감독에게 “시나리오 한 신만 집어달라”고 하더니, 깐느박(이경영 분)과 장성필(오달수 분)이 만나는 정통연기 신을 보고 “허허. 재밌네. 그럼 하지 뭐”라며 시나리오를 받은 날, 그 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오달수와 석민우 감독의 운명적인 만남
데뷔작은 중요하다. 다음 작품을 하려면 흥행하거나, 작품성을 입증받아야만 한다. 작품의 의미, 개연성, 캐스팅 작품을 이루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 그렇다면 석민우 감독은 왜 오달수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저는 오달수 선배를 아무도 모를 때부터 봤고 ‘올드보이’때부터 좋아했어요. 오달수가 앞에서 연기하면 웃음을 참을 자신이 없어서 자리를 피할 정도로 재미있었고, 이제껏 본 적 없는 독창적인 연기였어요. 그때부터 팬이 됐어요.”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꾸준히 하게 된 두 사람은 2년에 한 번 꼴로 만났다. 그러면서 석 감독은 오달수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젠가 내 작품을 할 때 이 배우와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런 계획이 없을 때부터 오달수와 약속했다.
“오달수 선배가 그때 그 약속을 기억하고 시나리오를 볼 거라는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런 약속을 했더라도 일이니까 별개의 문제로 봐야죠. 당연히 기대하진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장성필은 오달수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이 영화는 오달수가 아니면 잘못 만들어질 가능성이 많아서 거절하면 영화화되지 않는 게 맞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죠.”
◆‘대배우’는 바로 당신입니다
관객들은 오달수를 ‘천만 요정’이라고 부른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 관객 1,000만을 동원한 영화가 일곱 편이나 등장해서 그렇다. 또 누군가는 충무로에 없어서는 안 될 연기파 배우, 감초 배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석민우 감독이 본 오달수는 특별한 배우였다.
“배우는 많아요. 독특하게 연기하는 배우도 많죠. 그런데 연기를 독특하게 잘하는 배우는 오달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몸동작, 대사 하나하나가 유연한 배우는 오달수밖에 없어요. 이경영 선배가 ‘오달수처럼 연기하는 배우는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제가 정리하지 못한 단어들이 이경영 선배 입에서 탁 나온 느낌이에요.”
감독이 처음 ‘대배우’라는 단어를 접하게 된 건 대학 시절이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재학시절 1학년 후배들이 청소하면서 서로를 ‘대배우’라고 부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시나리오 작업 중 이 단어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대배우는 유명한 배우를 상징하는 단어지만, 제게는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단어예요. 장성필의 부인이 휴대전화에 자신의 남편을 ‘대배우’로 저장해 놓잖아요. 설강식(윤제문)의 부인도 표현은 안 하지만 남편을 믿고 대배우라고 생각하죠. 결국 ‘대배우’라는 단어는 붙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될 수 있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대배우’에는 각기 다른 대배우들이 나온다. 감독은 장성필은 노력형 배우고, 설강식은 천재형 배우라고 말한다. “장성필은 파고들어서 노력한 만큼의 것들을 끄집어내는 배우예요. 그러니까 작품 분석을 500페이지가량 쓰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노력하는 배우의 상징이에요. 반면 설강식은 하나를 알면 열을 터득하는 동물적인 배우예요.”
석민우 감독은 ‘대배우’를 만들며 억지로 웃기고, 울리는 설정을 자제했다. 관객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제작진이 뻔뻔하게 만들어 버리면 거짓으로 포장돼 버리니까 있는 그대로 보이도록 만들자고 다짐했다. 석 감독이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건 따뜻한 시선이었다.
그래서 악역으로 치부될 수 있는 설강식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로 그려진다. 꿈의 자리에 오른 선망의 대상도 그만의 이야기가 있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대배우’는 보여준다. 석 감독은 대호와 설강식의 만남이 연출할 때 어려웠노라고 고백했다.
“저는 대호를 대배우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대배우라면 과거에는 욕심 많고 후배가 치고 올라오는 걸 못 받아주는 속이 좁은 사람이었을지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 변해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 장면과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포용해주는 게 멋진 대배우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죠.”
‘대배우’를 보기 전과 후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감독은 왜 실패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제가 이 엔딩을 썼던 이유는 한 가장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배우로서는 실패할 수 있어도 아빠로서 실패하지는 말자. 이 영화의 엔딩은 한 여자의 남편, 한 아이의 아빠로서는 절대 실패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썼죠. 직업적으로는 누구나 실패를 경험할 수 있어요. 내가 노력해도 실패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가장으로서는 노력한 만큼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배우로서의 성공보다 아빠로서의 성공이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죠. 누구나 한 집안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니까요. 그것은 충분히 괜찮은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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