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칼의기억' 김고은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이은주 기자,star1@chosun.com
<은교>로 처음 김고은을 만났을 때, 소설 속 '은교'를 꺼내온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역할의 김고은을 보면 '어색하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김고은은 <몬스터>, <차이나타운>, 개봉을 앞둔 <협녀, 칼의 기억>을 통해 이 생각을 뒤집어놓았다.
<협녀, 칼의 기억>에서 김고은은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아이 '홍이' 역할을 맡았다. "촬영 기간 동안 와이어를 타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라고 말한 것처럼 그녀는 스크린 속에서 참 많이도 날아다닌다. 발을 땅에 붙이지 않은 액션, 한국영화에서는 낯선 장면을 김고은은 아름다운 선으로 스크린에 수놓았다.
"<협녀>를 촬영할 때는, 몸이 안 아픈 날이 없었어요. 매일 온몸에 근육통이 있었어요. 어떤 날은 골반이 결려서 다리가 쭉 찢어지는 장면이 안되고, 어떤 날은 접질리고. 목이랑 이런 데가 경직이 되면 누가 '퍽퍽' 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제가 해야 할 부분은 너무 많고. 누가 서럽게 하는 건 아닌데, 제가 감당이 안 되니까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김고은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날도 힘든 수많은 날 중 하나였다. 혼자 노래방에 자주 간다는 김고은은 그날도 그랬다. 술도 먹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도연이 보고 싶어졌다. 늦은 시간이었고, 처음으로 걸어보는 전화였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제가 전화를 하니까 놀라신 거예요. '어! 고은아! 왜! 무슨 일이야?'라고 물어보시는데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라고 대답했죠. 그리고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오늘 어떤 장면을 촬영했고 이런 얘기들. 그리고 끊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도연 선배님께서 잠깐 멈칫하시다 '고은아' 이러시는데 갑자기 '펑' 터진 거예요.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어요. 그때 선배님께서 '한계가 왔구나,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하면 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실 김고은은 필모그래피를 2012년 <은교>로 데뷔 이후, 모든 상업작품을 '주연작'으로 채웠다. <은교> 때는 신인이었고 현장에서 스태프들은 그녀를 '학생'으로 대했다. 하지만 <몬스터> 때는 달랐다. 모두다 '배우 김고은'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당황스럽고 긴장했다. 김고은은 돌이켜 말한다. "운이 좋은 건, 좋은 선배님들을 만난 거예요. 제가 시행착오로 겪을 부분이 훨씬 단축된 느낌이 들거든요."
"<은교>를 찍을 때는 카메라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어요. 카메라 앞에 서면 경직되고 그랬어요. 30번 찍은 적도 있었어요. 박해일 선배님은 8시간 분장을 하고 오시는데, 저 때문에 그 날 분량을 다 못찍으셨어요. 그 날 박해일 선배님께도 스태프들에게도 너무 죄송한 마음에 현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엉엉 울었어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나는 영화 한지 꽤 됐는데 아직도 30번 다시 찍을 때가 있어, 매 테이크에 집중하고 다른 방향도 찾아봐'라고 자상하게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도 테이크를 가는데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감독님께서 '오케이'하셔도 제가 '한 번 더 하면 안 될까요?' 여쭤보는 용기도 생겼고요."
김고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등장했다. 그리고 눈여겨볼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전도연 역시 "이야기를 보는 눈을 가진 배우"라고 김고은을 칭찬하며, "그래서 더욱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25살, '배우'로 '주연'으로 살아가는 그녀는 어떤 기분일까?
"어떻게 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저한테 좀 적합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있어요. 저는 그냥 연기가 좋아서 시작한 건데, 연기 이외의 것이 요구되는 부분에서는 좀 어려움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알아보신다거나 이런 것에 욕심이 없어요. <은교>라는 작품을 한 것도 그런 것에 욕심이 없이 연기로 나아가고 싶어서 선택했고요. 지금까지는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tvN '치즈 인 더 트랩'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만큼, 앞으로의 김고은을 대하는 대중들의 태도는 달라질지 모르겠다. 그 역시 "드라마를 하면 (제 생각을) 놔야겠죠"라며 미소를 짓는다. 스크린에서 자리를 잡은 스타가 드라마로 돌아오는 경우는 낯설다. 하지만 김고은은 다른 행보를 택했다. "제 나이때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내년이면 저도 후반에 접어드니까요. 이윤정 감독님의 팬이었어요. 그분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제가 할머니랑 둘이 사는데, 할머니께서 영화관에 가시기 힘들어하시는 것도 드라마를 택한 이유이기도 해요."
성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성장 속에서 그렇게도 온몸에 고통을 안겨줬던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은 김고은에게 어떤 기억일까?
"제가 중학교 시절, 잠깐 무용을 익혔어요. 취미로 갔는데 원장님께서 보시고 전공으로 추천하셨어요. 그런데 고통스러운 것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만큼 무용에 욕심이 없던 거겠죠. <협녀, 칼의 기억>도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토하고, 방에서 혼자 울기도 하고, 난리를 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촬영장에 가고 싶더라고요. 촬영 중 손가락에 칼을 맞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일부러 손을 안 봤어요. '이 합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을 마치고 손을 봤어요. 그런 제 모습에 저도 놀랐어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연기를 원하는지 알게 됐어요. 앞으로도 시련이 올 수 있겠죠. 회의가 느껴질 수도 있고. 나태해지는 순간이 올 수 있겠지만, 그때마다 기억하면 될만한 작품인 것 같아요."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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