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엄정화 "과거의 제 마음이 안타깝긴해요"
기사입력 : 2015.08.09 오전 7:54
엄정화

엄정화 "과거의 제 마음이 안타깝긴해요" / 사진 :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멋있는 언니였다. 범접할 수 없는 언니였다. 90년대 엄정화를 생각하면 그랬다. 사실 처음 마주 앉았을 때도 편한 자세를 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자 나이 서른이면…"이라는 말과 말 사이 새어 나온 걱정에 이 언니가 말했다. "아냐, 아냐. 괜찮아요"라고.


<미쓰와이프>에서 연우(엄정화)는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되고 저승에 가기 직전, '이 소장'(김상호)은 '연우'에게 달콤한 제안을 한다. 한 달간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되돌려보내 주겠다고. '연우'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명품 옷과 가방에 둘러싸인 '연우'가 아닌 목 늘어난 티를 입은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하늘 엄마'로 아침을 맞는다.


연우와 엄정화는 닮아있다. 엄정화는 "혼자라는 것?"이라며 장난스러운 웃음 지었지만, 단단한 겉모습에 누구보다 여린 마음을 감추고 있다는 면이 가장 비슷했다. 엄정화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상처많은 연우가 사랑에 고파서 스스로 닫아놓은 마음이 일방적으로 오는 사랑이나 관심에 녹아내리는 건 당연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품에 파고들 때, 밀어내지 못하고 행여 잠에서 깰까 조심스레 손을 올리는 모습에서, 영화의 말미 '연우'가 조심스레 오래된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을 꺼내보는 모습에서 '연우'가 아닌 엄정화가 보이는 듯하다.


"제가 시나리오 볼 때 그랬어요. '연우가 저랑 너무 닮았어요'라기보다 대부분 사람이 부모님이 계시던, 안 계시던지 부재에 대한 외로움이나 결핍 같은 것을 느끼면서 자라거든요. 믿기 나름이잖아요. 힘들 때마다 의지하고, 그리워하던 대상이니까. 저도 제 아버지가 그렇고요. 그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제가 좋았어요. 하고 싶었던 표현이기도 하고."


<미쓰와이프>는 '연우'와 '하늘 엄마'를 통해 '여자'의 성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인 성공, 가정에서의 성공. 물론 정답은 없다. 엄정화는 "여자의 성공과 남자의 성공이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아요. 여자는 가정에 속해있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여자의 성공이 뭘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이 각자 그리는 성공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자의 성공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잘 모르겠다는 그녀지만 손담비, 백지영, 서인영, 가인 등 수많은 스타들은 엄정화를 롤모델로 꼽았다. "저는 여자 가수로, 여배우로 살아오면서 저만의 성공을 향해 가고 있어요. 아직도 끝난 얘기가 아니라 가고 있는 중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만큼 갈 수 있다는 자체로만 본다면 전 굉장히 성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었어요.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엄정화는 운이 좋다는 말로 자신을 낮췄지만, 무대 위에서, 스크린 상에서 그녀는 달랐다. '처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이콘'이었다. '초대', '스마일 어게인', '몰라', '디스코'의 무대는 파격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등의 작품에서 그녀는 시대를 딛고 일어선 여자의 단면을 보여줬다. 하지만 엄정화는 당시를 불안했다고 회상했다.


"여자 나이 서른셋이요? 어려요. 진짜 어린 거야. 우리 세대가 그랬잖아요. 여자 가수가 33살, 34살이라고 하면 가수 활동도 끝인 것 같고. 그 최전방에서 시간을 지냈기 때문에 항상 불안해하면서 살긴 했어요. '할 수 있을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나왔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33살은 진짜 (어려요). 그땐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요. 이소라 씨와 친한 친구인데 그때 '우린 이제 끝 인걸 꺼야' 막 이랬었어요."


앞서 언급된 곡들과 작품들만 봐도 불안한 엄정화를 떠올리긴 어려울 일이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엄정화는 앞으로를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제가 해온 것들을 보면 '되게 오래 하기도', '많이 했기도'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순간순간 들었던 '이게 마지막일까?' 불안했던 마음도 생각이 나요. 그런 마음들이 좀 안타깝긴 해요. 과거의 제 모습이. 예전에는 '이 나이에도 할 수 있어' 보여주시는 분들이 많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같이 가는 느낌이 들어요. 보통은 선례가 있으면 마음을 놓으면서 '괜찮을 거야' 하면서 가잖아요.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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