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하정우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그 어느 때보다 말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허삼관 매혈기'라는 작품을 만나 <허삼관>을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순간부터 준비와 실제 촬영, 그리고 편집 등의 후반 작업까지 감독 하정우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허삼관>은 충무로 최고의 대세남 하정우가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연출을 맡았다. 첫 연출작은 아니다. 정경호 주연의 <롤러코스터>라는 영화로 이미 충무로에 감독 신고식을 마쳤다. 두 작품의 색은 확연히 다르다. 하정우는 "<롤러코스터>는 제 입맛대로 만든 작품"이라면 "<허삼관>은 작가와 감독의 입장에서 상업영화의 보편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라고 차이점을 밝혔다.
'허삼관 매혈기'라는 세계적인 작가 '위화'의 원작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이를 국내 정서로 가지고 오면서 소설 속 문화혁명 부분은 빠졌다. 하정우 역시 고민이 많았다. 그는 "정말 별 짓을 다 해봤어요"라며 그 부분이 빠지기까지의 고민을 자세히 설명했다.
"한국 정서로 가져와서 70, 80년대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대입시켜봤어요. 예를 들어 첫째 아들 일락이가 광주까지 가서 5.18 학생운동을 하는 인물이 된 거예요. 허삼관은 그걸 뚫고 일락이를 살리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런 설정으로도 시나리오를 써봤어요. 그런데 문제는 정말 작위적인 장치를 많이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이런저런 것들을 다 대입해봤는데 결국은 한국영화에 다 사용됐던 코드라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재창조해야겠다, 가지고 있는 소소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경쟁력일 수 있겠다' 생각해서 그것에 집중했죠. 이미 시나리오 작업부터 후회와 고민이 많이 한 뒤의 결정이라 그다음부터 후회는 없어요."
영화 '허삼관' 촬영 현장 / 사진 : NEW 제공
허삼관과 허옥란(하지원)이 만나는 배경은 1953년 공주다. 역사적으로 6.25 사변이 일어난 후. 하지만 영화 속 마을은 당시의 우리나라 시대상과는 좀 동떨어진 느낌이다. 의도된 배경이다. 하정우는 "첫 장면에서 공사판으로 시대상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위화' 작가의 문어체를 가지고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만약 배경이 우리나라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면 특유의 문어체 대사가 불균형을 이룰 것 같았어요"라고 자신의 의도를 밝혔다.
배우들이 각각 다른 말투를 쓰는 것도 판타지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공주라서 충청도 사투리를 쓰지 않고 배우들은 각각 자신의 캐릭터에 맞는 말투로 대화한다. 이에 감독 하정우는 "충청도 사투리에 '위화' 작가의 문체가 더해지니 '개그콘서트'같더라고요. 가뜩이나 캐릭터가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아 불리해지고. 그래서 배우들에게는 캐릭터에 맞는 말투를 요구했어요. 우리는 6.25 이후 여기저기에서 온 피난민들이다, 이런 변명으로요"라고 말한다.
감독 하정우의 디테일함은 음악에서도 묻어났다. 영화 <허삼관>의 음악은 하정우와 영화 <멋진 하루>에서 음악감독으로 만난 김정범이 맡았다. 그때의 인연이 <577 프로젝트>와 <허삼관>으로 이어졌다. 하정우는 <허삼관>이 한 영화지만 '허삼관'이라는 인물의 성장에 따라 분류를 달리했다. 그리고 그 분류는 음악으로 구체화됐다.
하정우는 "음악감독님과 시나리오 전부터 음악 이야기를 했어요. 음악이 비발디 '사계'처럼 구성이 나뉘어있어 극의 풍부함을 더하고 싶었어요"라며 "음악이 총 3개의 구성으로 나뉘는데 음악감독님이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오케스트라는 체코에서 녹음했어요. 집시음악은 이탈리아에서 녹음했고. 하와이안 뮤직은 파리에서 녹음됐죠. 그렇게 50년대와 60년대의 '허삼관'의 정서를 어떻게든 미술과 음악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했죠"라고 남다른 노력을 전했다.
"'허삼관'은 어찌보면 원작보다 굉장히 소소하고 평범한 이야기예요. 그런데 보편성을 가진 스토리가 가장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도 알고 보면 평범한 갈등 구조예요. '오셀로(Othello)'도 부인을 의심하는 것부터 파국을 만드는 구조거든요. '허삼관'은 친아들인 줄 알았던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허삼관'이 성장하는 이야기죠."
보편성이 갖는 이야기에 힘을 더하기 위해 그는 사실적인 50년대의 공주 배경보다, 50년대와 60년대에 제작된 한국영화를 참고했다. 당시에 사용한 카메라의 앵글이나, 속도를 주시했다. 그래서 50년대 색감에는 채도를 15% 정도 죽였다고 디테일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60년대는 색감이 100%가 넘어갔다고. '허삼관'의 성장은 영화 속 스토리에서 뿐만이 아니라 미술과 음악, 화면에서 모두 묻어났다.
'허삼관 매혈기'와 비교하면 '허삼관'의 후반부에는 유머코드보다 부성애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하정우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선을 먼저 생각했다. 하정우는 누구보다 유머코드에 욕심이 있었다. 허삼관이 피를 뽑는 장면에서 앞사람이 방귀를 뀌는 장면을 실제 촬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덜어냈다. 웃음보다는 허삼관이 매혈을 통해 고통을 받고 일락이를 만난다는데 더 집중했다.
<허삼관>은 보편성, 즉 '누구나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원작이 가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부분을 이를 살리기 위해 접어뒀다. 그래서 더욱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기만두를 만들어냈다. "만두는 아이의 로망, 일락이의 로망이죠. 만두를 통해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그냥 <허삼관>이 그런 것 같아요. 되게 소중한 건데 너무 가까이 있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가족, 만두(웃음) 그런 소소한 동심 같은 마음인 것 같아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허삼관>이라는 동화같은 마을 세계로 다시 되돌아간다. 분명히 며칠 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접했다. 하지만 감독 하정우가 되짚어주는 이야기에 <허삼관>이 새롭게 보인다. 하정우는 <황해> 촬영 당시 연변에 간 이야기를 들려줬다. 첫 인상은 너무나 황폐해서 여기서 사람이 어떻게 살지? 였지만 눈이 온 다음날이면 그곳은 완전히 겨울 왕국이 되었다. 그래서 '아, 이 사람들이 이걸 보고 버텨내며 살아가는구나, 눈의 낭만을 보고 숨 쉬고 웃고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허삼관>은 그래서 회색빛 네모의 도시에 사는 우리들에게 '연변의 눈' 같은 '온기'를 전해줄 예정이다. 14일 개봉.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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