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황정음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잘 나가던 드라마 ‘비밀’ 종영 후, 모두가 그와 작품 얘기, 배우 황정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어했지만 황정음은 “입방정 떨다 비호감 될까봐” 자제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은 작품 ‘끝없는 사랑’이 끝난 터라 인터뷰는 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제서야 취재진을 만난 건 “힐링하고 싶고, 외로워서” 였다.
배우 황정음을 말할 땐 언제고 두 편의 작품이 입에 오르내린다. 하나는 배우 황정음의 시작을 알려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2009)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진짜 배우’로 인정받게 해준 ‘비밀’(2013)이다. 연기 10년 차가 돼서야 “드라마 안에서 좀 놀았죠”라고 말하는 여유도 갖게 됐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확실하게 자리잡고 싶었던 ‘절실함’이 배우 황정음을 만들었다.
황정음은 ‘비밀’을 고마운 작품이라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밀’은 황정음에게 ‘2013 K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의 영예를 안겼고, 방송 내내 쏟아지는 호평 기사 하단에 달린 2,000개가 넘는 칭찬 댓글들은 그의 가치를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황정음의 대표작 ‘비밀’ 다음에 선택한 작품이 ‘끝없는 사랑’이었기에 모두 기대했다. ‘이번에도 흥행할까?’ 모두의 기대가 부담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황정음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제가 언제부터 기대치가 있는 배우였나요?(웃음) ‘비밀’ 이후에 조금 더 높이 평가해 주는 거지, 기대치는 없죠. 가수가 연기해서 좋은 성과가 있었던 적이 별로 없어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한 거에 대한 칭찬이라고 봐야죠. 오히려 부담스럽다기보단 책임감이 생겼어요”라고 되려 자신을 눌렀다.
차기작으로 거론된 최종 두 작품 중에 ‘끝없는 선택’을 선택한 이유는 휴식 차 친구들과 함께 싱가포르를 찾은 황정음을 기어코 현지까지 찾아와 ‘하자’고 설득했던 매니저의 몫이 컸다. 쿨한 대답만 내놓던 황정음은 “어려워서 안 한다고 했는데 싱가포르까지 쫓아와서 하자길래 ‘왜 저래? 돈 받아?’라고 말했다니까요”라고 대응한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사실 ‘비밀’ 끝나고 시시해서 다른 작품을 못하겠더라고요. ‘하이킥’으로 코미디의 정점을 찍었고, 눈물 연기 못했던 황정음이 ‘자이언트’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려 칭찬받았잖아요. 그때 직감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못하는 걸 자꾸 해야 내공이 쌓인다는 걸. 점점 더 욕심이 생기기도 했고요”라며 ‘끝없는 사랑’을 결정적으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굳이 시청률과 화제성을 작품의 성공요소로 꼽는다면 ‘끝없는 사랑’은 흥행작이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배우의 연기력까지 평가절하되진 않는다. 흔들릴 때마다 황정음은 이 생각만으로 중심을 다잡았다. “’비밀’ 유정이랑 똑같단 얘기를 들으면 안 되겠단 생각에 인혜를 강한 여자로 표현했어요. 너무 강하단 감독님의 말엔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고, 처음부터 착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며 설득했죠. 시련을 겪은 후에 성장한 인혜가 착해진다면 변화된 계기가 있을 거라 납득이 되는데 대본에 착하게 나왔으니 그렇게 연기해야 한다는 건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마지막까지 캐릭터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해요.”
‘비밀’ 속 강유정은 한사람을 향한 순애보가 있었지만 ‘끝없는 사랑’의 서인애는 캐릭터에 대한 일종의 보호장치가 없었다. 막판에는 공감대 형성이 부족해 살짝 느슨해진 감도 있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공부하고, 진심을 담아 연기했지만, 배우의 노력만으로 막판 스퍼트를 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황정음은 변명보단 반성을 택했다.
그는 “시청자가 제 캐릭터에 대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제 탓이죠. 어떻게 해서든 시청자를 이해시키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가야 하는데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만들 시간이 없었던 게 아쉬웠어요. 과정과 결과를 떠나 ‘끝없는 사랑’은 제 마음이 움직여서 하게 된 작품이에요. 그땐 이 작품보다 어려운 작품이 없었고, 부딪히며 성장하고 싶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제가 반성해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라고 쿨하면서도 성숙한 답변을 내놨다.
그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솔직하고, 꾸밈없는 말로 오히려 상대를 제압하는 황정음에게도 차분한 순간은 있었다. 가수 출신 배우로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던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 촬영 당시, 하루에 60신 촬영을 책임져야 했다. 말 많던 캐릭터 때문에 유독 대사도 많았고 60신 모두 나온다는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울면서 대본을 외웠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사를 읊었던 시절이 그에게도 분명 있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연기 잘한다”는 칭찬이 값지고,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황정음은 “사람이 참 단순해요. 칭찬받으면 행복하고 실수하면 한없이 무너져요. 그래서 연기자는 외롭고 나약한 존재인 것 같아요. 티를 안 낼 뿐이지 조금만 뭐라고 해도 힘들어하고 고민도 많잖아요. 저도 요즘 행복하지 않은가 봐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저는 연기로 힐링하고, 연기로 칭찬받았을 때 가장 행복한데 지금 당장 행복하려면 연기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아요”라며 끝없는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다시 또 무너질 수도 있고, 더 큰 행복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황정음에겐 실패의 두려움보단 도전의 설렘, 성공의 기쁨이 더 절실해 보였다. 그는 “누구나 성공하고 내려가기를 반복하지만 저는 밑까지 내려가도 상관없어요. 연기로는 무서울 게 없거든요”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당당하면서 최선을 다하니까, 그렇게 좋은 성과를 내왔던 황정음이니까 점점 더 성장할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지금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라서 제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는 게 뭔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그때 감사하면서 사는 법을 배워야죠. 차기작은 여러분께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작품을 보고 있어요. 이제 서른 하난데 젊었을 때 에너지를 쏟아 부어서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고.(웃음) 준비 많이 해서 좋은 모습으로 곧 인사 드릴게요.”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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