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유미 "엄마가 물벼락 맞는 딸 안쓰러운지 몇 번 우셨다"
기사입력 : 2014.10.12 오후 6:23
배우 정유미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mintstudio.com

배우 정유미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mintstudio.com


'엄마'라는 단어는 따뜻하고 뭉클하다. 여자의 경우, 결혼적령기에 접어들거나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 애틋한 마음이 더욱 사무친다. 친구 같은 엄마도, 무뚝뚝하고 엄격한 엄마도 딸의 시선에서는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복잡미묘한 마음을 갖게 하는 존재다. 드라마 '엄마의 정원'(2014)에서 낳아준 엄마와 길러준 엄마 사이에서 숱한 눈물을 흘렸던 윤주로 수개월을 살았던 배우 정유미는 오죽했으랴. 우여곡절을 겪는 윤주 때문에 정유미는 극 초반부터 주구장창 눈물을 흘리며 알게 모르게 마음 고생을 했다.


정유미는 "키워준 엄마와 낳아준 엄마, 두 엄마를 각기 다르게 생각했다. 윤주는 두 엄마에게 감사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인물이다. 한 엄마한테 치우치면 주인공으로서 모든 인물에게 선함을 가져야 하는 기준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키워준 엄마 지선(나영희)도 윤주를 낳아준 친엄마 순정(고두심)도 대단하지만, 정유미를 낳아주고 키워준 실제 엄마의 존재에 고마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시기였다.


작품을 통해 "한 여자의 인생을 살았다"던 정유미는 결혼과 엄마, 그리고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몰상식한 악행으로 치를 떨게 만들었던 시어머니 경숙(김창숙)을 통해 아들 가진 시어머니들이 왜 그러는지도 조금은 이해했다. 무조건 시어머니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극 중 윤주가 불임으로 인해 고통 받다 결국 이혼에까지 이르게 되고, 다시 기준(최태준)과 재회한 후에 입양을 선택하는 장면은 드라마를 위한 극적인 연출로 해석하기 힘들다. 정유미는 "주변에 친한 언니들이 지인들 중에 시험관 시술을 몇 년 간 시도해서 애를 갖는다는 얘기를 해줬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심지어 저희 엄마도 '우리 딸이 진짜 불임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가슴 아팠다고 하더라. 나 역시 윤주처럼 아기를 못 갖는다면 어른들께 몹쓸 죄책감이 들어 견디다 견디다 스스로 물러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직접 연기를 했던 정유미만큼 브라운관을 통해 그를 바라보던 친엄마도 드라마 속 상황에 몰입해 가슴 아파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정유미는 "엄마는 철저히 시청자 입장으로 드라마를 보셨다. 딸이 물벼락을 맞아서 그런가 너무 몰입해서 몇 번을 우셨다더라. 엄마도 언젠가는 나를 시집보내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고부갈등이나 불임 문제를 실제로 겪으면 너무 가슴 아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것이 정유미는 엄마에게 소소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다 말할 정도로 다정한 딸이다. 함께 커피숍에 가거나 영화를 보러가는 하나 뿐인 자식이자, 친구 같은 딸이다. '맏딸'이라 생각하는 5년된 암컷 강아지까지 정유미네 식구들은 화목한 분위기 속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기억할 수 있는 한, 영원토록 잊고 싶지 않은 엄마와의 추억 속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면서 정유미는 향긋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엄마가 늘 자랑하듯이 얘기한다. 고 3때 수능을 앞둔 어느날 엄마가 학교 앞으로 데릴러 와서 갑자기 바람쐬러 가자며 갈대가 있는 교외로 떠났다. 그때 엄마는 '나는 내 자식한테 공부하라고 안하고 이렇게 환기를 시켜주는 좋은 엄마'라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나를 올바르게 자랄 수 있게끔 현명한 방법으로 키워주신 분이다. 엄마와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며 엄마의 사랑에 말로 표현 못할 감사함을 표했다.


싹싹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강철 체력의 기본인가 싶을 정도로 정유미에게는 기본적으로 선하고 밝은 이미지가 내재돼 있었다. 배우 생활을 하며 무명시기를 견뎌낸 것도 그의 밝은 성격이 한 몫했겠지만 묵묵히 딸의 길을 응원해주던 친구 같은 엄마의 존재가 컸다. 정유미는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엄마였다. 엄마가 '너는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정유미라는 사람이다. 네가 거기에 백을 쏟아서 네가 없어져 버리면 안된다. 일은 잘될 수도 못될 수도 있다. 그런 일에 좌지우지돼서 네 가치를 판단하지 말아라'라고 가르쳐 주셨다. 딸의 인생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엄마의 마음이 좋았다"며 뭉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택에 있어 많은 장점이 있었지만 정유미가 일일드마라를 택하며 가장 기뻤던 것은 바로 외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린 것이다. 그는 "'옥탑방 왕세자'를 할 때는 사촌 동생들이나 친구들은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10시까지 기다리는게 힘드시다며 8시에 나오고 매일 나오는 일일드라마를 하라고 하셨다. 일일드라마를 하려면 더 잘돼야 하는거냐고 하시더라. 일일드라마나 아침드라마를 하고 하셨는데 '엄마의 정원'을 하게 돼서 할머니 소원을 풀어드린 느낌이다. 할머니가 좋아하시고 주변 분들이 전화하셔서 손녀딸 안쓰럽다고 하신다더라"며 에피소드를 전했다.


혹시라도 안 좋은 평가를 받지 않을까, 시청률이 저조하진 않을까 불확실한 미래에 걱정도 많았지만 "하길 잘 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결과는 좋았다. 126부작 일일드라마를 하며 고정 예능프로그램을 소화하는 고된 스케줄을 끝내고 언론매체 인터뷰를 진행하던 시기였음에도 정유미는 "참는 캐릭터였던 윤주를 보내고 다른 캐릭터에 몰두하고 싶다"며 "밝고 망가지는 재밌는 캐릭터로 하루빨리 시청자 분들께 인사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줄 줄 아는 정유미는 그리 머지않아 좋은 캐릭터로 시청자를 행복하게 만들 배우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막막한 갈대밭을 지나 눈부신 가을빛이 비추는 탁 트인 시야에 들어선 것처럼, 정유미는 배우로서 딸로서 행복한 추억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좋은 딸, 좋은 배우로 살아갈 정유미의 시간들이 문득 보고 싶어졌다. 맑고, 밝고, 유쾌하게, 그렇지만 작품 속에서는 또 다른 반전 매력을 이끌어낼 거란 기대를 품은 상상과 함께.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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