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황후’ 지창욱 “판타지적인 사랑, 실제로 가능할까?”
기사입력 : 2014.05.16 오전 9:41
'기황후'에서 타환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지창욱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기황후'에서 타환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지창욱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죽을 때까지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남자. 뭐든지 빨리 소비되는 현시대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인간상이다. 희귀하므로 이 시대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꿈꾼다. 나만 바라봐주는 남자,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드라마 ‘기황후’ 속 타환(지창욱)은 승냥(하지원)을 사랑하고, 집착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순애보적인 남자였다.


51회라는 대장정을 끝낸 지금, 지창욱의 타환이 아닌 다른 타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로 남았지만, 사실 지창욱은 2순위였다. 1순위 배우가 못하게 되면서 뒤늦게 합류하게 된 케이스다. 부담도 많이 느꼈고 ‘잘못했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으로 ‘기황후’와 타환에 집중했다.


“타환은 한 회에서도 기복이 심했어요, 웃다가 울다가 두려움에 떨다가. 기복이 심했는데 그걸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복선을 깔아주면서 서서히 바뀌어야 하는지를 감독님과 작가님과 많은 상의를 했었어요. 타환이는 처음과 끝만 보면 딴사람이 된 것처럼 변하는데 이를 어떻게 변화해 가야 하는 건지 많이 고민스러웠던 것 같아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인을 끝까지 붙잡고 사랑한다는 게 가능할까.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이 질문에 대한 지창욱의 솔직한 생각은 타환의 사랑은 현실에 있지 않은 판타지이고, 불멸의 사랑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거다.


“드라마를 보면서 영원한 사랑에 대한 로망을 가질 수 있잖아요. ‘닥터 이방인’도 의사 얘기인데 현실 속 의사는 그 정도로 멋있지 않고요. 말 그대로 의사 선생님이지 의사 오빠는 아니죠. 현실에 없을 법한 의사 얘기를 하니까 더 열광하고 극적으로도 더 재미있다고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타환을 연기하면서 부럽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사랑하고 싶기도 한데 그런 여자가 나한테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다 주고 싶은 여자가 나타나면 내 인생이 온전할 수 있을까 싶어요.”


지창욱이 ‘기황후’를 택한 이유도 타환이라는 인물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대본 속 타환은 귀엽고 사랑스러웠고, 유약하고 찌질하지만 밉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많이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사실 여자주인공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민폐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표현해야 했고, 미워 보이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그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에요.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로 조금씩 달라지거든요.”


타환에 빠르게 흡수되고 완벽하게 표현해낸 지창욱의 열연에 안티팬도 연기력을 인정할 만큼 호평이 이어졌지만, 스스로는 시청자의 칭찬이 아직 쑥스럽고 실감도 나질 않는다.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로 많은 사랑을 얻었을 때는 “차라리 내 이름이 동해였으면”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던 그였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배우가 작품으로 기억된다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였다. 지창욱으로 불리든, 타환으로 기억되든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지창욱의 얼굴에서 여유가 느껴졌다.


“어떤 작품을 하든 다 배울 점이 있고 항상 도움이 돼요. 한 작품에 인해 갑자기 연기가 느는 게 아니라 조금씩 쌓이는 것 같아요. 작품이 잘되건 안되건 느끼는 게 많아서 지금의 나를 만들고 앞으로의 나를 만드는 것 같아요. 인생의 전환점이 뭔지 묻는 분들도 많았는데 ‘기황후’를 하기 전과 후의 지창욱은 똑같아요. 크게 바뀐 게 없죠. 저 스스로나 제 연기는 아주 조금씩 달라져 왔던 것 같아요.”



배우를 보다 많은 채널을 통해 만나고 싶은 마음은 팬의 입장에선 당연하다. 작품을 통해 만난 배우가 화보에서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고, 예능을 통해서는 꾸미지 않는 ‘본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창욱 역시 이런 팬의 마음을 잘 알기에 예능 출연도 고려해봤지만, 실제 모습을 본 대중이 자신을 작품 속 캐릭터로 봐줄 수 있을지도 고민이고, 연기 철학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제 연기 철학은 대중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연기를 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대중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예전에 댓글을 보고 연기 스타일을 바꾼 적이 있는데 계속 바꿔 나가는 것도 힘들고 결국엔 제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때 했던 생각이 대중에게 휘둘리다 보면 ‘배우 지창욱은 없어지겠구나’였어요. 선배들을 보면 수많은 철학을 가진 분들이 많고 다 달라요. 저도 선배들처럼 저만의 색깔을 계속 나가는 중이에요.”


승냥의 사랑을 갈구하던 타환으로 8개월을 산 지창욱에게 ‘연애해야죠’라고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지창욱은 “하고 싶다”면서도 “스멀스멀 할 듯하면서도 바빠져서 안 된다. 가끔은 시도조차 안 할 때도 있다. 연애는 진짜 어려운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세상엔 남자도 많고 여자도 많아서 저만을 다가오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연애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시간이 없는 게 제일 문제죠. 많이 못 보고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들이요. 이해는 가도 본인은 싫은 느낌? (연예인을 만나면요?) 더더욱 안 되죠. 똑같이 바쁘니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게 일반적인 사랑 같아요. 드라마의 사랑은 판타지예요.”


불가능으로 가득 찬 현실에서 1%의 가능성을 믿고 싶게 만드는 여성들의 로망 캐릭터로 급부상한 지창욱이 다음 작품에서 어떤 캐릭터로 여심을 사로잡을지 기대를 모은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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