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아라, “20대를 예쁘게 기억될 수 있게 만들어 준 ‘응답하라 1994’”
기사입력 : 2014.01.06 오전 11:44
배우 고아라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배우 고아라 / 사진: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데뷔 10년 차 배우에게 대표작이 하나밖에 없다는 건 누구라도 힘든 일이다. 대표작이 데뷔작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2003년 성장드라마 ‘반올림’의 여주인공 이옥림 역을 맡아 데뷔와 함께 주목받았던 고아라는 ‘반올림’ 이후 10년 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했고 캐릭터 변화도 고심하며 작품을 택했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한 줄기 빛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2013년 하반기, 불타는 금요일을 마다하고 텔레비전 앞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모았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에서 고아라는 ‘신비로운 인형’ 이미지를 단번에 날려버리고 털털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그 결과 그는 캐릭터와 혼연일체된 모습을 보이며 연기 인생 최고의 호평을 얻었고, ‘응사’ 애청자들에게는 귀여운 연인이자 함께 하고 싶은 친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연기 호평이요? 사실 제가 인터넷을 잘 안 하기도 하고 극 초반엔 정신 없이 바빠서 ‘응사’ 1,2회가 방송된 후 반응이 좋았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응사’ 초반에는 나정이가 농구선수를 따라다니는 단면적인 모습밖에 보여드리지 못해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나정이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해서 고민도 많이 했고 심적으로도 부담됐죠.”


고아라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응사’에서 못생김을 연기하고 있는 고아라’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에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빠지기 시작했다.


“저는 많이 고민했지만, 저희 가족들이나 친구들, 제 지인들은 방송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저게 너의 실제 모습이라는 걸 모르겠지? 네가 열연한다고? 참~ 열심히 해봐라’면서 문자를 보내주셨어요.(웃음) 제가 이번 작품을 통해 느낀 건 저처럼 소똥 냄새 맡으면서 자란 시골 아이도 차도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거에 대한 경이로운 감동과 함께 ‘응사’를 통해 편안한 이미지도 같이 생각해 주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요.”



‘응답하라 1994’라는 작품 안에서 ‘고아라를 망가트려 보고 싶다’는 이우정 작가의 한 마디에 그는 ‘감동’했다고 했다. 화보 속 ‘도도녀’라는 획일화된 이미지에서 탈피해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 기대와 제작진에 대한 믿음에서 시놉시스도 받아보지 않고 바로 출연을 결정했었다. 특히 “방귀도 뀌어야 하고 응가도 해야 하는데…”라는 작가의 말에 “정말 잘할 수 있다. 시켜만 달라”고 말할 정도로 의욕 충만했다. 하지만 단 하나, 극 중 나정(고아라)이 농구선수 빠순이라는 설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부족해 애를 먹기도 했다.


“저희 시대에는 아이돌 전성시대였거든요. H.O.T, god, 핑클, S.E.S에 열광하는 건 체감할 수 있었는데 농구선수 오빠들은 거리감이 있었어요. 작가님이 대본에 상세하게 써주셨지만 과제하듯이 도서관에서 그 시대 공부를 했어요. 어느 날은 인구 도표까지 지역별로 보고 있더라고요.(웃음) 경제면부터 문화면까지 빼놓지 않고 열심히 봤고, 특히 상민오빠에 대한 자료는 나정이 만큼 제 방에 있어요.”


고아라의 연구는 작품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만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개구진 더벅머리도 “바보같이 귀여운 머리를 해보고 싶다”고 신원호 감독에게 미리 물어보고 90년대 지그재그 층의 단발머리를 ‘면도칼’로 자르는 열정으로 준비했었다.


“사실 지금도 층이 이상하게 나서 머리가 엉망이에요. 그 시대에는 가위가 없어서 면도칼로 잘랐던 거지 21세기엔 가위로 자르셔야 합니다.(웃음) 면도칼이 머리카락에 굉장히 안 좋대요. 극 초반 머리는 면도칼로 잘라서 만든 거고요, 머리를 기르면서는 그 시대에 유행했던 호일 파마를 했었어요. 인증 사진도 찍었는데 추해서 감히 SNS에 못 올렸어요. 이번 작품은 준비 과정부터 정말 재미가 남달랐어요.”


만반의 준비를 거쳐 탄생한 캐릭터여서일까. 여배우를 내려놓고 걸신이 들린 것처럼 양볼 가득 음식을 넣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마치 다람쥐 같다는 평과 함께 ‘먹방계의 여신’, ‘먹방 샛별’ 등의 깜찍한 애칭도 얻었다.


“나정이가 많이 먹는 아이기도 하고 저도 워낙 밥을 잘 먹는 편이어서 항상 열심히 먹었어요. 저희 할머니가 전라도 분이셔서 손맛이 있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맛을 음미하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할머니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죠.”


“먹는 게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하던 나정이 고아라의 입맛을 사로잡은 건 바로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해온 볼락구이. 음식과 얽힌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삼천포를 배경으로 왕소라를 먹는 모습이 담겼던 10화였다고.


“왕소라 신을 찍기 위해 삼척으로 내려갔는데 중간에 비가 왔어요. 비속에 왕소라를 놔두다 보니 뭐가 잘못됐나 봐요. 왕소라 똥을 보면서 ‘이런 똥까지 먹어라’하는 어머니 대사가 있어서 일부러 똥 큰 소라를 찾아서 먹었는데 탈이 났어요. 그래도 극 중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보내오는 특산품을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랬어요. 가족도 생각나고요.”


먹는 연기만큼 고아라의 매력을 배가시켜줬던 장면은 바로 애드리브인지 실제인지 모를 혼연의 막춤 신이었다.


“막춤 추는 장면은 후반부에 나왔는데 후반에는 대본을 현장에서 받아보다시피 해서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자세히 보시면 막 춤인데 박자가 너무 잘 맞아요. 문어춤이랑 각기춤을 짬뽕해서 췄는데 노래도 못 듣고 촬영했거든요. 아쉬운 거를 차기작에 제가 고스란히 녹일게요. 감독님이 절 잘 지켜주셔서 아직 덜 내려놨어요.(웃음)”


먹방, 면도칼 머리 등 망가짐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진 고아라와 '응사' 속 성나정의 싱크로율은 몇%일까. 이에 고아라는 70:30 혹은 50:50, 그의 지인들은 80:20 성나정과 닮았다고 했다.


“제가 나정이 만큼 많이 먹진 않지만 제가 먹을 양은 열심히 먹는 스타일이라서 먹는 점이 닮았고요. 오지랖 넓은 거, 어른들하고 있을 때 나정이가 하는 행동들도 많이 닮았어요. 특히 짝사랑 앓이는 많이 해봐서 작가님과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진심을 담아 연기했죠. 아! 나정이가 이성 친구한테 편한 친구잖아요. 저도 남자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편하게 지내거든요. 문제는 나정이도 저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매력 발산을 못 해요. 나정이도 그러면 안 되는 게 새침한 척, 편안한 척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잖아요. 그런 부분들에 정말 공감 많이 했었어요.”


고아라는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앞으로 연애하면 나정이처럼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비록 현장에서는 못난이라고 구박 받으며 지냈지만, 사랑도 많이 받으면서 촬영했기에 나정이와 함께했던 이번 작품은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나정이가 쓰레기와 이별한 후에 다시 마음이 통하는 그 시점에 저도 마음이 설렜어요. 설레는 장면이 정말 많아서 매 순간 웃으면서 촬영했죠. 제가 연애를 제대로 못 해봐서 그런가? ‘앞으로 연애하면 나정이처럼 해야지’ 하면서 몰입했었어요. 제가 나정이랑 비슷하게 애교도 많은 편이어서 나정이 같은 연애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20대를 예쁘게 기억될 수 있게” 만들어 준 ‘응답하라 1994’를 떠나 보내며 고아라는 함께 동고동락하며 울고 웃었던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떠올렸다. “매 순간이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눈물이 났었던” 작품을 이제는 마음 한켠에 담아둔 채 이별해야 하는 마음이 버거울 만큼. 그렇게 고아라는 ‘응사’와 아름다운 작별을 했다. 어쩌면 연기 인생 제 2막을 연 고아라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현재, 바로 지금 눈앞의 시간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감독님이 마지막 오케이 컷을 되게 늦게 하셨어요. 배우들끼리는 울고 있고요. 모든 스태프들이 울면서 끝낼 수 있는 작품은 앞으로도 흔치 않을 것 같아요. 모두가 부둥켜안고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면서 웃으며 기념 촬영을 찍었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응사’는 즐거움을 배로 느끼면서 찍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새해 계획은요? 지금도 보고 있지만, 시나리오를 차분히 읽어보고 신중하게 차기작을 결정하려고 해요. 대본을 읽고 책을 읽는 게 가장 큰 새해 소망이자 계획이에요.”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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