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금의 제국’ 고수, “밥상에 제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기사입력 : 2013.09.16 오후 6:17
SBS '황금의 제국'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고수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BH엔터테인먼트 제공

SBS '황금의 제국'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고수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BH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수가 달라졌다. 눈빛엔 독기가 가득하고 말투엔 가시가 돋쳤으며 움직임 하나하나에 긴장하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묻어난다. 인간을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으로 나눌수 있다면 고수는 선한 인상을 주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런 그가 SBS ‘황금의 제국’을 만나면서 내재된 연기 내공을 발휘하며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을 바탕으로 안정된 연기와 발성, 호흡, 극에 몰입하게 하는 표현력으로 안방 시청자들을 자신에게 흡수시켰다. 이에 고수가 연기한 캐릭터인 장태주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판자촌에서 태어나 재벌그룹인 성진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르려는 ‘야망가’ 장태주는 어떤 인물일까.


“장태주는 선과 악으로 구분하기 힘든 인물이에요. 둘 다 갖고 있어요.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이 나뉘어 있죠. ‘황금의 제국’은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드라마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태주는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좇아간다고 볼 수 있고요.”


‘황금의 제국’ 속 장태주는 자신을 위해 살인 누명을 쓰며 희생하는 여자 윤설희(장신영)에게 7년 동안의 필리핀 여행에 함께해 줄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는 “선배는 내가 청혼한 첫 번째 여자가 될 거”라고 말한다. 살인죄를 덮어씌우고 함께 살 집을 마련했다고 말하는 ‘나쁜 남자’ 장태주에게 윤설희라는 여자는 어떤 의미였는지 고수에게 물었다.


“태주에게 사랑은 없어요. 설희는 태주가 돌아갈 수 있는 곳?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일 뿐이죠. 현실에서도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절대 열리지 않는, 사랑을 주지 않는 나쁜 남자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태주와 서윤(이요원)의 러브라인도 성립될 수 없죠.”



분명한 의미가 있는 캐릭터들과 수 십 개의 점처럼 흩뿌려진 사건들이 결국엔 하나로 모이는 소름 돋는 스토리, 대사만으로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는 대사의 힘은 ‘황금의 제국’이 여타 드라마와는 확연한 차이점을 주는 드라마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힘이 있기 때문에 야외촬영을 최소화하고 주인공들이 함께 사는 집과 회사 등 소수의 세트촬영만으로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다. 오늘 식탁에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지 못하는 자를 기대하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말이다.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어도 다들 저와 싸우는 인물들이라서 무서워요. 태주는 매일 집안사람들을 비꼬고 서윤과 부부인데도 편안하지 않죠. 그 와중에도 저는 잘 먹고.(웃음) 현장에서도 처음엔 그 식탁이 적응이 안 됐어요. 출연 배우들끼리 밥을 먹으면서 ‘다음엔 누가 될까? 아마 정윤?’ 이렇게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제가 없어질 줄은 몰랐어요. 저 없이 밥을 먹더라고요.”


대사와 스토리, 배우들의 호연만으로 24부작을 이끌어간 드라마가 국내에 있었던가. 고수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인의 노한 사람들’(1957)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비슷했던 것 같아요. ‘12인의 노한 사람들’에서도 장소 이동 없이 회의 진행 과정만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 영화를 재미있게 봤어요. ‘황금의 제국’도 대부분의 촬영을 세트에서 소화하며 장소 이동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세트 촬영만으로 쫄깃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건 스토리의 힘, 나아가 작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드라마 장르가 하나 생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작은 ‘신념’으로 끝은 ‘욕망’으로 치닫는 장태주의 삶에서 하루의 시작은 늘 식탁에서 시작된다.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 나 있고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된다.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놓고 있는 ‘황금의 제국’은 이제 ‘약한 자들을 향해 미사일 버튼은 누르지 않겠다’던 자신의 신념을 저버린 장태주의 끝은 어디인지 식탁 상석에 앉을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지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마지막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장 마지막에 웃는 자는 누구일까.


“‘황금의 제국’ 결말에 대해 저도 많이 생각해 봤어요. 제안도 드렸고요. 결말에 대한 여러 안이 있는데 작가님이 결정을 못 하신 것 같더라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태주의 끝을 보고 싶어요. 태주가 성진그룹을 가지면 끝날 줄 알았는데 못 가졌으니까요. 아무 죄도 안 저지르고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몇 개의 죄를 지었잖아요. 죄에 대한 처벌을 받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죗값을 치르지 않고 성진그룹도 갖고 설희와의 편안함까지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반대로 모든 걸 놓고 조용히 죄인처럼 숨어서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추석이 지나면 고수는 장태주를 놓는다. 새하얀 도화지가 될 배우 고수의 올 하반기 계획과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성장과 변화가 있는 작품을 선택해 왔어요. 벼랑 끝에 몰리는 역할에 끌렸고요. 사서 고생했죠. 여러분께 선보이는 올해 마지막 작품은 올겨울 개봉 예정인 영화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이 될 것 같아요. 차기작은 제가 했을 때 좋아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살펴보는 중이에요. 지금까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했으니까 다음 번에는 밝은 캐릭터로 인사 드릴게요.”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픽콘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제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황금의제국 , 고수 ,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