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 star@chosun.com
30부작의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작품을 끝내고 더욱 성숙해졌다고 배우 주지훈은 말했다. 지난 25일 영랑(채시라)의 실족사로 슬픈 결말을 맺으며 막을 내린 SBS 주말드라마 <다섯 손가락>(극본 김순옥, 연출 최영훈)에서 주지훈은 처절하게 아프고, 좌절하고, 또다시 일어나며 배우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크게 성장했다.
“대본에는 ‘권투신’이라고 적혀 있다 해도 잽, 원투, 스트레이트를 하는 장면들을 여러 번 촬영해야 하잖아요. 한 신이라도 여러 가지로 쪼개서 촬영해야 되는 거죠. 엄청난 양이에요. 게다가 각목도 물렁물렁한 게 아니라 진짜 찰지더라고요. 효과는 정말..(웃음)”
군 제대 후 5년 만에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드라마 <다섯 손가락>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 공략에 활발히 나서며 배우 활동을 재개한 그는 달라진 제작 환경에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눈치였다.
“이번 작품 촬영할 때 제가 연기하면서 느끼기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카메라는 좀 더 멀리서 잡는 게 맞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더 가까이에서 찍는 그런 디테일한 카메라 촬영 기법들로 촬영이 진행돼서 놀랐어요. 전개도 빠르잖아요. 전작인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는 긴 호흡으로 촬영하고 섬세한 편집으로 작품이 완성된 건데 요즘 제작 시스템은 그에 반하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죠. 그런 점들이 예전과 다른 것 같아요.”
특히 촬영 기법뿐만 아니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촬영 일정 또한 예전과는 다른 부분이어서 드라마 초반엔 적응이 안 됐다고 했다. “5년 전엔 1주일에 한 번은 쉬는 날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매 작품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다 보니 사실 적응하기가 매번 어려워요. 모든 장르를 섭렵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그때 좀 편해질까요?”
준비할 새도 없이 촬영에 임하다 보니 남들이 아무리 ‘연기 잘했다’고 칭찬해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만 보였다고. “모두를 속일 순 있어도 제 자신은 못 속여요. 밤샘 촬영으로 잠을 못 자서 소리가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고 집중이 흐트러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 스스로 모니터하면 그런 부분들이 보이는 거죠.”
왜 이렇게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만 보고 반성하는지 궁금해졌다. 작품에 대한 대중과 평단의 평가를 제외하고 배우들의 연기만 놓고 봤을 때는 상당한 호평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나 이번 작품에선 꽤 잘했지’라고 흐뭇해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가질 수 없는 걸 원하니까 제 스스로 피곤해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속 게리 올드만이 아침에 일어나서 수영하고 차분하게 걸어가는 롱 테이크(long take:장시간 촬영) 장면은 그 나이가 아니면 절대 못해요. 너무 부럽고 하고 싶은데 저는 나이가 젊으니까 근육 자체가 힘이 들어가 있어서 할 수가 없는거죠. 그런데도 계속 그런 연기를 하고 싶고 원하니까 만족을 못하게 되는거고요.”
본인 스스로는 아직 만족할 단계는 아니라고 거듭 겸손한 말만 늘어놓았지만 실제로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이나 SNS, 다수 기사에서는 ‘다섯 손가락’으로 안방극장에 컴백한 주지훈에게 후한 점수를 내주었다. 이러한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환하게 웃는다.
“그렇게 봐주시면 그런 거겠죠? 스스로 만족하긴 쉽지 않잖아요. 저 부분은 저렇게 해야 했고 하는 아쉬움이 늘 남으니까. 많은 말이 기억에 남는데 ‘유지호로 보인다’는 말이 제일 인상 깊은 것 같아요. 배우로서는 ‘잘 우네’, ‘화를 잘 내네’라는 말보단 ‘주지훈으로 안 보인다’는 말 만큼 보상받는 기분이 드는 찬사도 없을 거에요.”
이제 한 걸음 걸었으니 다음 걸음을 내디딜 차례다. <다섯 손가락>을 통해 주지훈을 다시 본 시청자들도 그를 오랫동안 응원해 온 팬들도 숨가쁘게 달려온 주지훈의 차기 행보에 벌써부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음 작품을 빨리해야지 이런 계획은 없어요. 시나리오는 항상 보고 있는데 좋은 작품이 들어와야 하는 것 같아요. 내년이 되어 봐야 알겠지만 다른 흥밋거리들도 찾아보고 싶거든요. 커피를 마시고 차를 안 마시면 다도에 관한 영화를 찍게 됐을 때 공감을 못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아, 다도가 재미없네!’라고 넘겨버릴 수 있는 건데 다도를 배우게 되면 ‘아~ 이렇게 재밌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거니까요. 앞으로 또 어떠한 경험과 마주할까 기대하고 있어요.”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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