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인터뷰] '거인'이 되어가는, 최우식 (BIFF)
기사입력 : 2014.10.07 오후 2:14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거인'의 최우식이 동성모터스 MINI 부산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거인'의 최우식이 동성모터스 MINI 부산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최우식을 처음 만났던 때의 '의아함'을 기억한다. 지난해 10월 영화 '거인'의 제작을 위한 펀딩파티에 그는 늦은 밤 매니저도 없이 홀로 등장해 수줍은 미소를 연신 짓고 있었다. '거인'이 제작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던 때였다. 특별하게 한 말도 없었다. 그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당시의 전부였다. 그리고 약 1년 만에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의 비전' 섹션에 초청된 영화 '거인'으로 그와 재회했다.


동성모터스 MINI 부산전시장에서 더스타와 만난 최우식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현장의 차가운 바람과 환경 속에서 훌쩍 커버린 그의 모습이었다. 그에게 펀딩파티를 언급하자 그는 "그땐 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니까 계속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더 잘 보이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더 잘 보이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라는 무겁지 않은 말에 '거인'에서 최우식이 맡은 영재의 모습이 스쳤다. 영화 '거인'은 무책임한 부모를 떠나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보호시설인 '이삭의 집'에서 자란 영재의 숨이 막히도록 처절하게 살아내야 했던 날들을 그렸다. 영재는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친부모보다 '이삭의 집'의 원장부부를 더욱 친근하게 "아빠, 엄마"라 부르고, 원장의 눈짓 하나에 발 빠르게 걸레를 집고 무릎을 굽혀 바닥을 닦으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인물이다.



최우식과 영재는 사실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많다. 최우식은 누구보다 따뜻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고, 그래서 '거인' 속에서 원망으로 가득 찬 영재와 친아버지의 사이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우식은 10살 때 간 캐나다에서 20살까지 살았다. 자라난 환경,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감정의 표현까지 영재와 비슷할 것 없는 최우식에게서 '거인'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은 거칠고, 비릿한 깊은 구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감독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거인'이 김태용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감독님께 '이때 어땠어요?' 이런 것들을 많이 여쭤보지 않았어요. 감독님을 따라 하기보다 최우식화 시켜서 영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재는 저와 다르지만 제 안에서 비슷한 감정을 많이 찾으려고 한 것 같아요. 감독님과 술을 마시면 작품 얘기보다는 저나 감독님이 좋아하는 것들, 자라온 이야기, 이런 사소한 얘기들만 했어요. 서로 더 친해지려고 했고요. 그냥 많이 찾아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태용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영재, 그리고 최우식.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갔다. '거인' 속에서 입술을 우물우물 씹는 최우식의 모습은 영재로 살았던 감독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최우식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의도한 게 아니라 행운으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하다 보면 행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도 캐나다 타지에서 자라다 보니 저만의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많이 웃으려고 하고, 사람들 앞에서 바보같이 행동하려고 한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말이 안 통하니까 친구가 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어요. 영재같이 극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저 또한 사춘기 때 캐나다에 가서 정체성의 혼란 같은 게 있었거든요."


영재를 표현하면서 극적인 부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최우식은 대부분의 컷에서 무표정하다. 영재로 살았던 약 3개월간 그는 다양한 감정들을 마음 속에 묻어두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최우식은 "영재랑 저는 성향이 완전 달라요. 저는 많이 까불고 하는데 영재는 너무 힘든 애니까. 슬픈 애도 아니고 어려운 애도 아니고 힘든 애니까, 그 감정을 많이 잡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우식은 "정말 솔직히 힘들었어요"라고 덧붙이며 그 예로 '거인' 촬영 중간에 찍은 잡지 화보 촬영장을 말했다.


"시청자분들이 저를 보셨을 때 유쾌하고 까불고 귀엽고 이런 걸 원하시니까 화보 촬영 장에서도 '귀엽게 웃어주세요, 포즈 취해 주세요' 하시는데 그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게 좀 신기했어요. 영재를 이만큼 붙잡고 있구나."


사실 브라운관에서 보여준 최우식의 모습은 까불고 귀엽고 남동생의 이미지가 강하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장혁 이복동생의 모습도, 예능프로그램 '심장이 뛴다'에서의 막내 소방대원으로서도, '옥탑방 왕세자'에서 왕세자(박유천)의 시중을 드는 도치산을 했을 때도 그랬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의 행보가 참 다르다 싶다.


"전 연기가 좋아요. 하지만 스타보다는 연기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에요. 국내에서 연기는 대중들에게 많이 맞춰가는 것 같아요. 말랑말랑한 배우가 한국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많이 노력하고, 많이 변하려고 하고요."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묻는 말에 그는 "연기 생활도 길게 하고 싶지만, 연출도 해보고 싶어요. 그 나이가 되면 연출도 하면서 연기도 하지 않을까 싶은데"라며 남다른 욕심을 내비쳤다. "좀 진지한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거인'을 통해 맛을 봐서 그런지 감정을 품고 긴 호흡으로 가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더 나이를 먹고 더 남자다운 때가 묻었으면 좋겠어요."


최우식은 배우로서 말랑말랑해진다고 했지만 이를 통해 반대로 그는 단단해지고 있다. 그의 눈웃음에 익숙한 안방극장 대중들에게 '거인' 속 최우식은 낯선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낯설음을 통해 더 기대하게 될 거다. 영화 제목처럼 '거인'을 향해가고 있는지 모를 최우식을 말이다.


글 부산=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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