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SBS '악귀'
SBS ‘악귀’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 악귀에 씐 김태리가 찾아가는 한강다리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에서 한강다리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산영(김태리)이 아르바이트에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빨려들어갈 듯한 시커먼 한강물을 내려다봤던 첫 회부터, 악귀에 씌어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행동에 혼란과 절망에 휩싸여 절규했던 5회 엔딩까지, 한강다리는 산영의 감정이 투영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김은희 작가의 전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은희 작가는 “드라마 ‘싸인’을 쓰면서, 또한 여러 기사를 접하면서 가장 슬픈 죽음이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점, 또한 젊은층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평소 안타깝게 생각했다. ‘악귀’에서 그 부분도 얘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고단한 삶을 버티던 청춘 산영,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한강다리가 가지는 메타포는 청춘을 좀 먹는 악귀 같은 사회악에 대한 메시지로 이어졌다. 먼저 방송 첫 주에 등장했던 중학생 현우가 귀신이 돼서도 동생 곁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가정 폭력 때문이었다. 출생신고도 안 된 채 끔찍한 학대를 당했던 동생을 몰래 돌봤던 현우가 부모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1958년 장진리에서 염매를 당해 죽임을 당한 여자 아이 ‘이목단’의 사연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김은희 작가는 SBS가 공개한 1회~4회 코멘터리 영상을 통해, 이러한 악습을 소재로 택한 이유를 직접 밝혔다. “드라마에 나왔던 1958년 당시 기사는 ‘실제’ 기사였다”라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가정 폭력과도 비슷한 악습이었다. 실화였기 때문에 쓰면서도 마음이 아파서 기억에 남는다. 그런 가슴 아픈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의도를 전했다. 믿었던 가족과 이웃의 배신에 죽임을 당한 이목단이 악귀라고 확신한 산영이 “나라도 그렇게 복수하고 싶었을 것”이라 분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어 3-4부에선 급전이 필요한 대학생들을 등친 불법사채업자가 등장했다. 인생의 변수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청춘들이 어쩔 수 없이 기댔던 불법 사채. 하지만 겉잡을 수 없이 몇배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와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던 대학생들이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수족관을 아지트로 쓴 사채업자는 돈을 빌리러 온 학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싼 물고기가 든 어항을 선물했다. 그리고 그 물고기에 옮겨붙은 ‘자살귀’는 생활고와 취업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춘들의 약한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 “귀신보다 더 무섭고 악한 인간”은 역사적으로도 뿌리 깊은 ‘인간 말종’인 불법사채업자였다.
지난 5-6회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욕망하는 청춘이 그려졌다. 호텔 레스토랑의 값비싼 식사와 한정판 명품백을 SNS에 자랑하듯 전시한 뒤, “부럽다”며 폭주하는 댓글을 보며 흡족해하던 인플루언서(표예진)는 ‘아귀’에 씐 윤정(이지원)에게 살해당했다. 윤정은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어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형편이 아니었는데도, 얕잡아 보이기 싫은 욕망에 끊임없이 예물과 결혼식장을 탐하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다. “뭔가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란 산영의 성찰대로, 편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산영 역시 할머니 석란(예수정)의 막대한 유산으로 꿈도 꿔 본적 없는 돈을 만끽해보니 그동안 자신도 몰랐던 욕망을 깨달았다. 그리고 SNS 등을 통해 남의 것을 손쉽게 볼 수 있고, 더 이상 나누는 것이 미덕이 아닌 각박한 사회 속에서 청춘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아귀도’(餓鬼道)의 설명대로, “배고픔과 목마름에 항상 남의 것을 갈구하는 아귀는 우리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세계”였다.
이처럼 민속학과 민간 신앙 등,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한국 사람들이 믿거나 두려워했던 존재들을 2023년의 현실과 절묘하게 결합해 청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김은희 작가. 앞으로 산영과 해상(오정세)이 추적중인 악귀 미스터리엔 어떤 거대한 진실과 메시지를 심었을지 기대가 날로 증폭된다.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 드라마 ‘악귀’는 매주 금, 토 밤 10시 SBS에서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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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에디터 조명현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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