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순수의 시대> 스틸컷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화인웍스제공
'왕자의 난'이 있던 시기는 아마도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피로 얼룩진 시기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순수의 시대> 감독은 이 '시기'를 택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왕자의 난'에서 주도권을 잡은 이방원의 역사가 아니다. <순수의 시대>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1398년 '왕자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왕이 될 수 없었던 왕자 이방원(장혁), 여진족 어미 소생으로 정도전의 개로 불린 장군 민재(신하균)와 그의 친자가 아니라는 비밀 속에 쾌락만을 좇는 부마 진(강하늘)의 이야기를 담았다.
민재는 자신의 어미를 닮은 기녀 '가희'(강한나)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손을 놓지 않을 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줄거라 약조한다. 하지만 '가희'는 복수를 쫓아 이방원의 모종의 계획하에 민재에게 접근한 인물. 또한, 민재의 아들이자 왕의 사위인 부마 '진'은 아버지의 첩으로 들어온 '가희'에게 묘한 관심을 보이며 긴장감을 높인다.
<순수의 시대>는 제목처럼 '순수'를 쫓아간다. 영화 속에서 말하는 가장 극도의 '순수함'은 바로 사랑이다. 이를 위해 민재와 가희를 둘러싼 환경은 점점 극으로 치닫는다. 안상훈 감독은 "사료를 찾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이 많이 달랐다. 성종실록에는 남자들이 귀를 뚫는게 심하니 자제하기 하라는 내용이 있다"라며 "귀걸이를 하는 남자들의 풍습은 실제로 있었다"라고 밝혔다. 영화 속 귀걸이를 한 남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액세서리를 하지 않은 인물이 민재다. 민재와 가희의 사랑은 마치 그 시대에 홀로 남은 '순수'로 비친다.
시대상을 타고 귀걸이가 캐릭터의 성격을 말한 소재로 쓰인 것 처럼 스크린을 수놓은 아름다운 색의 향연도 <순수의 시대>를 보는 관전포인트 중 하나. 야망을 좇는 이방원은 생명을 베어내며 자신의 하얀 옷을 피로 물 들인다. 비어있는 방에 둘만 남아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민재와 가희를 덮어주는 건 하얀 천이다. 빨간색과 흰색의 강렬한 색의 대비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뛰어나다. 백 마디 말보다 '하균神'으로 불리는 신하균은 개봉 전 화제를 모은 '신경질적인 근육'부터 액션, 감정표현까지 사극에서도 그 명성을 이어간다. 이방원의 감정적인 측면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장혁, 엘리트의 옷을 벗고 폭력적인 모습과 쾌락을 좇는 충격적인 모습의 강하늘, 신인답지 않은 강렬함으로 몰입도를 높인 강한나 모두 <순수의 시대>의 몰입도를 높였다.
시대상은 다르지만 지난해 개봉한 영화 <인간 중독>에서도 전쟁이라는 혼란한 시대에서 가장 순수하게 남은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남녀 간의 정사 장면을 택했다. 같은 해석이 다른 시대에서 반복된다. <순수의 시대>에서 신하균과 강한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강한나가 맺는 장혁과 강하늘과의 관계 역시 정사로만 표현되는 점, 자극적인 이야기 전개와 과한 노출씬은 관객들이 해석할 몫으로 남겨둔다.
안상훈 감독은 <순수의 시대>에 대해 "예쁜 꽃 한송이가 화단에서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혼탁하게 오염된 웅덩이에서 맑게 피어난 한 송이의 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조선 시대의 새로운 해석과 신하균, 장혁, 강하늘, 강한나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 <순수의 시대>는 오는 3월 5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난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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