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비전 영화 '거인' 리뷰 / 사진 : '거인' 스페셜 포스터
소년은 갈 곳이 없다. 돈벌이가 없는 아버지, 서울을 떠나버린 어머니, 자기보다 어린 남동생 민재. 가족은 있지만 영재(최우식)이 사는 곳은 집이 아니다. 그는 카톨릭의 후원을 받아 갈 곳없는 아이들을 맡아 주는 보호시설 '이삭의 집'에서 원장부부를 친 부모보다 "아빠, 엄마"라고 살갑게 부르며 지낸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비전이 될 열정 어린 작품들을 소개하는 섹션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거인'(감독 김태용)의 이야기다. 영화 '거인'은 2010년 23살에 만든 단편 '얼어붙은 땅'으로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씨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되며 국내 최연소 칸 입성 감독의 타이틀을 거머쥔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성장통보다 인생의 고통을 먼저 배운 열일곱 소년 '영재'의 뜨거운 눈물을 담았다.
'거인' 속에서 보여지는 영재의 삶은 숨이 차다. 영재의 나이는 '이삭의 집'을 떠나야할 시기가 됐지만 그는 돌아갈 곳이 없다. 영재는 '이삭의 집'에 남아있기 위해 신부가 될 것임을 재차 강조하며 성탄절에는 손글씨로 원장 부부와 신부님께 카드를 보내고 눈웃음을 띄우며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앙심이 없을 뿐더러, 창고의 후원물품을 남몰래 학교에서 장사를 해 용돈벌이를 한다.
목숨을 '연명'해간다는 말이 어울린다. 영재의 하루하루는 순탄치가 않다. 아버지는 영재의 동생 민재(장유상)까지 보호시설로 보내려하고 설상가상 영재와 동갑이자 룸메이트인 범태(신재하)가 '이삭의 집'에서 쫓겨나자 나이가 차버린 영재를 향한 시선은 더욱 차가워진다.
이 상황에서 영재의 선택은 별로 없다. 아버지는 동생 민재를 기독교든 카톨릭이든 보호시설로 보내고자하고, 어렵게 찾아간 어머니는 "엄마가 많이 미안하다"라는 말을 남긴다. 이 상황에 영재는 뭐라고 답해야할까?
최우식은 '영재' 역을 맡아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영화 '거인'은 영재의 심리를 따라간다. 그래서 유독 최우식의 눈동자 속 불안함이 핸드헬드 기법(카메라를 사람이 직접 들고 촬영하는 기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또한 최우식의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냐고"라는 외침은 엄마를 향한 외침이었지만 사회를 향한 절절한 외침으로 들린다.
성장영화들은 모든 사람들이 거쳐온 그 시기를 말함에 있어서 공감을 준다. 하지만 '거인'은 기존의 성장영화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격변의 사춘기보다 살아 남아야 하는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교복을 입은 영재는 보호시설 속에서 안락함보다 먼저 원장의 눈짓 하나에 걸레를 후다닥 쥐는 눈치를 배웠고, 자신을 얽메여 오는 상황에 어떻게든 그 구멍을 찾아나가려는 힘겨운 노력을 어찌보면 가증스럽게 그려나간다.
'사는 게 숨이차요'라는 문구가 포스터에 실렸다. 그리고 '거인'이 끝난 뒤에도 숨이 턱까지 찬 영재의 절절한 외침이 귓전을 멤돈다. 제19회 부산영화제가 선택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분에 공식 초청된 영화 '거인'은 영화제가 끝난 뒤 2014년 전국 극장가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글 부산=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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