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희비극'이라는 한 단어로 관객들의 궁금증을 일으켰던 '기생충'. 작품은 '공생'이 '공상'처럼 여겨지는 우리 사회를 극과 극인 두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양극화를 어려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과 자조로 극을 이끈다.
'기생충' 속 기택네는 전선이 복잡하게 얽힌 다세대 밀집촌 가장 안쪽 끝 집, 반지하에 산다. 온 가족의 휴대폰 요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생계가 어려운 이들은 남의 집 와이파이를 몰래 쓰거나, 집안 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소독차 연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등 말 그대로 '웃픈' 가정사의 주인공이다.
온 가족이 피자 박스 접기 부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장남 기우는 명문대생 친구로부터 부잣집 딸 과외 선생 자리를 제안받는다. 4년이나 대입에 실패한 기우는 미대에 떨어진 동생 기정의 기가 막힌 포토샵 실력 덕에 가짜 재학증명서를 마련하고 면접 길에 오른다. 그렇게 '가장'이라는 존재가 소거된 기택네는 고정 수입에 대한 기대에 부푼다.
기택네와 대척점에 있는 박사장네 가족은 재벌까진 아니어도, 유명 건축가가 지은 예술 같은 집에 살 정도로 부유하다. 실력으로 글로벌 IT기업 CEO 자리에 오른 박사장은 아름다운 아내와 토끼 같은 딸, 아들을 둔 가장. 밖에선 유능한 사업가인 박사장과 단아한 전업주부 연교는 항상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젠틀한 인물이다.
이처럼 동시대에 살고 있으나 엮일 일이 없던 두 집안이 기우를 통해 접점을 맺는다. 기우는 박사장네 딸 다혜의 영어 과외 선생으로 채용되고, 이후 기정까지 끌어드린다. 그렇게 기택네는 어설픈 의도와 몇가지 우연을 통해 박사장네에 스며든다. 하지만 이들의 악의 없는 욕심은 결과적으로 두 가족을 비극으로 치닫게 한다.
특히, 두 가족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놓이게 되는 결정적인 단서는 감각에 있다. 이 감각은 기택네와 박사장네의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상생 관계로 보였던 이들의 관계에 균열을 가져온다. 이로써 다 같이 잘 살고 싶었던 백수 가족의 엉뚱하고도 절박한 희망은 점차 나쁜 쪽으로만 흘러간다.
극을 이끄는 두 가족은 비주얼과 연기적 조화로 똘똘 뭉쳤다. 돈은 없지만 가족애는 돈독한 기택네는 생활 연기의 달인으로 꼽히는 송강호(기택 역)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그의 아내로는 다부진 이미지의 장혜진(충숙 역)이, 두 자식으로 샤프한 눈매를 가진 최우식(기우 역)과 박소담(기정 역)이 등장한다.
극 중 기택은 다수의 사업 실패를 경험했고, 두 아들딸은 대입에 번번히 낙방, 아르바이트와 부업을 전전한다. 엄마 충숙 역시 과거 전국체전 해머던지기 메달리스트 출신이지만 이후 운동선수로서 일이 풀리지 않아 백수의 지경에 이른 인물이다. 인생에 쓴맛을 본 가족은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눈앞의 삶을 위해 치열하다 못해 치졸하게 산다. 그 과정에서 선보인 네 배우의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는 우리네 이웃, 어쩌면 내 모습처럼 생생하다.
유능한 부유층 박사장네 부부에는 여유로운 분위기와 모던한 이미지를 가진 이선균(동익 역, 박사장)과 조여정(연교 역)이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자녀 역은 조여정처럼 큰 눈망울을 가진 정지소(다혜 역), 정현준(다송 역)이 맡았다. 박사장 가족은 모난 데 없는 성격의 소유자로, 우리가 생각하는 '있는 자들의 여유'가 풍기는 인물이다.
영화는 두 4인 가족의 이야기를 끌고 가며 '계단'을 활용한다. 앞서 칸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 대부분의 사건은 집안에서 이뤄지고, 이 집은 수직으로 만들어졌다"며 "각각의 공간은 계단으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우리끼리 '계단 시네마', '계단 영화'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극 중 기택네 반지하 집에서 언덕 위 박사장네 집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대비가 두 가족의 사회적 위치를 수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사건 대부분이 벌어지는 박사장네 집은 거실에 있는 대형 유리창을 통해 마당으로 나갈 수 있고, 햇빛도 아주 잘 든다. 볕 한 자락 비치치 않는 기택네와 대조적이다.
'기생충'은 부자와 서민이 접할 수 있는 특정 직업군을 통해 자본주의의 양극화를 '슬픈 코미디'로 보여준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처럼 다 같이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그게 말 처럼 쉽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관객은 '기생충'을 보며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도 이 이유에 있어 보인다. 자본주의를 피해갈 수 없는 세상 속 모든 사람들이 같은 '웃픔(웃음+슬픔)'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악인도 없고, 반전에 매달리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어떤 작품보다 치열하고 처절한 이야기. 바로 '기생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