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해인 인터뷰 / FNC 제공
“성공을 위해 작품을 신중하게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많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연기를 오래 할 것이기 때문에 아직은 좀 더 저 자신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빨리 되고 싶은 건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은 확실히 있어요.”
배우 정해인은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매사에 진중하다. 부드럽고 말끔한 외모와 달리 강단이 있다.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 시간 동안 정해인은 머릿속에서 한번 정리한 생각을 말하듯 보였다. 크게 웃는 대신 맑은 웃음을 띠었고, 차분한 느낌을 일관되게 가져갔다.
정해인은 스물 일곱 살이던 2014년 TV조선 드라마 ‘백년의 신부’로 데뷔했다. 연기자가 되기 전에는 또래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이과 대학 진학을 결심한 그는 수능 후 길거리 캐스팅이 되면서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본래는 생명공학과 인체의 신비에 관심이 있었다. 만약, 대학을 공학계열로 선택한다면 연구원이 되고자 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인해 정해인의 삶을 달라졌다. 한 달 동안 연기 레슨을 받고 대학 입시를 치뤘다. 방송연예과에 합격하면서 연기자를 꿈꾸게 된 그는 스물 한 살에 군입대를 했고, 제대 후 학교를 무사히 마친 후 지금의 소속사인 FNC엔터테인먼트 1호 연기자가 됐다. 데뷔작인 ‘백년의 신부’에 이어 tvN 드라마 ‘삼총사’(2014)에서는 정용화, 이진욱, 양동근과 함께 주연으로 활약하며 이목을 끌었다.
필모그래피만 보면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음에도 연이어 주연을 꿰찰 만큼 탄탄대로를 걸은 듯하다. 하지만 그는 매 작품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고, 오디션에도 많이 떨어졌었다고 했다. 의외였다.
“‘삼총사’ 오디션은 뻔뻔하게 임했어요. 사실 당당하게 오디션을 본 지는 얼마 안 됐어요. 너무 후회를 많이 해서 문 닫고 나올 때 후회하지 말자고 다짐했거든요. 작품에 임하는 열정과 관심을 충분히 보여드리고, 저의 매력도 잘 어필하려면 기죽지 말고 뻔뻔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오디션을 보면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정해인의 스크린 데뷔작인 ‘레디액션 청춘’은 ‘청춘’을 주제로 한 네 편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옴니버스식 영화다. 정해인은 논산훈련소 입소를 하루 앞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영화 ‘훈련소 가는 길’에서 주인공 ‘만재’ 역을 맡았다. 군입대라는 인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은 청춘의 풋풋한 모습을 사실감 있게 연기한 정해인의 모습은 눈길을 머물게 한다.
선택 받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던 정해인은 어떻게 ‘훈련소 가는 길’에 합류할 수 있었을까. “오디션 볼 기회가 생겨서 봤는데 당시에 (감독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제가 지질해 보인 것 같기도 하고, 엉뚱한 매력을 보신 것 같아요. 그런데 ‘만재’라는 캐릭터도 나름 진지해요. 남들이 볼 때 철없어서 보여서 그렇지. 제가 오디션 볼 때 그랬나봐요.(웃음) 예전에 그런 적도 있어요. 오디션 보면서 나왔는데 너무 아쉬워서 노크하고 다시 들어가서 오디션을 봤어요. 지금은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죠.”
배우는 늘 고민한다. 대중이 원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고, 배우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모습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연기적 소신과 대중성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중심을 잘 잡아야 오래가는 배우가 될 수 있다. 연기만 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라는 직업도 결코 녹록지 않다.
“사실 이 부분은 모든 배우들이 갖고 있는 고민 같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배우로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해요. 여러 작품을 하면서 저의 장단점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성공을 위해 작품을 신중하게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많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연기를 오래 할 것이기 때문에 아직은 좀 더 저 자신에 대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빨리 되고 싶은 건 없어요. 다만, ‘언젠가는 반드시 된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은 확실히 있어요.”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가 잘하는 일일까’에 대한 의구심도 항상 있다고 했다. “의구심과 자신감의 줄타기인 것 같아요. 자기암시도 하고요. 제가 고민과 걱정이 많은 편인데 최근에는 바뀌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긍정적인 성향의 매니저 영향인 것 같기도 하고요. 고민, 걱정은 정신 건강에도 안 좋은 것 같아요.”
정해인이 고민과 걱정을 많이 하는 이유는 완벽주의자 성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는 안 됐을 때의 플랜도 짜요.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거죠. 불안정해서 그런 것 같아요.”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흘러 나왔고, 정해인은 “혈액형은 피의 종류일 뿐”이라며 “한 사람의 인격은 그가 자라온 가정환경, 주변 친구들, 성장 배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20대의 마지막인 2016년의 8개월을 ‘그래, 그런거야’에 바친 정해인은 “내거로 만들 건 만들고 버릴 건 버리고 부족한 것은 채우자. 운동을 제대로 해서 건강도 챙기자. 20대가 가기 전에 몸을 제대로 만들자”며 남은 4개월의 계획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30대를 기다리는 배우들이 많았다’는 얘기에는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다려지기는 하지만 마냥 설레지만도 않죠. 뭔가 복잡해요. 기대에 대한 불안감이요. 30이라는 숫자는 책임을 져야할 것 같아요. 20대는 패기가 있다면 30대는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사회적 통념이 있잖아요. 그런 틀을 깰 필요가 있긴 하지만요.”
그는 나이를 떠나 연기자의 역량이 뛰어나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어떤 역할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스스로도 내가 하고 싶은 연기가 무엇인지 찾고 있고 참된 연기를 위해 스스로 담금질을 해야 하기에 30대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이 있다고 고백했다. ‘믿고 보는 배우’보다는 시청자가 봤을 때 “불편함이 없는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담백하게 말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좋은 연기와 콘텐츠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연기를 잘 해야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것 같아요) 자라온 환경도 그렇고, 제가 스스로에게 약간 인색한 편이긴 해요. 그런데 승부욕은 엄청 강해서 이길 때까지 도전해서 스스로 피곤하긴 하죠. 열정이 샘솟는 분야가 생기면 미치는 게 있어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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