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열음 인터뷰 / 사진: 홍주표(크레딧라인 스튜디오)
“감정 표현이 거칠었죠. 때론 과해 보였고요. 겉만 세지 속은 여리고 불쌍한 아이예요. 자신의 아픔을 감추려 하는.”
밤이면 읍내 친구들과 클럽에 가는 게 일과인 고3 가영(이열음)은 그야말로 ‘당돌’했다.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린 동생 유나(안서현)에게 “네 아빠 회사에 취업을 시켜달라”고 하질 않나, 선생님에게 “어리바리해서 도움될 줄 알았더니 쌤도 미술선생님 좋아해요?”라며 막말하기도 했다. 짝사랑하는 미술 선생님에게 애교를 부린 친구에겐 고의로 발을 걸어 계단에서 구르게 했다.
가영은 지난 3일 종영한 SBS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에서 배우 이열음이 맡은 캐릭터다. ‘더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이열음은 “불쌍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이열음이 본 가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피해자의 절규와도 같았다.
“가영이는 의외로 순진해요. 아빠가 없는 아픔을 감추기 위해 자기가 세다는 것만 과시하려 했지 속은 여리고 가장 불쌍한 아이예요.” 웃음기를 거둔 이열음은 가영을 떠올리며 금세 차분해졌다. 당돌한 가영의 이면에는 태어나 한번도 본적 없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이윽고 그의 호기심은 갈등의 불씨가 됐다.
가영은 친부로 의심되는 마을 최고 권력자 창권(정성모)를 찾아가 “친아빠가 누군지 알고 싶다”고 말한다. 저의가 드러난 물음에 아이(가영)와 엄마는 일순간 모욕당한다. “니 딸년이 지 애미한테 딴 남자가 있대잖아. 날 지목한거고.” 그저 진실이 궁금했던 가영은 어디서도 위로받지 못한 채 쓸쓸히 아픔을 견뎌내야만 했다.
가영의 자신 없는 당돌함은 회사에서 잘릴 때 기현(온주완)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가영이가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회사에서 잘릴 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가 ‘(창권이) 우리 엄마한테 그래서 그랬어’ 하고 울어요. 돌이켜보면 가영이의 당돌함은 ‘힘없는 자신감’이었던 것 같아요.”
◆캐릭터의 아픔을 이해하고 완성 “미약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몇 개월을 가영으로 살았던 이열음에게 “어떻게 준비했냐”고 물었다. 그는 “가영이는 임팩트가 강한 캐릭터였어요.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애가 되니까 캐릭터의 감정선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어렵고 이해가 안 돼서 많이 고민했죠. 감독님은 그게 가영이의 매력이라고 얘기해 주셨어요. 캐릭터의 아픔을 계속 얘기해준 감독님 덕분에 점점 깊게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극중 가영은 유전대사 질환인 ‘파브리병’을 앓는다. 손과 발이 타는 듯한 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복통, 시력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사실 검색을 해봐도 파브리병 증상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어요. 어떤 병이든 질병을 앓는 분들이 제일 고통스럽잖아요. 대본보다 더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표현했어요. 제가 미약하게 표현하면 그분들의 아픔을 잘 전달하지 못한 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비 오는 날 비를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도 파브리병 때문에 아픈 것만 연기하려 했던 이열음은 “아픔을 당하는 자신이 너무 외로워” 서럽기도 했을 가영의 마음을 담아 더 아픈 것처럼 표현했다. “아픔을 잊으려고 자해도 하고, 가영이 성격에 열 받고 서러우니까 더 소리 지르고 울고불고 발버둥친 것 같아요. 강하게 표현하던 가영이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던 장면에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싹 사그라들잖아요. 너무 불쌍한 것 같아요.”
◆밝은 캐릭터로 회귀 “저도 사랑받을 때가 오겠죠?”
‘고교처세왕’에서 연기력 논란으로 뭇매를 맞았던 이열음은 ‘마을’에 출연하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데뷔 후 드라마스페셜 ‘중학생 A양’으로 주목받은 이열음은 “잘했던 캐릭터에서 헤어나오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같은 학생이지만 다 다른 성격이었어요. (캐릭터의 성격이) 갑작스럽게 바뀌니까 초반엔 캐릭터를 바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나랑 안 어울린다’는 고민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만 앞섰어요. ‘마을’에선 감독님, 선배님과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빨리 습득할 수 있었고 바로 이해가 됐어요.”
작품이 좋아 선택한 ‘마을’에선 유난히 많이 맞고, 구르며 힘든 촬영이 많았다. 그래도 애정이 가는 건 함께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맡은 캐릭터가 좋아지는” 화기애애함 때문이라고 했다. 감정 몰입이 안되던 날 선배 온주완은 ‘감정을 더 끌어올리라’고 앞에서 함께 울어줄 정도였다고.
‘마을’을 하며 좋은 기억이 많았지만, 다음 작품은 ‘밝은’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작품 속 이미지 때문인지 당돌하고 세고 똑 부러진 캐릭터를 많이 시키시더라고요. 차기작에서는 밝은 캐릭터를 맡아서 사랑받고 싶어요. 저도 사랑받을 때가 오겠죠? 로코나 학원물을 해보고 싶어요. 얼마나 행복할까요? 울어도 행복하겠다.(웃음)”
애교도 많고 웃음도 많은 ‘꽃다운 스무살’ 이열음이 그의 바람대로 성년이 되는 2016년엔 ‘사랑스러운 여대생’을 연기했으면 좋겠다. 교복을 입은 강단 있고 야무진 학생이 아닌, 벚꽃이 흩날리는 교정을 걷는 청순한 여대생이 된 그가 만연한 미소로 카메라 앞에 설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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