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이 보낸 사람'의 북한국인 허지원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무거웠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감독 김진무)을 보고 난 뒤 앞서 화제를 모았던 신천지 투자설 논란 같은 건 생각날 겨를도 없었다. 남는 건 누군가를 향해 겨눈 총구와 그 총을 쥔 군인의 성스럽거나 혹은 섬뜩한 미소였다. 그렇게 신예 허지원이 '신이 보낸 사람'에서 뇌리에 남는 표정을 보여준 이유? 다 이유가 있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은 북한 지하교회 사람들의 실화를 토대로 제작됐다.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있다는 이유로 개봉 전에는 신천지 투자설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개봉 후에 관객들은 '충격'을 받으면서도 '내 삶에 감사하게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화를 만들기 전 스크린에 걸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독립영화 제작의 현실에서 허지원은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그렇게 영화가 만들어져서 정말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심경이었다고 답했다.
허지원에게 '신이 보낸 사람'은 첫 영화 도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창작극 작업을 하고 대학로 데뷔를 한 뒤 연극 무대에 선 경험은 있지만, 스크린으로 관객을 마주한 건 처음이다. 그는 창작물을 만들 때 사회에서 소외된 층의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눴다.
"점점 시대가 빨라지고 그러면서 놓치게 되는 말 한마디나 사랑이라는 가치들을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찾았어요. 그래서 뱃사람들, 탄광촌 사람들, 터널을 뚫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인터뷰도 하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어시장 관찰도 하고 배도 타고, 직접 그 안에 들어가려 했어요. 그럼 관객들도 같이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가 '신이 보낸 사람'을 만난 건 지인을 통해 감독을 직접 만나면서였다. 처음 만났을 때 밀실(?)로 허지원을 데려간 김진무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 부분에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며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리고 그것은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에 다가가고자 했던 허지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감독님이 이야기 하시는 메시지가 너무 진정성 있었고 왠지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걸 전달하는데 배우로서 일조하고 싶었어요"
이후에 허지원이 공연 중인 '달나라 연속극' 연극 무대를 감독이 찾았고 해당 공연은 실질적인 오디션을 대신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 감독은 '같이 하자'라고 오케이 사인을 던졌다.
그렇게 합류하게 된 '신이 보낸 사람'에서 허지원이 맡은 역할은 어떻게 보면 가장 감정의 기복이 큰 역할이었다. 유일하게 알콩달콩한 연애담을 보여줬고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면서도 다음 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겁에 질린 눈동자로 관객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그 인물에 허지원은 전략적으로 다가섰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다시금 사람이었다. "북한 말 가르쳐 주시는 분께 많이 물어봤죠. '북한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남한의 투애니원( 2NE1) 노래를 부르며 가수 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 여지냐?', '북한에서 초소를 잠깐 비우다 걸리면 어떻게 되나?' 이런 걸 많이 여쭤봤어요. 북한말 선생님께서 정말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뚝심 있게 자신의 연기를 세울 줄 아는 그가 연기를 결심한 건 중학교 3학년 때 였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그는 오시구스 병으로 축구의 꿈을 접고 '나는 이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 안방극장에서 드라마를 보면서 '저걸 내가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현실이 됐다. 그리고 그 현실을 만든 것은 자신이었다. "반대를 하시던 아버지께서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성적을 보고 연극영화과 학원을 보내주신다셔서 연극반을 하면서 내신성적을 필사적으로 유지했었죠."
그가 필사적으로 유지한 성적은 평균 90점 이상. 반에서 상위권의 성적은 오직 연기의 꿈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더 좋은 학교나 더 인기 있는 학과가 아닌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를 택했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졸업생, 재학생 대상으로 외부와 연결해주는 오디션에서 조인성, 전지현, 송중기, 김우빈 등을 키워낸 싸이더스HQ의 대표 정훈탁의 눈에 들었다. 한 식구가 된 뒤 정훈탁 대표와 만난 적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스파게티집에 초대하셔서 잠깐 뵈었는데 '인상 깊게 봤었어'라고 짧게 말씀하시면서 '그때보다 머리 많이 자랐네'라고 하셨다고 답한다.
싸이더스HQ와 합류했고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서 대중들과 첫 대면을 했다. 2014년은 그에게 다른 운명선이 그어진 해가 될 터. 하지만 그는 덤덤히 "일단 연극을 열심히 해왔던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오디션도 열심히 보고 혹시나 떨어지더라도 또 다른 오디션 다시 열심히 보고 그러면서 신인으로서 그 활동을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하는 게 제2014년 목표죠"라고 답한다.
뭇 드라마의 결말처럼 허지원의 30년 후를 물었다. "30년 후면 아는 사람도 꽤 많이 생길 거고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은 더 깊어질 텐데요. 그 사람들과 잘 나누면서 서로 챙겨가면서 제 인생도 나누고 연기도 나누고 그렇게 살다 보면 좋은 배우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대표작이나 남우주연상이 나올 법도 한데라고 말끝을 흐리자 활짝 웃으며 허지원은 "30년 후에도 영화도 하고 무대도 계속 설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람이라는 가치들을 놓치지 않고 지켜내는, 그게 제 삶의 목표예요"라고 답한다.
영화 '신이 내린 사람'은 본 뒤에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두고두고 마음 한편에서 이것저것 꺼내 볼 수 있는 장면들을 남겨두기도 한다. 그 장면은 종교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한 눈 안 팔고 연극 무대에서부터 연기를 준비한 허지원이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다. "친구들과 '길게 가자 우리는 꽃미남 이런 부류가 아니니까'이런 얘기를 했어요. 수컷 냄새가 나고 연륜이 있을 때 탁! 알아봐 주지 않을까?" 그 탁! 이란 시점, 이제 막 시작됐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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