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응답하라1997>의 주인공 성시원 역을 맡아 연기 호평을 받은 에이핑크 정은지
1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에 상관없이 요즘 이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삐삐, DDR, 천리안 채팅방, PCS폰 등 사람들의 추억속에 갇혀있던 물건들을 꺼내놓고 H.O.T와 젝스키스 오빠들이 전부였던 그 시대, 1990년대를 세심한 감성으로 어루만진 tvN 드라마 <응답하라1997>(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이 바로 그 주인공. 그 중 격렬했던 팬문화를 경험해본 30대도, 연기 경험이 많은 베테랑 배우도 아닌 1997년 당시 불과 4살이었던, 신인배우 정은지를 만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 들었다.
낯설지 않았던 90년대…”열성팬 연기? 주변 동방신기 팬 친구들 참고”
스마트폰 대신 삐삐와 PCS폰, MP3 대신 워크맨 등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소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중 1993년생인 정은지가 사용해봤던 물건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저는 이번 드라마 소품 중에서 신기한 게 없었어요. 아빠가 건설쪽 일을 하셨는데 운송업도 투 잡 식으로 하셨거든요. 아빠가 하시는 일 때문에 삐삐를 사용하셨는데 수신호처럼 사용하셨어요. PCS도 그렇고 플립폰도 부모님이 오래 사용하셔서 저에겐 굉장히 익숙한 물건들이에요”
‘아~참 가스나. 연기 잘하네!’라는 소리가 나왔던 순간이 있었다. 정은지가 극 중 H.O.T 멤버 토니의 열성팬으로 등장해 울고 짜고,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들이 주를 이루던 극 초반부였다. 그 시절을 살았던 30대 언니들이 봐도 ‘맞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싶을 정도로 실감 나는 연기를 펼쳐 ‘시대는 다르나 팬문화는 경험해 본 친구구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녀에게는 이런 경험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티켓을 사기 위해 은행 앞에서 밤을 새고 숙소 앞을 전전하는 연기를 어쩜 저리도 실감나게 연기했을까 궁금했다. 팬문화는 자칫 잘못하면 일반인들에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팬들에겐 그들을 희화화해 실례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하는 연기였다.
“저도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빠순이’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있는 표준어라도 좋지 않은 이미지로 많이 들으시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편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죠. 그러다 깨달은 사실이 제가 아이돌이니 제 팬들의 표정을 보고 적합한 시원이의 표정을 찾으면 되는거더라고요. 오히려 표현하기에 훨씬 수월했죠”
경험이 없었기에 부족한 부분이 연기에 묻어났을 법도 한데 마치 그 시대에 살았던 소녀처럼 꽤나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자신의 팬들을 보며 스스로 캐릭터를 분석해 연기했다는 거다.
“저는 동방신기 세대거든요. 제 주변에 카시오페아(동방신기 팬클럽)가 정말 많았어요. 공개방송 가는 애들도 많이 봤고 갔다오면 애들이 어떤 반응인 지도 알았죠. 촬영할 때 친구 생각도 확 나고 그러더라고요. 저도 찍으면서 굉장히 예전 생각이 많이 났었던 것 같아요”
2차 확인키스 본 멤버들 반응 “나이 대 별로 달라요~”
시원(정은지)과 윤제(서인국)가 6년 만에 재회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계단에서 서로 입을 맞추는 장면은 온라인은 물론이고 에이핑크 숙소까지 발칵 뒤집어놨다. 정은지는 평소처럼 멤버들과 <응답하라 1997>을 모니터를 하는데 오늘은 ‘아차!’ 싶어 “얘들아~ 좀 있으면 오글오글한 장면 나오거든? 미성년자 들어가”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들어가라고 하니까) 애들이 ‘언니 오늘 또 뽀뽀해요?’ 이러는 거에요. 방안에 있던 유경이도 나오고. 키스신이 나온 순간부턴 난리가 났죠. ‘언니 이러지 말라고요! 입술을 아끼라고요~’ ‘언니 여자 아이돌인데 데뷔한 지 1년 반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입술을 두 번이나 내주면 어떡해요’ 막 이래요. 전엔 저한테 이마 내줬다고 뭐라고 그러고요”
멤버들의 격한(?) 반응에 머쓱해진 정은지는 ‘미안하다. 좀 있으면 더 오글오글 해 질기다. 빨리 들가라~’면서 옆에 있던 이불을 쓱 끌어다가 뒤집어 쓰고 봤다고 했다. 문제의 키스신 장면이 나오자 멤버들의 반응은 점점 극에 달했다고.
“거짓말 안하고 애들이 소리소리 지르는 거에요. 막내 하영이는 ‘언니 솔직히 언니 남자친구 반대하는데 그냥 시집 가세요. 허락할게요. 계약기간 많이 남았지만 시집가세요’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애들아 이건 시작에 불과해. 좀 있으면 베드신도 있어’라고 했더니 ‘베드’하자마자 ‘언니!!’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에요. 제가 말한 베드신은 수술대 베드신 말한 건데 그렇게 격한 반응은 처음 봤어요(웃음)”
특히 17살인 막내 하영은 “우리 언니 입술 빼앗겼어~ 전에는 윤제가 빼앗아갔는데 이번엔 합의하에 뺐겼어”라며 울다가 “언니, 저기서 웃으면 어떻게 해요. 음란해 보이잖아요”라면서 아이돌 언니 단속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반면 22살인 리더 초롱은 미성년자인 동생들과는 달리 쿨 한 반응을 보였다고.
“초롱언니는 ‘야 좋았냐?’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언니 저건 작품이잖아요. 저건 시원이에요. 그랬더니 언니가 ‘그래 저건 시원이지.. 나 잘게’하고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나서 저희들끼리 하는 SNS에 언니가 글을 올렸는데 ‘은지 뽀뽀신인가, 키스신인가 나 절대 부러워하는 거 아니다’ 이렇게 글을 올렸더라고요. 진짜 귀여웠어요”
“에이핑크, 신인상 6개 받았지만 대중적 인지도 낮은 건 사실”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전 정은지는 7인조 걸그룹 에이핑크로 먼저 데뷔했다. 소녀감성을 앞세워 ‘몰라요’, ‘허쉬’ 등을 선보였고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지만 데뷔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으니 이들을 알아보는 사람들 보단 모르는 이들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팀의 메인보컬이자 가수가 아닌 보컬 트레이너를 꿈꿨기에 정은지는 늘 이 부분이 아쉬웠다.
“<응답하라 1997>을 하면서 정은지 하면 연관검색어가 에이핑크니까 같이 알아봐 주시고 진짜 다행인 것 같아요. 처음하는 연기인데도 많은 사랑을 받고 에이핑크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 올라간 것도 좋고요. 제가 본업이 가수인지라 음원이 사랑 받는 것도 너무 행복하거든요. 예전에는 ‘나중에 이런 관심 못 받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행복하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이제는 행복을 누리면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게 언제 또 이런 행운이 찾아오겠어요”
이제는 가수, 보컬 트레이너 라는 꿈 외에 배우라는 목표가 생겼다. 칭찬을 받기 위해서라기 보다 그냥 재미있어서란다. 그래서인지 정은지는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트랜디 드라마의 주연 이라는 또래 배우들의 정형화된 목표와는 다른 어찌 보면 소박한 꿈을 꾸고 있었다.
“저는 성동일 선배님처럼 잠깐 나와도 각인이 되는 감초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청순 가련한 여주인공은요?) 아, 저랑 안 맞아요.”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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