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하늬 "'블랙머니'? '극한직업'·'열혈사제'와 다른 에너지…쾌감 느꼈죠"
기사입력 : 2019.11.01 오후 5:00
'블랙머니' 이하늬 인터뷰 /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블랙머니' 이하늬 인터뷰 / 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작품이 배우를 선택한다'는 말이 더 명확해졌어요. 배우는 작품 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봐요. 작품들이 선물처럼 저에게 온 거고, 제가 잘해서 된 게 아니라 운명처럼 작품과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연기하면서 얻는 보람, 작업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이 결국 삶을 채워간다고 생각해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로 돌아온 이하늬와 만났다. 올 한해 '천육백만 배우'와 '시청률퀸' 수식어를 모두 얻은 이하늬. 누구보다 열일 행보를 보여준 그는 '블랙머니'에 임하며 "'극한직업'과 '열혈사제'에서 아주 강한 에너지들이 있던 걸 싹 지우고 제로 포맷에서 음에 가까운 기운을 담으려고 했어요. 작품마다 다른 에너지를 만나면서 쾌감을 느꼈죠"라고 전했다.


최근 제작발표회와 언론시사회에서 이하늬는 '블랙머니'를 선택한 이유로 정지영 감독과 조진웅을 꼽았다. 이날도 그는 두 사람 덕에 작품을 마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하늬는 "조진웅 선배가 연기하는 '양민혁'은 울분도 토하고 불같은 캐릭터라 '김나리' 역은 최대한 절제하려고 했어요. 캐릭터들이 상대적인 느낌이 들도록, 그런 호흡을 맞추고 싶었죠"라며 "역시나 첫 촬영부터 '와 조진웅 배우가 아니면 누가 양민혁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탄복하면서 연기했죠"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간 사회 고발 영화로 한국 영화계를 이끌었던 정지영 감독과 작업하며 "작업자의 태도에 대해 많이 반성하게 되고, 저를 반추하는 계기가 됐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는 "정 감독님은 멀리 계실 때도 할 말이 있으면 테이크마다 뛰어오세요. 지금 연세가 74세 신데도 그런 열정이 있으세요"라며 "제가 100편이 넘는 작품을 하고, 70세가 넘었을 때 이런 모습일 수 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분이에요. 이런 일련의 작업들을 대한민국에서 누가 할 수 있을까 싶었죠. 겁 없고 철없고 그런 사람만이 가능한 작업 같았어요. 정지영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다시 한번 그의 족적을 상기할 수 있었고, 이런 감독님이기에 이런 행보가 가능했구나 싶었어요"라고 정 감독의 열정에 감탄했다.



'블랙머니'는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난 해외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모티브로한 팩션 영화다. 작품은 '막프로'라는 별명을 가진 '양민혁'(조진웅) 검사가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의 자살로 인해 누명을 쓰게 되고, 억울함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던 중 국내 정재계가 연루된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덕도 있지만, 정지영 감독은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수년간 방대한 양의 자료를 공부했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시나리오가 완성됐을 터. 이하늬는 책을 만난 당시 첫인상을 묻는 말에 "보통 시나리오가 (배우에게) 오면 최대 8할 정도 완성된 상태인데, '블랙머니'는 100퍼센트의 완성도를 가진 느낌이었어요"라고 전했다. "완전무결 같은 시나리오였어요. '이 책이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수정을 거쳐서 온 거지?' 싶었죠. 후루룩 읽고 또 읽게 되더라고요. 대본 자체가 갖고 있는 완성도와 무게감이 있어서 좋았어요"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하늬는 극 중 '슈퍼 엘리트'급인 '김나리'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다각도로 준비한 흔적을 보였다. 그는 "김나리는 지적이고 뉴욕 월가에서도 거리낌 없이 일을 하는 여자라서 그녀의 말 한마디에서 지적 수준이나 대화와 소통 능력이 드러나길 바랐어요. 일상어를 내뱉지만 명료하면서도 커리어가 묻어나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최대한 절제하며 응축된 에너지를 표현하려고 고민 많았어요"라고 그간의 고민을 전했다.

엘리트 이미지를 위해 외적으로도 신경 쓴 점이 있냐는 물음엔 "안경 설정은 감독님이 주신 거예요. 개인적으로 최대한 수수하게, 꾸밈없는 모습으로 가고 싶었어요. 나리가 워낙에 유학도 하고 세련된 여자였지만, 멋을 부려서 멋있는 여성은 아니니까 화려한 느낌은 파티 신에서만 보여주고, 대부분은 일하는 모드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설명했다.


'블랙머니' 속 '김나리'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캐릭터로 반전을 선사한다. 극 전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나리의 선택에 대해 이하늬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됐죠"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캐릭터를 만나면 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어요. 결과적으로 나리의 선택이 현실적이라고 믿어요. 돈을 갖고 호의호식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진짜 국익을 생각하고, 대의에 부합하는 게 그 선택뿐이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선택이 선하지는 않죠. 그렇지만 결과가 선하다고 해서 과정이 용서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건 또 다른 문제에요. 이제는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혼합되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가치판단이 어려워지는 세대라서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국익이 남과 상충할 때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 '블랙머니'죠"라고 강조했다.

이하늬는 작품에 애정을 쏟았던 만큼 시사회 때 눈물까지 흘렸다고. 그는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정이 올라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제 부분보다도 마지막에 조진웅 선배님이 선언하는 신에서 크게 낭독하려 하면서도 그사이에 울분이 비짓비짓 새어나오는 감정에 동요됐어요. 마음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데, 그걸 분노나 슬픔처럼 뭐라고 딱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제가 울어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한데, 시사회 때 보고 눈물이 났어요. 정말 명장면이에요"라며 회상에 젖었다.


또한, '블랙머니'는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로 배우와 관객에게 담론의 여지를 열어줬다. 이하늬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사회'에 대해 '유연한 사회'라고 정리했다. 이어 "피부색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것 같아요. 요샌 그런 미덕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많이 안타까워요. 제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나를 평가하는 것에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저에게 너무 엄격하다 보니 동시에 다른 사람한테도 같은 잣대로 보게 되더라고요. 잘잘못이 있을 때는 명명백백하게 가려야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서가 야박해진 것 같아요. 우리가 조금은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배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그리고 관객과 우리 사회에 '마주해야 할 진실'을 보여줄 '블랙머니'는 오는 11월 13일(수) 전국 극장가에서 개봉한다.


글 이우정 기자 / thesta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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