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태규 인터뷰 / 사진: iMe KOREA 제공
배우 봉태규가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드라마 스페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2015/1부작) 이후로 2년 만에 16부작 드라마로는 '개인의 취향'(2010) 이후 약 7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봉태규는 최근 종영한 SBS '리턴'에서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재벌가 아들 김학범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극악무도한 김학범을 봉태규는 날 선 연기로 선보여 호평을 얻었다. 극 초반부터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봉태규 신성록 윤종훈 박기웅으로 구성된 악인들의 행적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사는데 성공했다. '리턴'을 통해 봉태규는 순박하고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소름끼치는 악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또 다른 대표작을 만들어냈다.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신한류플러스 프리미엄라운지에서 봉태규의 '리턴' 종영 인터뷰가 진행됐다. 다음은 봉태규와 나눈 일문일답.
-주인공인 고현정이 중도 하차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 문제에 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 좋은데 조심스러운 입장인 게 사실이다. 지금은 지나간 상황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이 정도다. 당시는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리턴'에서 봉태규만의 악인 캐릭터를 보여줬다. 어떻게 준비했나
"어느 순간 매체에 재벌, 악역이 많이 등장했다. 그래서 내가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존의 악역들을 생각하지 않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의상을 캐주얼하게 입고, 연미정(한은정) 시체를 묻으러 갈 때도 천진난만하게 웃었던 것도 학범이는 그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주(윤주희)와 붙는 신에서 몰입했다."
"학범이가 악행을 저지르는 부분도 일상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학범이의 폭력성은 사이코패스로서가 아닌 일상의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단적으로 학범이는 존대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존대하지 않는 건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 폭력이 가장 나쁘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 중에 누군가를 하대하는 것 또한 가장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 방점을 찍고 일상의 폭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청자가 보는 김학범은 분명 신선한 캐릭터였다.
"'내게 강같은 평화~' 벨소리는 찍을 때도 몰랐다. 감독님이 편집하면서 넣으신 것 같다. 학범이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잘 표현한 것 같다. 학범이가 자신의 차를 장애인주차구역에 댄다. 그 장면도 촬영할 때는 다른 곳에서 찍었는데 어느날 비어있는 곳이 장애인주차구역밖에 없었고 학범이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아서 임기응변으로 그 신을 찍었다. 학범이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똘끼를 잘 보여준 것 같다."
"원래 감정의 흐름을 계산해서 연기하는데 학범이를 연기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학범이 캐릭터를 볼 때 입체적으로 보였다. 봉태규가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런 캐릭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거기에 대한 만족감은 크다."
-김학범이 워낙 극악무도한 캐릭터인데, 현실과의 괴리감은 없었나.
"촬영이 없을 때 저는 아기를 보고 청소하고 마트가서 장보고 집에 있는다. 반면 김학범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욕하고 실제 나와 전혀 달라서 오히려 일상생활에서는 영향이 없었다. 막연하게 학범이 같은 캐릭터를 10년 동안 준비했다. 그러다 만나서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악벤져스 4인방(봉태규, 신성록, 박기웅, 윤종훈)으로 불린 배우들과는 어땠나
"촬영하면서 서로 의지했다. 신성록과 부딪히는 신이 많아서 항상 통화했다. 시청률에 관한 연락이 오면 함께 기뻐했고, 서로 차기작도 터놓고 얘기했다. 이진욱과 연기할 기회는 많이 없었지만 유일한 친구여서 의지했다. 악벤져스는 다 저보다 동생이다. 그래서 이진욱에게 마음이 갔다. 악벤져스와는 '누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그때 내가 처절하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체를 묻는 신을 심각한 촬영도 뭐가 좋았는지 저희끼리 신나게 촬영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오랜만에 작품을 했는데 좋은 동료들을 얻은 것 같다."
-장르 특성상 잔인한 장면이 유독 많이 불편하다는 시청자 의견도 있었다.
"제작진도 시청자의 불편한 시선을 이해했을 거다.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를 스스로 검열하면 안 된다. 학범이가 악인이어도 싫어지면 안되니까 그런 부분은 감독님과 상의해서 같은 수위에도 덜 불편하게 보이도록 고민했다."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
"완전 쓰레기라고 했다.(웃음) 그만큼 리얼하게 했다는 칭찬으로 들려서 기분 좋다. 10년 동안 준비한 캐릭터여서 그렇게 연기했지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게 못 한다. 아이를 키우면 부모는 많이 기다려야 하고 100% 흡수만 해야 한다. 아이 키울때 부모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때 학범이 캐릭터를 만났다. 흡수해서 쌓인 것을 연기할 때 엄청난 에너지로 표출됐다.(웃음) 아들이 1춘기일 때 자아가 생겼다. 가만히 있는데 저한테 하지 말라고 하거나 나가라고 한다. 갑자기 화내고 울기도 했다. 나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육아책을 보면 아이의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화를 낼 수도 없고, 폭력도 할 수 없는 시기다. 기다려주고 아이가 보내는 액션을 가만히 받아들여 줘야 한다. 그럴 때 학범이 캐릭터를 연기했다. 준이나 인호 캐릭터를 연기했으면 실제 생활에서 후유증이 엄청났을 거다. 아들한테 참 고맙다.(웃음)"
-'리턴'에서 최자혜 변호사(박진희)는 결국 개인적인 복수를 택한다. 개인적인 복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보수적으로 생각할 땐 잘못됐다. 개인적인 복수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똑같은 방법이라는 거다. 상대방과 똑같은 방법으로 누군가에 해를 가하는 것은 도덕적 기준으로 봤을 때 옳지 않다. 어떤 개인이 큰일을 겪고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품었을 때 내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건 고민될 것 같다. 최자혜 변호사가 인호네 집에 가서 하는 대사가 있다. '촉법소년*'에 관한 얘기인데, 최자혜가 인호에게 '그걸 네 딸이라고 생각해봐. 그럴 때도 성인군자 같은 말이 나올까?'라고 한다. 저는 그 말이 정답인 것 같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잘못했지만, 최자혜 입장에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촉법소년(觸法少年): 형벌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자로서 형사책임이 없는 자를 말한다.
-'리턴'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객관적인 기준 안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데 객관적 기준(법)이 100% 맞을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법을 지켜야 한다고 배운다. 저는 38년동안 법에 의심 품어야 한다고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다. 법에 의심을 품는다는 것은 곧 절대적인, 객관적 기준에 반하는 것과 같다. 사실 법이 틀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5천만인데 그 기준을 5천만에 들이대는 건 가혹하다. 똑같은 법이라도 어떤 개인한테는 가혹할 수 있는데 과연 이게 맞는 건가. 4999만 명이 만족하면 1명이 잘못된 것은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그런 화두를 던져준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꾸준히 작품 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사실 스스로 '배우'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연예인이라고 한다. 저는 '예인'이라는 말이 멋있다. 어느 순간 연예인이라는 단어가 하대 받는 느낌을 받았다. '연예인 말고 배우가 되려고요'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저는 예인이라는 원 안에 배우, 가수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보다는 좋은 예인이 되고 싶다. 그 안에서 연기를 성실하게 잘하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배우로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변화가 생긴다. 어떤 아빠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저는 제 아들한테 어떤 아빠가 되기 이전에 아내한테 좋은 남편이 되면 저절로 좋은 아빠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들한테 어떤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고 지금은 아내한테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그게 제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하다. '리턴' 끝나고 기뻤던 건 아내한테 뽐낼 수 있는 게 있어서 기뻤다. 저는 제 아내한테 칭찬 받는 게 제일 좋다. 잘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고, 제 아내가 저를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게 매우 좋았다. 어떤 배우, 어떤 연예인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좋은 남편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글 더스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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