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정려원 "'이래서 남자주인공 쓰는거야'라는 말을 듣기 싫었어요"
기사입력 : 2017.12.25 오전 11:00
정려원 인터뷰 / 사진: 키이스트 제공

정려원 인터뷰 / 사진: 키이스트 제공


배우 정려원이 다른 색깔을 옷을 입었다. 오랫동안 '내 이름은 김상순'의 유희진으로 기억됐던 청순가련한 정려원은 '자명고'(2009)를 통해 사극의 옷을 입고, '샐러리맨 초한지'의 백여치를 통해 코믹 연기도 잘 소화하는 배우가 되었으며, '메디컬 탑팀'으로 의학물도 무난하게 소화했다. 장르를 막론하고 무한대로 성장해나가던 정려원에게 또 한 번의 벽을 깨부수는 작품이 찾아왔다.


'마녀의 법정' 속 마이듬은 능청스럽고, 털털한 7년차 에이스 검사다. 마이듬은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사이다 대사로 허를 찌르고, 중요한 순간에 사건을 해결하며 보는 이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TV 드라마는 남자 배우들 판이라는 공식을 깨고, '민폐'없이 주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것 또한 여주인공인 마이듬, 정려원 몫이다.


정려원에게 터닝포인트가 된 '마녀의 법정'을 끝나고 궁금한 것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즐거운 인터뷰는 오랜만"이라는 취재진의 말처럼 정려원은 마이듬처럼 거침없이 솔직했고, 뜨겁게 교감했다. 그 시간을 다시 회상하며, 정려원과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마이듬과 실제 정려원이 매우 다르다던데 어땠나
"이듬이 캐릭터가 세다 보니 숙제가 많았어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현장을 갔을 때는 '이듬이네'라고 해주셨어요.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모습들이 나와도 괜찮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 같아요. 담아놓고 있었던 것들이 풀린 느낌이에요."


-평소 마이듬처럼 걸크러시한 면도 있나
"공효진 언니가 현장에 놀러 와서 '쫄보인 거 티 내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임수미라는 제 친구가 딱 마이듬이에요. 한번은 공구를 사러 갔는데 아저씨가 가격을 비싸게 부르니깐 '바가지 씌우는 거 아니죠?라고 바로 말하더라고요. 수미를 보면서 이런 캐릭터가 있으면 너무 시원하겠다 싶었어요. 저는 논리적으로 말을 못해서 말을 안 하거든요. 그 친구는 뒤끝없이 하는 편이다 보니 통쾌해요."


"마이듬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친구에게 1-2부를 읽어보라고 했는데, 저는 대사를 하고 친구는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스치고 지나가는 데도 무게감 있게 들려서 그 친구한테 많이 물어보고 그 친구가 하는 말을 대사에 붙였더니 잘 붙더라고요. 이듬이가 이런 성격이니까 시청자분들도 통쾌함을 느끼신 것 같아요."


-'마녀의 법정'이 제작발표회까지만 해도 기대를 한몸에 받진 못한 것 같아요.
"새로운 시도를 좋아해요. 여성아동전담부 검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여아부에서 변호할 땐 어떤 걸 받는지 모르니깐 자세히 알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국민들이 알 권리가 있고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성범죄는 수치심을 동반하는 범죄이기 때문에 손들고 말하는 피해자가 없어요. 실제로 자기의 수치심을 각각 다른 분들한테 얘기하는게 싫으니까 사건이 진행되다 마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다면, 한 명의 담당자에게 공판까지 쭉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우리 드라마는 특별했어요. 연기하면서도 무거운 주제인 만큼 2차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도 캐릭터적으로는 너무 어두워지지 않게 해보자고 다짐했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맡은 소감은?
"너무 뿌듯해요. 이런 배역이 주어졌을 때 힘들어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이래서 남자 주인공 쓰는거야'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누구보다 현장에 먼저 가 있었어요. ''마녀의 법정'을 하면서 제 나이 또래 여배우들을 메인으로 썼는데 괜찮던데'라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사명감으로 했죠.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 역할이었고, 여배우가 나서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많았기에 이 작품은 좀 더 연구를 많이 했어요."


-인터뷰를 해보면 여배우들의 고민은 매한가지인 것 같다. 여배우들의 캐릭터는 늘 한정적이고, 설 곳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여진 선배님도 마이듬 역할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셨대요. 본인이 원하던 여성상이 나온거죠. 선배님도 뒤풀이 때 '이듬이가 초반 시선몰이만 하고, 남자 주인공이 리드하고 가는 게 아니냐' 우려하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듬이가 이끌고 가는 걸 보고 작가님께 너무 감사했대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선배님은 그림 전체를 보고 하시는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도 이런 선배가 돼서 이런 판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녀의 법정'으로 새로운 정려원을 보여줬다.
"저는 시트콤 찍는 것도 좋아하고 개그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똑바로 살아라'같은 시트콤도 좋아하는데 '이제 내가 소화해낼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한지'때도 철딱서니 없고 버릇도 없지만 웃기고 짠해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마이듬도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서 충분히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이듬은 멋진 친구예요."


-마이듬을 연기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도 있나?
"눈치를 잘 보는 편인데 이제는 눈치를 보기 전에 일단 말을 던져요. '감독님 제 생각은 이런데 코드를 바꾸면 어떨까요?'라고 말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도 조리있게 말하는 법을 몰라서 못했거든요. 제가 제안했을 때 감독님이 흔쾌히 '그러세요~'라고 하셔서 이렇게 쉬운 건데 왜 나는 무례하다고만 생각했나 싶었어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데 내 의견이 전달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되잖아요. 이번엔 자유로웠죠."


-외국생활을 오래 해서 감정 표현도 솔직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죠. 자유로운 사고를 갖고 있는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에요. 제 별명이 쫄보, 민달팽이거든요. 온몸으로 느끼는데 잘 안 보이고, 건드리면 훅 들어가요. 제 방에 세 들어있는 마이듬이 안 나갔으면 좋겠어요. (캐릭터의 영향을 잘 받나 보다) 네. 영향을 너무 받아서 공포영화를 못 해요. 공포영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보는 것도 힘든데 실제로 하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요."


인터뷰②에서 계속.


글 더스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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