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훈, "'박열'은 양파 같은 영화..흥행 신경 안써"
기사입력 : 2017.06.17 오전 8:59
사진 : 영화 '박열'의 배우 이제훈 /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사진 : 영화 '박열'의 배우 이제훈 /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굉장히 흥분됐죠, 이준익 감독님인데. 다른 시나리오 제쳐두고 무조건 하겠다고 덤벼들었는데, 내용도 일반적이지 않은 데다가 캐릭터(박열)가 너무 강렬해 부담감이 컸어요. 망설임은 잠시..감독님이라면 절 이 작품 속에 잘 던져주지 않을까 기대했기에 공부도 많이 했고, 결과물을 보니 매우 만족스럽네요.”

1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 제작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의 배우 이제훈을 만났다.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를 보면서 윤동주 시인은 물론, 송몽규 란 시인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말한 이제훈. “’동주’가 잘돼서 이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닙니다.(웃음) 조선에서는 영웅, 일본에서는 대역죄인이었던 한 사람, ‘박열’을 연기하면서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도 많이 받았고, 고증에 충실한 영화다 보니 상업적으로 생각해 본적도 없고..오히려 이 작품에 대한 가치와 의미 부여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던 거 같아요. 말 그대로 진중함이죠.”


이제훈은 일본어 대사가 많아 이 또한 고민이 많았다라고. “인사말 정도만 알고 있던 일본어를 일상처럼 주고 받아야 하니..게다가 감정 전달도 해야 했기에 너무 힘들었죠. ‘박열’ 출연을 결정하고 첫 번째 수행과제가 바로 일본어 습득이었어요. 제 주변 배우들 모두에게 일본어 대사 가이드를 직접 녹음해달라고 했고, 촬영 전후 현장에서 계속 들으면서 연습했어요. 스태프들이 ‘이제 그만해라, 노이로제 걸리겠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렇게 현지인이 된 거처럼 연기하고 싶었던 이유는 실제 일본인들이 우리 작품을 접하면 이질감 없이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욕심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이준익 감독의 신작으로 <박열>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게 바로 캐릭터 포스터였다. 새빨갛게 거친 붓으로 그려진 듯한 카피(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볼 수 없었던 이제훈의 파격적인 표정연기와 몸동작이 시선을 압도했기 때문. 이제훈은 껄껄 웃으며 “영화 촬영 종료 후 포스터를 찍은 거라, 당시엔 그런 반응은 예상치도 못했죠. 감독님은 물론, 현장 스태프들도 절 못 알아보는 거예요. 온전히 이제훈이란 사람이 지워지고 그 순간 박열로 보여지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거지같고, 지저분하며, 더럽기까지 말이죠, 하하하!”

극 중 부부 호흡을 맞췄던 ‘배우 최희서’와의 호흡도 궁금했다. “8년전 우연히 본 독립영화의 여주인공으로 그녀를 처음 봤어요. 외국인과 결혼해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께 소개해주는 내용의 단편영화였는데요. 외국어 연기가 일상처럼 느껴져 인상적이었죠. 그 후 ‘동주’ 출연을 거쳐 ‘박열’에선 후미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실제인물과 가깝게 소화를 하더군요. 배우로서의 표현력과 인텔리함 속에 숨어든 예술가적 기질까지 타고난 여배우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보석 같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제훈은 ‘박열’의 시나리오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촬영에 돌입했다. 그는 준비하는 기간이 짧았던 것 만큼 촬영장에 갈 때마다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고,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후회하지 않는 작업이 되어야죠. 그래서 더욱 부담감과 압박감에 시달렸던 거 같아요. 마지막 촬영 후엔 절로 눈물이 나더군요.(웃음) 제겐 여운이 오랫동안 남을 작품인 거 같아요. 함께 해준 스태프들에게 너무 감사하죠. 제가 앞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합니다.”

올 추석 개봉예정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촬영 차 배우 나문희와 차주 미국에 간다고 말한 이제훈은 “이번엔 (나문희) 선생님께서 영어를 많이 해주셔서 다행이에요.”라고 웃었다. 이어 “제게 연기로 많은 영감을 준 분이 ‘파파로티’(2012)때 만난 한석규 선배님이죠. 어릴 적부터 그 분 연기하는 걸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던 저였기에, 군 제대 후 ‘비밀의 문’으로 선배님을 다시 만나니 연기에 대한 고민이 싹 정리가 되었어요. ‘네 스스로의 연기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그 분의 조언은 늘 마음 깊숙이 새기고 있습니다. 덧붙여, ‘시그널’때 김혜수 선배님께는 배우와 스태프간 소통이 뭔지 알게 되었고요.”라고 말했다.

말랑말랑한 로맨스 장르는 자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이제훈. 그 이유로 “그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겨 보는 편인데,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 연이어 다른 배우와 사랑에 빠진다는 게 자신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배우의 길은 걷고 싶지 않은 게 제 지론입니다.(웃음)”

안정된 인기도 중요하지만 도전하고 싶은 열망이 더 크다고 밝힌 이제훈의 유일한 취미는 “홀로 극장에 가 영화 보는 것”이란다. “작년 9월부터 세 작품을 연달아 소화하느라 쉬질 못했어요. 너무 슬프죠. 호평이 자자한 ‘꿈의 제인’과 ‘용순’과 같은 독립영화도 너무 보고 싶은데..”라고 아쉬움을 전하며 “서른 후반께 단편영화 연출(또는 제작) 욕심도 있죠. 지금은 그런 소양이나 그릇이 충분치 못하지만, 대중 몰래 작업해서 깜짝 놀래 키는 날만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이제훈은 영화 <박열>의 건투를 빌었다. “저 또한 몰랐던 위인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요. 지금은 당연한 권리인 자유 의지와 평등이 일제치하에선 억압된 상황이었잖아요?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존재하고 살아가는 부분에 있어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드라마틱한 그 분(박열)의 삶도 굉장히 흥미롭죠. 그 동안 봐왔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영화란 걸 몸소 느끼실 거예요. 최소한 세 번은 봐야죠, 양파 같은 영화니까요.(웃음)"

이제훈이 주연한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 6월 28일 개봉한다.


글 성진희 기자 / geenie62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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