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진구, "광해 역할인데, 난 그를 버렸다"(영화 대립군)
기사입력 : 2017.05.25 오전 8:00
사진 : 배우 여진구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사진 : 배우 여진구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제 역할이 광해인데, 연기할 때 만큼은 그를 버렸어요.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비춰졌던 광해를 전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죠. 왕이 가진 용맹함과 비범함 보다는 무능력함과 찌질함을 심어 줬어요, 백성 하나하나를 살필 줄 아닌 광해의 기본 품성은 고이 간직한 채 말이죠, 하하!”

배우 여진구가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의 왕세자로 거듭났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 당시 ‘파천’(播遷)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광해’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代立軍)의 이야기를 그린 팩션 사극이다.


24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진구는 영화 홍보와 tvN 월화드라마 [써클] 촬영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가끔 연기적 영감이나 인터뷰 때 제 생각들을 정리해서 말하고자 하는 자료로서 짬짬이 책을 보긴 하죠. ‘태백산맥’이죠. 하하,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읽다 보면 까먹고, 다시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길 반복한답니다.(웃음)”

어릴 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연기가 이젠 천직이 되었고, 어느 덧 성인배우가 돼서 선배 배우들과 나란히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어엿한 여진구. “제가 술은 잘 못해서..선배님들이 주시니까 소맥도 먹어 보고 있는데, 잘 늘지는 않더군요. 그런 술자리 자체가 제겐 소중하니까요. 그래도 긴장은 하는 터라, 그 자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차에서 매니저 형에게만 살짝 주정(?)을 부리곤 합니다.”

벌써 13년차 베테랑 배우다. 김윤석(화이) 설경구(서부전선) 등 충무로의 대표 연기파 배우들과 호흡하며 폭풍성장한 여진구는 이번엔 ‘대립군’ 속 수장인 토우 역의 이정재와 호흡을 맞췄다. “선배님의 뺨 때리는 장면이 어려웠죠. 좀 더 세게 때려 단번에 끝내야 했는데, 어설프게 때려 테이크도 여러 번 가게 되고..액션이 난무한 게 아닌, 정적인 장면이라 촬영 후 모니터링을 해보니 제 액션이 티도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눈 딱 감고 휘두른 게 오케이 컷이 났네요, 후훗!”

앞선 인터뷰에서 이정재는 “여진구의 풍부한 감성을 뺏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화답을 해달라는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전 선배님의 여유롭고 섬세한 감정 표현력을 뺏고 싶어요.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맡은 광해는 한 순간의 감정 폭발이 아닌,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세자가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에, 그런 (이정재) 선배님의 감정이 더욱 부러웠습니다.”라고 말했다.



잘 생긴 여진구도 커다란 스크린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 감추고 싶은 외적 콤플렉스가 있다고 했다. “어릴 때 수두를 앓은 적이 있는데, 견디다 못해 긁어 흉터가 남은 자국이 있어요. 클로즈업을 하면 겁이 나죠. 그런 부분은 부각되고 싶지 않네요.”

여진구가 <대립군>을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건, 그런 외적인 스트레스 보다 산 속 ‘가마씬’이었다고. “제가 왕세자라, 극 초반 가마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데, 굉장히 편했죠. 아마 저만 매일 아침마다 가볍게 등산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촬영장에 나온 거 같아요. 절 호위하는 주변 분들에겐 죄송합니다.(웃음) 또, 첫 촬영 때 인상 깊었던 건 이정재 선배님을 비롯한 대립군들의 카리스마에 제 자신이 눌렸어요. 캐릭터에 몰입한 선배님들을 보는 순간 놀라 ‘저 아저씨들이!!!’라고 속으로 외쳤죠. 그 연장선으로 제작보고회 때 이정재 선배님께 “(무서운) 아저씨”라고 한 건데..오해 없으시길 바랄게요.”라고 적극 해명도 했다.

여진구는 작품에 임할수록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겠다”고 늘 다짐한단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시절 제 연기가 정말 편하고 좋았어요. 그 당시엔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그런걸 못 느낀 거죠. 그래서 편하게 연기했어요. 제 연기를 보면서 막혀있는 느낌, 부족한 느낌은 작품 수가 늘어갈수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게 되더군요. 그 시절이 그리운 건, 마냥 순수하게 연기를 좋아하는 제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대립군’ 만큼은 많은 걸 내려 놓고 편하게 임했던 거 같아요.”라고.

그렇게, 배우로서 성장통을 거치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놀면서 연기했다”는 어린 고니 역의 드라마 [타짜] 였다고 말한 여진구. 그는 또, “가장 저 다운 작품? 아직은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제 목표입니다"라며 "지금 나이 대라면 ‘청춘’물을 좀 더 해보고 싶죠. 멜로는 낯간지러워서요.(웃음) 서투른 사랑이야기 정도로만 표현된다면 좋지만, ‘해를 품은 달’과 같은 로맨틱 멜로는 정말 어색합니다.”라고 말했다.

“잘 먹고, 밝게 웃고, 애교가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상형도 밝힌 여진구는 “다만, 배려심 없고, 예의 없는 건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친구들은 많은데, 아역출신의 공인이라 그런지 부담스러워 소개팅 자리도 주선해주지 않는 듯 해요. 그게 좀 시원섭섭합니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특별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1987>(감독 장준환)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박종철 열사 역할을 맡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요. 감독님께서 먼저 제안을 주셔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최근 5.18 기념일도 있었는데, 뭔가 가슴 찡한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덧붙여, 진정한 리더쉽이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를 담은 <대립군>의 배우 여진구는 “생애 첫 투표 자격으로, 이번 대선의 사전투표도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막상 투표소에 들어가 도장을 들고 찍으려고 하니 엄청 떨리는 거예요. 제 작은 행동이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하니까.(웃음) 많은 생각이 스쳐간 값진 경험이었죠. <대립군>이 주는 메시지도 그 순간 절로 떠올랐고요.(웃음)”

마지막으로, 여진구는 <대립군>으로 500백 아닌 700백만 공약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관객에 대한 보답은 선배 배우들과 여러 아이디어를 통해 갚겠노라며 “우선, 100만 관객이 들면 가까운 영화관에 찾아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 배우 활동중에 부모님께 물질적으로 해드린 것이 있냐고 물었다. “(크게 웃으며) 아, 글쎄요! 제가 돈 관리를 안해서..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은 해드렸죠.”라고 소박하게 웃었다. 그가 열연한 영화 <대립군>은 5월 31일 개봉한다.


글 성진희 기자 / geenie62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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