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현 인터뷰 / 사진: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모델 출신 배우 홍종현은 '워너비 남친' 0순위에 자주 거론되는 스타 중 한 명이다. 매 작품 우월한 외적 조건과 차근차근 쌓아 올린 연기 경험을 더 해 인기와 실력을 누적해나가고 있는 그는 최근 종영한 '달의 연인'으로 자신의 필모에 방점을 찍었다.
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카페에서 더스타와 만난 홍종현은 "촬영하면 할수록 스스로도 편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방송으로 보니까 화장을 해서 그런지 되게 그럴싸해 보일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는데, 그때 좀 '다행이다' 싶었어요. 시청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욕해주셔서 기분 좋았죠"라고 말했다.
트렌디한 느낌, 로코에 어울리는 남주 느낌이 강했던 홍종현은 '달의 연인'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예측 가능한 범위 밖에 있었던 '악역'까지 완벽하게 해낸 그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김규태 감독님을 만날 때 3황자로 미팅한 건 아니었어요. 만나서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네가 3황자 하는 건 어떻겠니?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캐릭터인데 내 생각엔 네가 잘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네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때?'라고 하셔서 대본을 살펴보게 됐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하게 됐어요. 악역은 처음인 데다 화장도 액세서리도 과해서 걱정했는데 현장에서 촬영할 때만큼은 자신감 있게 연기했어요."
왕요 캐릭터가 강렬한 악역이다 보니 회차를 거듭해 나갈수록 요XX, 요스님, 요마보이 등 다양한 별명들이 생겼다. 특히 홍종현은 캐릭터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수록 연기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사실 왕요가 이유있는 악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홍종현의 설득력 있는 연기 때문이었다.
"초반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자신감이었어요. 왕요는 태어날 때부터 황제 수업을 받았고, 황제가 아닌 자리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타인의 것을 뺏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인물이죠.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캐릭터여서 모진 말도 뻔뻔하게 연기했어요. 황자들을 죽일 때도 미안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죠. 그래야 후반부에 왕요가 무너져 갈 때 처절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왕요가 선을 위해 존재하는 필요악이었다면 극의 방해요소가 됐겠지만, 왕요는 엄마의 그늘 밑에서 왕이 돼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아온 인물이었기에 그가 행한 숱한 악행들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왕이 됐지만 더는 의지할 때가 없었던 왕요는 미신에 의존하게 돼요. 왕요는 타인의 약점을 후벼 파거나 공격하는 걸 즐기는 캐릭터인데 더는 올라갈 곳은 없고, 누군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제야 소(이준기)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거고요. '엄마한테 나는 뭐냐'는 대사나 너무 짠했어요. 요도 소처럼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버려질 거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을 것 같아요."
"촬영할 것도 많고 다들 지치고 힘든 상황인데도 제가 집중할 때까지 끝까지 기다려 줬어요. 그 점이 가장 도움이 됐고요. 왕요 캐릭터를 잡는 데 있어 감독님, 작가님, 박지영 선배님의 도움이 컸죠. 촬영 끝나기 전날 작가님이 전화로 '내일 죽는 데 어때요?'라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왕요가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이렇게까진 안 자랐을 거예요. 엄마한테 예쁨 받기 위해서 시키는 대로 했고, 뭘 잘못했는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더 솔직하게 말하면 왕요도 살기 위해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는데, 마지막 신에서 '내가 뭘 잘못했지? 엄마가 그랬잖아. 무결한 존재라고. 난 살고자 했을 뿐인데'라는 대사를 추가해 주셔서 촬영할 때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 활동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을 만난 홍종현. '악역'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얻은 현시점에서 이번 도전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제 안에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 하고 싶은 역할이 많거든요. 사실 그 전에는 차갑고 냉소적인 캐릭터 위주로 해서 다른 모습도 많다고 했었는데, 앞으로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브라운관을 통해 배우들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캐릭터와 배우를 동일시하게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정다감한 동네 오빠 역할을 했던 배우라면 좀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맡은 배우라면 전자의 배우보다 더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홍종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이미지가) 솔직히 답답하긴 했죠. 조금은 안타깝고. 다른 면도 많고 보여주고도 싶은데. 익숙한 건 아니지만 새로운 걸 하는 게 스스로도 재미있거든요. 또 잘해냈을 때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고, 장단점이 분명하다는 걸 아니까 굳이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에도 홍종현은 기자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성실한 느낌이 강한데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일부의 편견은 왜 생긴 것 같은지 물었다. "'싹수없을 것 같은데 친해지니까 안 그렇네'라는 선입견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외모가 날카로워서 그런가"라던 홍종현은 자신에게 의외의 모습이 있다고 했다.
"저 되게 장난꾸러기예요. 제가 좀 낯가림이 있고 친해지는데 오래 걸리긴 하지만요. '달의 연인'은 사전 제작이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에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노하우도 생기더라고요. 이번 현장에서도 많이 느꼈고, 또래가 많아서 편하고 의지도 하고 그랬어요. 역시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혀나가고 있는 홍종현은 배우로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노력해야 할 점은 많지만, 긍정적인 얘기를 하자면 잘할 가능성도 있다는 거예요. 사실 저는 저 자신에게 점수를 줄 때 짜요. 만족도가 큰 편도 아니고요. 그런 점이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인 것 같아요."
2016년을 의미 있게 마무리한 홍종현은 시간이 된다면 "친구들과 스키장이나 온천에 가고 싶다"고 했다. 차기작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며, 올해는 못다 한 일들을 하며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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