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인터뷰 / 사진: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권율은 선한 외모와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 속에 차가운 이면을 품고 있는 배우다. 스스로가 가진 부드러운 모습과 냉철한 매력 가운데 주어진 캐릭터의 상황에 맞는 이미지를 꺼내어 연기할 수 있는 유연함을 그는 갖고 있다. ‘밀크남’ 권율로 관객과 마주했던 그가 ‘악역’이라 규정짓기 힘든 오묘한 캐릭터로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배우 권율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권율과의 일문일답 인터뷰.
▲악역 혹은 선 굵은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 악귀가 씐 역할을 연기한 소감은?
▲박준화 감독과 맞춰가면서 점차 캐릭터가 정립됐겠다.
극중 주혜성이 앞뒤 전사없이 나타나서 (다른 인물들을) 보고, 긴장감을 조성해가야 하는 인물이어서 외적인 부분을 많이 만들어갔다. 그런 모습들이 더 소름 끼쳐 보이고 무시무시해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역할의 균형을 맞춰가면서 잡아갔다. 중후반부에는 주혜성이 왜 그렇게 변하게 됐는지 직접적인 행위들이 연관 지어 지면서 저는 정립된 요소들을 가지고 연기에 몰입했다.
▲온전히 캐릭터에 몰입했던 건 언제부터였나.
캐릭터화됐다기 보다는 후반부에 희열을 느꼈다. 그 전에도 분명 있었지만, 혼자 돌아다니고 나타나고 보고, 고양이를 죽이다가 김상호 선배와 마주하는 장례식장 주차장신에서는 저도 막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김상호 선배가 연기를 잘 이끌어주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선배가 정말 세련되게 잘 받아주셔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돌이켜봤을 때 그 장면은 짜릿하고 두근거렸던 신이었죠.
▲영화 <사냥>에서 죽은 엽사의 신발을 뺏어 신는 장면을 감독에게 직접 제안해 연기했다고 했다. 이번에도 직접 제안해서 탄생한 신이 있나.
<사냥>에서 혼자만 슈트를 입고 나오는데 산속에서 촬영하다 보니 발을 접질렸다. 촬영 끝나고 조진웅 선배와 소주 한잔 하는데 ‘너 많이 다치는데 끝까지 잘할 수 있겠니. 걱정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네가 옷 갈아입을 수 있는 타이밍을 봐봐’라고 하셔서 엽사를 죽였을 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조진웅 선배가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탄생한 신이다. 이번에 ‘싸우자 귀신아’에서는 박준화 감독과 서로 자기 자랑을 했다. 내가 ‘저는 완벽하게 할 수 있죠’라고 하면 감독은 ‘내가 편집 잘하면 돼’라는 식이었다.(웃음) 처음엔 진지하다가 결론은 장난으로 마무리했다. 서로 믿음이 있어서 더 의지했다. 막판에는 감독님과 여러 가지 신과 콘티를 짜서 움직였다. 서로 눈만 봐도 통할 만큼 신에 대한 의견과 느낌이 잘 일치했다.
▲봉팔(옥택연)과 현지(김소현)는 관계 속에 있는 인물들로 보이는데, 혜성은 호기심은 유발하지만, 한편으론 동떨어진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나.
나는 주혜성의 한 편의 드라마가 시작됐다고 봤다. 우리 드라마는 플롯이 두 개였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봉팔과 현지의 관계이고, 하나는 혜성과 봉팔의 과거가 엮인 또 다른 플롯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플롯대로 연기하면 됐지만, 호러와 로코가 만난 복합장르를 연출해야 하는 감독님이 힘들었을 거다. 내가 과잉되거나 부족하지 않도록 감독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연기했다.
▲혜성의 플롯을 이어가는 동안 한쪽에서는 로맨스를 펼쳐지고 있었다.
재밌고 귀여웠다. 옥택연과 김소현이 잘해주는 모습이 고마웠고, 후반부에 어떻게 만날지 기대됐다. 그래야만 양극화된 시점의 접점에서 긴장감이 넘칠 것 같았다. 김소현은 귀신을, 옥택연은 귀신을 보는 인물을 연기해야 해서 어려웠을 텐데 시청자가 초반부터 공감하고 안착할 수 있도록 잘 연기해줘서 끝까지 좋은 힘을 발휘한 것 같다.
▲2PM 멤버인 옥택연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지금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연기돌에 대한 선입견이 있지 않나.
아이돌의 본업은 가수이지만, 연기할 때는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스케줄을 빼고 연기에만 집중한다. 아무래도 가수 활동을 병행하면 체력이 저하돼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연기를 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박준화 감독이 인터뷰에서 ‘김소현은 감정 연기에 능하다. 이제 아역 연기는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칭찬했다. 권율이 본 김소현은 어떤 배우인가.
감독님 말씀에 동감한다. 굉장히 영리한 배우다. 튀지 않으면서 그 신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친구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 신에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유려하고 배우다. 김소현은 유연하게 작품에 녹아들고, 정확하게 연기할 줄 안다.
▲‘식샤를 합시다2’부터 영화 <사냥>, 지금의 ‘싸우자 귀신아’까지 근래의 출연작에서 부드럽고 선한 이미지와 반대되는 역할을 지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정반대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건가.
부드러운 이미지를 구축한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제가 연기할 때 재미있고 여러 가지 모습을 연기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의식적으로 이미지를 깨려고 한 적은 없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버거울 것 같은 작품을 선택해서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공식적으로는 훈남 공무원, 친구들과 있을 때는 거침없는 욕도 내뱉는 ‘상우’부터 미스터리한 인물에서 악귀가 씐 ‘혜성’까지 반전된 캐릭터를 연기했다. 실제 권율은 어떤 사람인가.
어렸을 때부터 밝고 유쾌했다. 오락부장도 많이 했고, 반장도 했다. 대학생 때도 중, 고등학생 때도 농구와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고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이다. 대학생 때는 학년 대표를 맡았을 정도로 리더십이 있다.
▲한예리를 비롯한 동료 배우들은 매체 인터뷰에서 권율 ‘유쾌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장난기도 많고 호기심도 많아서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드립을 던지는 편이다. (아재 개그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나) 가끔 위태위태할 때는 있다. 아직 그 선을 넘거나 과하게 한 적은 없다. 내가 아재 개그라고 인지하지 못한 순간 아재 개그가 되는 것 같다. ‘아니야’라고 밀어붙이는 순간 아재 개그가 시작되는 거다.(웃음)
▲유쾌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어서 두루두루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식샤2’에서 호흡을 맞춘 서현진의 연락처는 모른다고 했다.
여배우의 연락처를 묻는 게 조심스럽다. 나는 남자들하고는 빨리 친해지는 편인데, 여자들하고는 데면데면하다. (꽃미남 외모여서 처음부터 남자들이 좋아할 것 같진 않은데?) 내가 성격이 털털하고 형제가 있다 보니 하루 이틀만 있어도 금방 친해진다. 축구부 출신인 데다 고등학생 때는 농구로 원정도 갈 만큼 장난꾸러기처럼 자랐다.
▲축구도, 농구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지 않냐. 권율이 못하는 건 무엇인가.
요리할 줄은 알지만, 취미까진 아니다. 나는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다. 끼니를 뗴우는 정도다. 맛있는 걸 먹으면 좋지만, 맛집을 찾아가서 기다려서 먹는 타입은 아니다. 주변에 미식가들이 많긴 하지만, 나는 간단하게 편의점 음식을 먹기도 한다. 못하는 건 딱히 예능 특기가 없다는 것? 신인 시절에 오디션 볼 때 특기 란에 축구, 농구를 쓸 수 없으니 적을 만한 게 없었다.
▲그렇다면 오디션에선 무엇을 보여줬나.
오히려 주어진 연기 지문에 집중했다. 내 성향을 보여줄 수 있는 특기를 적었다. ‘이 친구 이상한 친구네’라고 느낄 만한 것들, 이를테면 영상편지 쓰기나 아이 돌보기를 적었다.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는 감독과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들에 접근했다.
▲아직 권율이 보여주지 않은, 숨겨진 면이 있다면?
하반기에는 운동도 열심히 해서 외형적으로도 남성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다. 미스터리한 인물이 아니라 남성적인 매력이 더 드러나는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떤 이미지가 고착화되기 보다는 지금보다 표면적으로 남성성을 더 보여주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9월 중순까지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다.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 ‘최악의 하루’ 홍보도 열심히 할 예정이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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