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서현진 "난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되길 바라요"
기사입력 : 2016.06.30 오전 7:01
사진: 서현진 인터뷰 / 점프엔터 제공, tvN '또 오해영' 공식 홈페이지

사진: 서현진 인터뷰 / 점프엔터 제공, tvN '또 오해영' 공식 홈페이지


“슬럼프 있었죠. 지레짐작하시다시피 힘든 시간을 겪었고, 극복하지 않고 버텼어요. 시간이 지나길 바랐어요.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용기가 없었죠. 내가 초라한 것 같으니까 연기학원을 꾸준히 다니면서 워크숍과 뮤지컬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걸그룹 멤버가 아닌, 배우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서현진(32)은 지난 2001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밀크로 데뷔했다. 4인조 걸그룹 밀크는 2002년 해체됐고 서현진과 박희본은 배우로 전업해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현진은 2006년 KBS 2TV 드라마 ‘황진이’를 통해 배우로 데뷔해 연기를 시작했다. 단아한 매력과 편안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서현진은 ‘짝패’(2011), ‘불의 여신 정이’(2013), ‘제왕의 딸, 수백향’(2013) 등 사극에서 활약하며 연기 경험을 쌓았다.


서현진은 드라마 ‘삼총사’(2014)를 통해 tvN과 연을 맺었다. 이후 ‘식샤를 합시다2’(2015)에서는 내숭 없는 먹방 연기로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고 최근 종영작인 ‘또 오해영’을 통해 2030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공감을 얻으며 배우 인생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자존감이 낮아도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처럼” 서현진은 “매일 존재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면서 오늘을 버텨내는 우리네 모습이 오해영을 통해 잘 보여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은 외모도 스펙도 뛰어난 동명이인의 오해영(전혜빈 분)으로 인해 ‘그냥’ 오해영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고, 타인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비교당하게 되는 오해영을 무던하게 연기했다. 회사에서는 승진에 밀리고,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해영은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밥 먹는 게 꼴보기 싫어졌다”는 살인 선고와도 같은 이유로 버림받는다. 2030 여성 시청자들은 일도, 사랑도 쉽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오해영의 모습에 격한 공감을 표했다.


“‘난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되길 바라요’라는 대사를 읽으면서 울었어요. 그리고 ‘내 연애의 민낯을 다 보여주자’는 각오로 ‘또 오해영’에 임했어요. 결국 오해영이지만 서현진이 연기하기 때문에 내 민낯을 보여줄 용기가 없으면 공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밀착 다큐를 보는 것처럼 느끼길 바랐어요. 거짓없이 연기했어요.”



순간 숙연한 공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차분한 어조로 읊조리던 서현진에게서 진심이 느껴졌다. 서현진은 “너한테 그렇게 쉬웠던 나를. 어떻게 이렇게 쉽게 버리니”라는 대사를 했을 때 가장 공감했다고도 했다.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 그렇게 느낀 적은 있었죠. 오해영이 우리가 생각은 하지만 내뱉지 못했던 얘기를 하기 때문에 좋아해 주셨다고 생각해요. 그 신은 연습 없이 현장에서 처음 뱉었고, 진짜 많이 울었어요.”


서현진은 털털하면서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로코 여주를 그 누구보다 잘 표현한다. 다음이 없을 것처럼 절실한 연기를 절절하게 토해내고, 철저하게 망가지며 신에 충실한 맞춤형 연기로 ‘현실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결혼식 전날 파혼 당하는 오해영의 에피소드에 눈물을 흘렸다는 한 시청자의 말처럼 “안아주고 싶고 위로해주고 싶은” 오해영에 현실감을 부여한 건 서현진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못난 행동을 하기도 했던 오해영을 서현진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날카롭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말을 뾰족하게 받아들인 순간이 있었어요. ‘예쁜’ 오해영에 대한 오해영의 피해의식을 충분히 공감해 연기했죠.” 지금의 사랑스러운 서현진이 있기까지 그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서현진은 힘겹게, 조심스럽게 그 순간을 끄집어냈다.


그가 직업란에 ‘배우’라고 쓰기 시작한 건 뮤지컬 ‘신데렐라’를 하면서였다. ‘배우’라고 쓰지 못한 이유는 불안정한 직업이라서 언제든 도망갈 구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캐스팅이 되지 않으면, 아쉬울 걱정 없는 사람처럼 떠나고 싶어서 한발을 빼고 있었다. ‘식샤를 합시다2’를 하기 전까진 그랬다.


“‘식샤’를 하면서 연기의 틀을 깨고 방식을 달리 했어요. 연기를 더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식샤’가 끝나고 뮤지컬을 했고요. 내가 담담하게 해놔야 더 많은 작품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마냥 쉬는 것이 두려웠던 그는 주위의 권유로 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작품 현장에서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요. 부족한 저를 반사판으로 예쁘게 비춰주시고, 틀리면 감독님이 잡아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무대에는 나밖에 없어요. 내가 알아서 다 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아요. 뮤지컬을 하고 나서야 ‘배우’라는 자각이 들었죠.”


끝을 알고 시작한다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달라질까. 극중 박도경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서현진이 갖게 된다면 어떤 것을 후회할지 물었다. 서현진은 “무용을 그만뒀던 순간을 후회할 것 같다”고 했다. 4살 때부터 고1때까지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는 “한국무용은 순수예술이다 보니 집중도 높고 자기 만족”이라며 “연기자가 돼서 좋지만 무용을 그만둔 걸 후회한다”고 했다.


“시험봐서 들어간 학교에 전학생이 들어와서 나간 게 개교 이래 제가 처음이었어요. 무용 전공을 잘하다가 길거리 캐스팅이 돼서 갑자기 인문계로 간 게 한달 새에 결정된 거거든요. 부모님도 제가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면 아나운서가 되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무지했어요. 1년 후에 무용하는 친구들한테 ‘왜 안 말렸냐’면서 맨날 울었어요. 10년 가까이 했던 걸 순식간에 그만뒀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까요. 물론 내 의지였지만, 의지가 아닌 순간이 있었죠. 그때가 제일 좋아서 후회하는 것 같아요. 찬란한 시절이었어요.”


무용을 했을 때 집중도가 가장 높았다던 그는 배우 한예리와 중, 고등학교 동창임을 밝히며 “그 친구는 직업이 두 개예요. 무용수, 배우. 그래서 부럽고 현명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띄웠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세월이 흘러 이해되기 시작되기도 하는 것처럼. 예민하지 않은 말도 상처가 됐던 그 시간들이 시간과 함께 씻겨졌는지 묻자 서현진은 “아니”라고 답했다. 실제로 오해영보다 자존감이 더 낮다는 그는 “피해의식을 가졌던 사람과 만나면 지금은 그런 관계가 아님에도 혼자 피해의식을 갖게 되고 작아지는 것 같다”면서 “그런 경험에 유추해 ‘예쁜’ 오해영’에 대한 오해영의 태도를 잡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처 속에 살던 그날의 서현진의 단면을 내보였다.


“아니요.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더 나이가 들면 해결될지 모르겠지만요. 제가 힘들었던 부분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있어요. 힘들었던 시기에 친했던 친구들이 다행히 자리를 잡아서 ‘우리가 직업을 가져서 다행이야’라는 얘기를 한 적은 있어요. 원한다고 가질 수 없는 직업도 아니거니와, 우리 모두 직업이 없어서 ‘직업을 갖게 돼서 다행이야’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게 제 심정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끝에 찾아온 기회. 서현진은 “희망하는 그림은 없다”고 덤덤히 말했다. “1~2년 하고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 지금 하는 작품을 제일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제 목표에요. 좋은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전문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를 속이거나 콧대를 눌러줄 수 있는 말발이 좋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검사, 변호사, 사기꾼이요.”


[인터뷰②] 서현진 “무뚝뚝할 줄 알았던 에릭, 상냥한 매너남” 와 이어집니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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