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윤소희 인터뷰 / CJ E&M 제공
“‘기억’ 촬영하기 직전에 영화 ‘로봇소리’ 시사회에서 우연히 오정세 선배를 만났어요. 정세 선배는 제가 오빠라고 부를 정도로 친해서 선배가 저를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날 저희 모습을 본 이성민 선배가 부러운 눈초리로 ‘우리도 이렇게 친해져야 하는데 내가 낯 가리고 그래서’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이성민 선배의 표정을 보면서 우리가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했었어요.”
이성민과 윤소희의 첫 만남은 ‘걱정’이었다. 작품으로 먼저 인연을 맺었던 오정세와 윤소희는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반면 윤소희와 이성민은 둘 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몇 개월을 동고동락하며 캐릭터로 살아야 하는 두 배우로선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부분. 막상 tvN 드라마 ‘기억’ 촬영 이후에는 서로를 응원하는 멋진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현장 귀요미’ 이성민의 특급 격려에 감동
“이성민·이준호와 점심·저녁 항상 같이 먹어”
“잘할 때까지 연기할 것”
‘기억’은 알츠하이머 선고를 받은 로펌 변호사 박태석(이성민)이 남은 인생을 걸고 펼치는 마지막 변론기이자 진정한 삶의 가치와 가족애를 그린 드라마로 지난 7일 웹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얻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극중 윤소희는 박태석 변호사를 보좌하는 로펌 사무원 봉선화 역을 맡아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또 다른 시장을 개척했다.
김지우 작가는 진심으로 선배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윤소희의 실제 모습과 5년 동안 박태석의 비서로 지낸 봉선화의 애정을 발견하고 고스란히 대본에 적었다. 윤소희는 “비서는 흔한 캐릭터지만 차별점을 두기 위해 캐릭터 안에 저 자신을 녹였어요.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저는 상사인 박태석을 봉선화가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그를 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라고 극중 봉선화 캐릭터의 설정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윤소희의 연기를 본 이성민도 “너처럼 연기해도 되겠다”고 조언해줄 정도로 윤소희와 봉선화는 상당 부분 닮아 있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사람 하나만 놓고 무조건 믿고 따른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봉선화는 이 같은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는 인물이다. 상사가 말하기 전에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눈빛만 봐도 무엇을 말하는지 찰떡같이 알아듣는 파트너가 바로 봉선화다. ‘기억’ 속 박태석 팀은 카메라 밖에서도 끈끈한 팀워크를 과시했다.
윤소희는 “이성민 선배, 이준호 오빠와 첫 촬영부터 끝날 때까지 점심, 저녁을 같이 먹었어요. 제가 낯을 가리긴 하지만, 좋으면 티 내거든요. 두 분과는 성격도 잘 맞았고 무엇보다 진심이 통했던 것 같아요. 준호 오빠와 제가 선배를 잘 따르고 좋아하니까 그 마음을 선배가 받아 주신 거죠”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처음에는 상투적인 얘기로 식사시간을 보냈지만, 가까워지고 나서는 장난도 치고 서로도 위로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한동안 감독님께 혼나서 당황할 때는 이성민 선배가 제 신이 끝나면 ‘잘했어’라면서 안아주셨어요. 선배 덕분에 현장에 대한 애정이 컸고 잘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윤소희는 이성민을 “현장의 귀요미”라고 했다. “4개월 내내 잠도 못 주무시고 알츠하이머 환자로 사셨는데도 항상 귀요미 같으셨어요. 장난도 정말 많이 치시고, 제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리드해 주셨어요. 놀 땐 놀고 연기할 땐 연기하는 진짜 멋진 배우세요. 준호 오빠와 제가 옆에서 보고 부딪히면서 많이 배웠어요.”
2PM 멤버에서 연기자로 안착한 이준호에 대해서도 “똑똑하고 이런 말을 하기 미안할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고 칭찬했다. “준호 오빠가 현장 적응력도 빠르고 성실해요. 콘서트와 연기를 병행하면서 잠 못 자는 와중에도 대본을 찢어져라 봐요. 오빠가 열심히 하니까 이성민 선배가 캐릭터를 잘 잡아주시면서 ‘캐릭터를 갖고 놀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도 해주시더라고요. 실제 나이 차는 3~4살 정도 나는데, 극중 캐릭터의 나이처럼 5~6살 오빠처럼 어른스럽고 잘 이끌어줘서 고맙고 편안했어요.”
‘식샤를 합시다’(2013)에서 통통 튀는 캐릭터로 브라운관에 나타난 윤소희는 2040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은‘연애 말고 결혼’(2014)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섰다. ‘12년만의 재회: 달래 된, 장국’(2014)과 ‘사랑하는 은동아’(2015)와 같은 작품에서도 그가 가진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로 입지를 다져왔다. 그에 반해 ‘기억’은 대중이 인식하는 윤소희를 잘 변주해서 새롭게 풀어냈다는 느낌을 준다.
‘기억’은 윤소희에게 변화의 기점이 됐다. 20대를 대변하는 밝고 발랄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그에게 내면적으로도 성숙한 캐릭터가 주어진 것. 윤소희 역시 높은 톤의 목소리 때문에 주어진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감독님께서 목소리랑 나이는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나이 든 사람 중에도 목소리가 높은 사람이 있어. 풍기는 분위기에 따라 그 사람이 성숙해 보이는 거지 목소리 톤이 중요한 게 아니야. 낮은 목소리는 성숙해 보이는 착각을 만들기에 유리할 뿐이야. 다른 것으로 극복할 수 있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이 작품으로 네가 성숙해졌으면 좋겠다’고 하셨죠.”
‘기억’은 브라운관을 떠났지만 윤소희는 아직 ‘기억’을 떠나 보내지 못한듯 했다. “실제로도 배우는 게 매우 많다. 연기에 녹아들 게 되는 것 또한 많다”며 아쉬운 듯 말했다. “연기로 잘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휴식보다는 연기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싶고요. 앞으로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나 뱀파이어 혹은 ‘사랑하는 은동아’에서 맡았던 역할처럼 평범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다시 연기해보고도 싶고요. 내가 무엇을 잘하는 지 모르니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많이 경험하고 싶고, 무언가가 주어졌을 때 잘 해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시청자에게 ‘윤소희를 이렇게 기억해달라’고 한마디 남겨달라는 말에 그는 곱씹어 말했다. 진실에 호소하는 ‘기억’ 속 인물들처럼 윤소희는 앞으로 자신을 지켜봐 줄 시청자에게 진심을 꾹 눌러 담아 전했다. “연기를 잘할 때까지 계속할 텐데, 저는 항상 ‘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 ‘열심히 하려는 배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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