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끝나고, 노트북을 닫으며 김준면에게 "수호일 때와 김준면일 때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는지 그는 기자의 시선을 붙잡고 답했다. "데뷔 때는 모든 분이 어렵고 무서워서 경직돼 있던 게 사실이에요. 연기하면서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찾다 보니 경직된 것들이 풀어진 것 같아요. 연기하는 형들의 자유로운 모습에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친숙하게 다가가는 배우이자 가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사진: 조선일보 일본어판 이대덕 기자, pr.chosunjns@gmail.com 영화 '글로리데이' 김준면 포스터
청춘의 옷을 입은 EXO 수호의 또 다른 이름은 ‘김준면’이다.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글로리데이’(감독 최정열)로 관객과의 첫 만남을 가진 그는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 대신 본명 ‘김준면’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수호가 스크린에 아련하게 담긴 것은 이미 오래전에 예견된 일 일지도 모른다.
김준면은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입학했다. 연습생 생활도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던 그는 결국 엑소 데뷔를 앞두고 한예종을 자퇴했다. 김준면은 평소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탄수화물과 술은 자제하고 개인 시간에는 운동을 하며 예의를 중요시 여긴다. 그렇게 시간은 모였고 ‘반듯한 청년’ 김준면이 되었다.
찬란한 청춘의 이면
믿음의 시간이 만든 EXO 수호, 그리고 배우 김준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청춘, 꽉 채워나가고 싶어”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만물의 푸른 봄철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나이 또는 그 시절을 뜻한다. 누구나 ‘청춘’을 겪고, 떠나 보내고, 마음에 새기지만 누구나 ‘같은 청춘’을 맞이하고 떠올리진 못한다. 김준면이 주연을 맡은 영화 ‘글로리데이’의 청춘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고, 세상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게 된다.
스무 살 첫 여행을 떠난 네 친구의 멈춰버린 그날을 가슴 먹먹하게 그린 청춘영화 ‘글로리데이’는 극장 밖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찬란하게 빛나야 할 저 아이들의 상처는 누가 어루만져줄까, 아이들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줄까. 아이들의 시선에서 본 ‘글로리데이’는 어둑한 바다와 같다.
‘글로리데이’를 준비하고, 함께하고, 지켜보고 있는 김준면의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듣고 싶었다. “제 생각에는 ‘글로리데이’가 밝을 것만 같았던 청춘이 어른들에 의해 억눌려 검게 물들어가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아요. 스크린 밖 관객은 그 어둠에 청춘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요?” 한 글자, 한 글자 조심이 꺼내어 말한 김준면은 “첫 질문부터 어렵네요”라며 미소 지었다.
스무 살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나이다.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자의든 타의든 살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시기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다. ‘글로리데이’ 속 아이들도 “앞으로 뭘 할거냐”고 서로에게 묻고 “우린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냐”고 자책하기도 한다. 이상만 좇을 수 없고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시기에 도래한 것이다. 김준면의 스무 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다 잘될 수 없잖아요. 연습생 때는 저만 최선을 다해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았죠. 우리 영화 속 친구들이 마주한 사회의 모습처럼 저 역시 연습생을 하면서 생각처럼 데뷔가 빠르지 않아서 힘든 점이 많았어요.”
똑같은 잣대로 누군가의 삶을 판단할 수 없다. 힘듦의 깊이도, 기쁨의 깊이도 본인만이 알 수 있다. 김준면의 배우 활동은 기존 ‘연기돌’의 시작 선과 비교해볼 때 조금은 늦은 출발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그는 “연기를 길고 오래하고 싶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은 없다”고 했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배우 김준면을 바로 서게 하는 힘은 ‘믿음’에 있다.
“나 자신을 믿어야 버틸 수 있어요. 나를 믿어야 주위 사람들을 믿을 수 있고, 확신도 생길 수 있죠. 그 믿음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데뷔도 늦어졌고, 사실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셨고, 그때의 저도 저 자신을 믿었기에 상우를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준면이 연기한 ‘상우’는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입대를 택한 인물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상우는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할머니를 향한 속 깊은 효심과 마음 씀씀이를 가진 아이다. “상우는 군대에 대한 두려움과 할머니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어요. 상우의 흔들리는 마음을 연기할 때마다 계속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할머니에게 쓴 편지도 아침에 촬영 나가기 전에 바깥을 보면서 읽고 갔어요.”
“실제로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별세하셨어요. 할머니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살아생전에는 할머니가 시골에 사셔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뵈었어요. 할머니를 부모님처럼 여기는 상우의 감정을 그때의 저는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하면서 조금은 그 부분에 고민이 됐는데,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이가 드신 엄마라고 생각했죠.”
‘글로리데이’가 만들어지는 시간만큼은 오로지 ‘글로리데이’에만 집중했던 김준면. 아스팔트 위에 누워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김준면의 모습이 영화 초반부터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는 건 그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영화에 대한 해석은 자유롭고, 모두가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기억할 테지만, ‘글로리데이’의 주역으로서 그가 전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지 않을까.
“청춘에게는 희망을 줬으면 좋겠어요. 비록 ‘글로리데이’는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결국엔 ‘글로리데이’일 수 있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기를 바라요.” 그의 대답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덧붙여 해석해보면 이렇게 읽히기도 했다. <스크린 밖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글로리데이’ 속 어른이, 변해버린 아이들이 되지 않도록 영화의 진정한 의미를 반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김준면의 생각들을 필름 사이 사이에 덧붙이고 나니 마지막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준면에게 ‘청춘’은 어떤 의미인가요?” 대답이 나오기 몇 초 전, 의외의 대답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숙였던 고개를 들어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했던 김준면의 이제껏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제부터 청춘이었는지, 끝났는지 모르겠어요. 연습생 때부터 대학생활, 데뷔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열심히 달려왔어요. 꽉 채워 살았기 때문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청춘을 계속해서 꽉 채워나가고 싶어요.
[인터뷰컷] EXO 수호가 말하는 류준열·지수·김희찬의 강점 과 이어집니다.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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