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이준익 감독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이은주 기자,star1@chosun.com
"오만이 늘어서 은퇴 망동을 했지. 오만의 형벌이라고 생각해 나는."
이준익 감독은 영화 '평양성'이 흥행하지 않으면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 흥행 결과에 그는 더는 상업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주워담지 못한 그 말은 감독의 속에 남아 그를 변화시켰다. 은퇴선언 후 그는 '소원'에 이어 '사도'라는 작품을 들고 관객들을 찾았다.
개봉에 앞서 열린 '사도' 제작보고회에서 이준익 감독은 "기대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왔다"라고 밝혔다.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기대하지 말아달라니 의아했다. 인터뷰 현장에서 이준익 감독은 이에 대해 "사실 굉장히 상업적으로 불편한 영화거든, 불리하고. 누구나 아는 이야기니까 당연히 스포일러가 없는 거고. 누구나 아는 대로 찍지 않으면 안 그랬다고 뭐라고 할거고, 아는 대로 찍으면 왜 찍었느냐고 그럴 거고. 그런 생각에 개봉 전에 염려가 컸죠. 불안 초조했고"라고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영화 '사도'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사도세자(유아인)가 아버지 영조(송강호)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음을 맞게 된다는 내용. 영화 '사도' 역시 그 흐름과 한치도 다름이 없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는 하나의 사건을 놓고 사연으로 구성한 영화"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다 아는 그 이야기에서 사도라는 인물을 가운데 놓고 전후좌우의 관계망으로 들어가는 영화라고 말한다.
"과연 사도를 누구나 다 안다고 하는데, '주체적으로 아는가?'라고 자문할 때, 아닌 것 같았어요. 지난 몇 년간 정조를 주체화시키면서 사도는 대상화돼 당쟁의 희생물로 이야기되었어요. 사도를 주체적으로 담기 위해서는 사도 한 명만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도가 과연 미쳐서 백여 명을 죽였을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거죠. 사도는 영조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정조의 아버지이기도 하잖아요. 그 양면성을 온전히 보여줘야 사도에 대해 주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56년에 걸친 이야기를 2시간 안에 압축시켜서라도 반드시 담아야 했죠."
무모한 도전이었다. '사도'는 계속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사도가 뒤주에 갇힌 첫째 날과 사도의 어린시절이 전환된다. 그리고 다시 둘째 날인 뒤주에 갇힌 시간으로 이동하고, 이를 반복한다. 화면 전환도 인물의 얼굴에서 이뤄진다. 영조, 사도 뿐만이 아니다. 혜경궁 홍씨, 정순왕후, 어린 정조의 얼굴 역시 스크린에 가득 채워졌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시간의 흐름을 달리하기 위해 4세부터 28세까지를 보여줘야 했던 '사도' 역할은 유아인을 비롯해 무려 세 명의 배우가 연기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사도'속 인물들에게 마음 한 칸을 내어줄 수 있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는 세대 간에 따라 달라 보이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파블로 네루다의 시 중, '어릴 적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구절이 있어요. 자신의 아버지도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있었을 거고요. 그들 각자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들로 뒤범벅된 많은 사연이 있을 거예요. 손자, 아버지, 할아버지. 3대가 함께 '사도'를 보면 각각 다른 부분에서 눈물이 감돌거라고 생각돼요. 아버지의 어릴 적 그 아이가 어디 갔을까 확인해보고 싶다면 같이 가서 보면 돼"라고 덧붙인다.
그의 말처럼 사도를 둘러싼 가족들은 현재의 우리를 거울로 비춘다. "너는 이렇게 좋은 때에 어찌 공부를 게을리할 수 있니"라는 영조(송강호)의 말도, 아버지를 향해 "네! 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울분을 토하는 사도(유아인)의 말도, 아이(어린 정조)를 감싸며 고개를 가로지르는 혜경궁 홍씨(문근영)의 마음도 어느 것 하나 모르는 척할 수 없다.
"사람은 다 연민의 대상이라고 봐. '사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상황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해요. 충정을 지키기 위해 평생 일군 책을 밟고 올라가 스스로 목을 매는 사람의 선택이나, 인원왕후(김해숙)가 세자 살리겠다고 '그럼 내가 죽어야지, 죽으면 되겠네, 수라 들이지 마라'하는 것도 모두 주체적인 선택이잖아요. 단 한 명도 자기 삶의 위치에서 누구에게 끌려간 인물이 없어요. 주체적 삶의 선택과 행동들을 난, 다, 사랑하고, 그 사랑의 끝이 연민인 거라고 생각해요."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는 유독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그는 이를 "동정이 아닌, 사랑의 가장 높은 지점인 연민"이라고 표현한다. 은퇴 선언 이후 2년 동안 그는 제대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하는 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변질되어 썩어버리거나, 변화해 발효되는 것. 그는 "나이도 먹고 사람이 좀 발효가 되어야지. 부패하면 되겠어요. '소원'이라는 작품으로 복귀할 때도 논란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야기에 정성을 다하면 관객들도 알아봐 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임했어요"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시 중에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있어요. '내게 손님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 인생 전체가 오는 것이다, 그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라는 문구예요. 극장에 와주시는 관객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 인생 전체가 오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실망감이 들면 얼마나 미안하겠어요. 만든 사람 입장에서 그런 마음이겠죠."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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