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은밀한유혹' 임수정, 성숙…ING
기사입력 : 2015.06.09 오전 7:57
은밀한 유혹 임수정 /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은밀한 유혹 임수정 /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저는 눈으로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임수정의 말은 영화 <은밀한 유혹>으로 입증한다. 멜로와 스릴러라는 상반된 장르가 함께 있는 영화 <은밀한 유혹>에서 임수정의 '눈빛'은 대사보다 큰 힘을 갖기 때문이다.


<은밀한 유혹>(감독 윤재구)에서 임수정은 빚더미에 오른 절박한 상황에서 '회장'(이경영)의 아내가 되어 천문학적 액수의 재산을 상속받자는 '성열'(유연석)의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목적을 향해 가는 '지연' 역을 맡았다. 회장을 유혹하는 모습부터, 갑작스러운 회장의 죽음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상황 속에 놓인 지연의 상반된 모습을 윤재구 감독은 "처음부터 임수정을 두고 썼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마음이 확 열리죠. 사실 되게 감동이에요. '당신을 두고 썼어요' 이 말에 어떤 배우가 안 흔들리겠어요. 어쩌면 귀하죠, 그런 작품은. 내가 혹시 부족하더라도 어떻게든 '지연'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 출연을 빨리 결정지었어요. 제가 거의 제일 처음 합류했죠. 제 출연 결정 이후에 다른 배우뿐만 아니라 촬영팀, 미술팀 등 스태프들도 하나씩 꾸려졌으니까요."


'당신을 두고 썼어요'라는 솔깃한 감독의 제안, 임수정은 처음이 아니었다. 영화 <각설탕>때도 이환경 감독에게 그런 말을 들었었다. "나 비슷한 것 반복한 것 같앙"이라는 애교 섞인 투정 뒤에 "그때도 정말 고독하고 외로웠거든요. 제가 그런 말에 약한가 봐요. 그렇다고 제가 캐스팅 순위에 연연하지는 않아요. 박찬욱 감독님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계속 캐스팅이 안 돼서 나중에 저한테 '너 이거 한 번 볼래?'하고 주셨던 작품이거든요. 딱 한 번 보고 너무 재밌어서 '저 할래요' 했죠"라는 말을 덧붙인다.



임수정이 무엇보다 끌린 것은 시나리오였다. 그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캐릭터에 빠져드는 편이다. 그러고 보면 임수정의 필모그라피는 참 특별하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내 아내의 모든 것>, <장화,홍련> 등 그녀의 대표작을 채운 캐릭터는 하나같이 독특하다. 그리고 그런 면은 '지연'에게도 이어진다. 마치 두 편의 영화인 듯, 한 편의 영화 속에 전혀 다른 눈빛을 담아냈다. 초반에 아이 같은 순수한 눈빛이 묻어났다면, 후반부에는 변해가는 상황 속에 눈물이 반쯤 고여있는 겁에 질린 눈빛이다.


"눈빛을 되게 많이 강조하셨어요. 감독님께서 특별한 대사나 설명 없이 인물들의 관계를 오고 가는 눈빛만으로도 관객들이 유추할 수 있길 원하셨어요. 초반에 특별히 주문하신 것도 '너무 섹시하게 돌아보지 마라' 였고요. 저도 계속 모니터하면서 '눈빛이 세다, 그렇죠?' 하고 다시 해보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조절했어요. 저는요, 연기에 접근할 때 감정을 눈으로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눈빛을 조절할 수 있는 약간의 기술이 생긴 것 같아요. 감독님께 여쭤보면서, 직접 모니터하면서 계속해보는 거죠."


<은밀한 유혹>이라는 말처럼 임수정은 영화 속에서 '대놓고 유혹'하지 않는다. 만약 '유혹'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작품을 선택한 관객이라면, 주목해야 할 장면으로 유연석과 임수정의 키스 장면을 꼽겠다. 관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줘야 하는 장면이었다. 다음날 회장 곁이 아닌 소파에서 눈 뜨는 임수정과 맨몸으로 쓰러져 자는 유연석의 전날 밤을 관객들의 상상으로 채울만한 키스 장면을 만들어야 했다.


"저는 만족해요. 제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영화 속 키스 장면처럼 찍힌 것 같아요. 되게 진한 키스 장면이잖아요. 남자 배우의 남성성이 확 드러나는 장면이죠. 숨이 탁 막힐 것 같고. 그런 연기를 다른 여배우가 아닌 제가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연기였다. '지연'은 한 장면 속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랬다. 성열을 만나고 돌아서는 지연의 얼굴에 살짝 번지는 표정은 사랑과 치밀한 계획 중 어느 편에도 무게를 두지 않는다. 시나리오에도 '뒤돌아보는 지연의 얼굴로 카메라가 들어간다 END'라는 한 줄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임수정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제가 머리로 준비하고 예상한 연기를 현장에서 다 버리고, 지연이 처음 그 상황을 맞닥뜨린 것처럼 저도 오감을 열고, 본능으로 연기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게 지연을 표현하는 답이지 않을까."


홀 린 듯 시작한 작품이었다. '임수정이 한대요? 그럼 저도 할래요'라는 스태프들의 믿음이 모였다. 그래서 더욱 <은밀한 유혹>의 개봉은 임수정에게 특별한 의미다.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설 때나, 현장의 일원으로 있을 때. 두 가지 면을 이 영화를 통해 배웠어요. 저도 경력이나 제 나이 때문에 어느새 선배의 위치에 놓여있고, 영화 안팎으로 제가 잘 끌어가야하는 그런 위치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많이 어렵고, 힘들고 외롭고 한 적도 있지만, 잘 끝이 나니 부쩍 이 역할을 통해 성장했구나, 더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요. 만약 <은밀한 유혹>을 보신 관객들에게 '임수정도 성숙했네'라는 말을 듣는다면 저도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② 임수정 "제 유혹의 기술이요?"] 로 이어집니다.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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