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도연 씨, 왜 자꾸 '힘든 역'만 하세요?
기사입력 : 2015.05.31 오전 8:31
영화 '무뢰한' 전도연 더스타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영화 '무뢰한' 전도연 더스타 인터뷰 / 사진 : 더스타 현성준 기자,star@chosun.com


당신이 '전도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첫 기억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에이즈에 걸린 여인('너는 내 운명'), 단아하지만 색이 있는 여인('스캔들-조선 남녀상열지사'), 그리고 최근 전도연이라는 이름 앞에 가장 많이 붙는 '칸의 여왕'일 수도 있겠다. 연령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가진 전도연에 대한 첫 기억은 영화 '약속' 그리고 드라마 '별을 쏘다'에서 특유의 콧소리로 말을 했던 톡 쏘지만, 굉장히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첫 기억이 어떻든 상관없다. 영화 <무뢰한>을 보면 전도연에 대한 기억이 분명히 또, 달라질 테니까. 전도연은 영화 <무뢰한>에서 텐프로 출신으로 잘 나가던(?) 과거를 뒤로하고 지금은 빚더미에 앉은 채 살인범인 연인 준길(박성웅)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단란주점의 마담으로 일하는 '김혜경' 역을 맡았다. 그리고 '혜경'은 살인범인 연인을 쫓기 위해 위장한 채 자신에게 다가온 형사 '재곤'(김남길)에게 마음 한켠을 주게된다.


<무뢰한>을 보면서 가장 독특한 것은 분명히 진한 사내 냄새나는 영화임에도 독보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인 전도연이다. 심지어 전도연은 다분히 주관적일지도 모르지만 <무뢰한>에서 굉장히 '예쁘다.'


"'김혜경'이라는 캐릭터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외모로 호감을 주고 매력적으로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매력이나 여성성으로 어필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김혜경이 에뻐 보여야 한다는 전제는 저도, 감독님도 없었어요. 그냥 '그렇게 살아남은 여자의 무기가 뭘까?'라고 생각하면 외모보다 그녀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었어요.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질 수 없는 자존심. 그래서 의상에도 더 신경을 썼던 것 같고요."



모자를 눌러쓴 채 황급히 돌아서는 연인 준길(박성웅)에게 한 번만 안아달라고 말하는 전도연의 눈빛이나, 홀로 앉아 소주병에 "짠"하고 한 잔을 원 샷 하는 모습, 내몰린 채 구석에서 재곤(김남길)을 쏘아보는 눈빛은 <무뢰한>에서 많은 말보다 '혜경'을 진하게 설명한다. 섬세한 묘사는 모두 시나리오에 있었다. 전도연이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여자 김혜경이기도 하지만 인간 김혜경"에게 조금 더 초점을 맞춰서 표현하는 것이었다.


"김혜경은 늘 선택당하는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회장이든, 박준길이든. 선택 당한 데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걸 사랑이라고 믿고 싶어 한 것 같아요. 그런 여자가 마음을 열어서 선택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면 정재곤(김남길)일 것 같았어요. 그런면에서 '김혜경'은 강한 여자기보다 부서지기 쉬운, 깨지기 쉬운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녀가 처한 상황들 속에서 굉장히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그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김혜경'의 역할처럼 <무뢰한>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속에서 전도연은 참 '강한 여자'였다. 시나리오가 15년을 붕 떠 있었다. 오승욱 감독이 '시나리오'가 아닌 '연출'로 이름을 올린 것이 15년 만이다. 오랜 시간 제작이 지연되면서 캐스팅되어있던 이정재가 불가피하게 멈춰 섰다.


"제가 <무뢰한>을 중심을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 저도 '핑계 삼아 나도 빠져?'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도 연이어서 영화 <남과 여>의 일정이 잡혀있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15년 만에 작품을 하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기특하게 '나라도 힘이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대책 회의에 들어갔고 오늘 날의 김남길 씨까지 합류했죠. 감사하죠. 촬영 일자가 더 지연됐으면 저도 출연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이었거든요."

영화 '무뢰한' 전도연-김남길 스틸컷 / 사진 : CGV 아트하우스 제공

영화 '무뢰한' 전도연-김남길 스틸컷 / 사진 : CGV 아트하우스 제공


김남길은 인터뷰에서 전도연의 조언에 큰 힘을 얻었었다고 말했다. 전도연은 <밀양> 촬영 당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힘을 북돋워 주었다고. 이 말을 전하자 그 역시 말을 덧붙인다.


"저도 <밀양> 촬영 때, 제가 너무 알기 힘든 감정을 보여줘야 했고 모든 게 낯설었던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님께 가장 많이 들은 게 '아무것도 표현하려고 하지 마라'라는 말이었는데,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냥 내가 어떤 감정이나,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있으면 그게 꼭 연기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거라고 얘기하셨던 것 같아요. 김남길 씨도 그랬을 것 같았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죠."


전도연이 언급한 <밀양>도 그랬지만 <너는 내 운명>부터 <하녀>, <카운트다운>, <집으로 가는 길>까지 유독 힘든 작품들을 필모그래피에 올려놓았다. 연이어 힘든 작품에 발을 놓는 이유로 전도연은 "저의 개인적인 성향이 뻔하고, 쉬운 것보다는 궁금하고, 자꾸 그래서 어떻게 됐지? 생각나는 것에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그런 작품들이 제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낯선 상황이기도 하고요. 작품에 대한 관심이 궁금증으로 연결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도연은 아직도 연기하는게 너무 재밌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연기를 하면서 느끼는 고통이나 힘든 것 등 많은 것을 느끼잖아요. 그걸 힘들어하면서도 즐기는 것 같기도 해요. 느껴지는 여러 감정들을 즐기기 때문에 계속 일하는게 재미있고 현장이 좋고요"라고 덧붙인다. 이런 이유로 <무뢰한>을 본 '칸 국제영화제' 측에서는 "믿고보는 전도연"이라는 평을 내놨나 보다. 국내에서도 듣기 어려운 평을 '칸 국제영화제'에서 들었다.


"믿기지 않아요. <무뢰한>을 잘 봐주셔서 '혜경'이까지 호의적으로 봐주신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저도 얼떨떨하긴 해요. '정말요? 제가요?'라고 되게 기분이 좋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하고 그래요. 앞으로 작품을 더 잘해야 한다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라고 다독여주고 격려해주는 느낌이요."


글 조명현 기자 / midol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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