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킬미힐미' 지성, "다중인격 연기 비결? 다 제 모습이에요"
기사입력 : 2015.03.18 오전 10:01
'킬미힐미'에서 7개의 인격을 가진 재벌3세 차도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지성 / 사진: 나무엑터스 제공

'킬미힐미'에서 7개의 인격을 가진 재벌3세 차도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지성 / 사진: 나무엑터스 제공


“이 작품 누가 주인공이래요?” MBC ‘킬미, 힐미’ 캐스팅 기사가 하나씩 날 때쯤 업계는 7개의 인격을 지닌 차도현을 누가 맡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1인2역도 힘든 마당에 7개의 인격이라니 애초부터 ‘불가능’이란 말이 나왔고 흥행예측도 반반이었다. 대박나거나, 쪽박차거나. 돌고 돈 대본은 부드러운 매력으로 ‘호감’배우 선상에 있던 지성에게 돌아갔다.


‘킬미, 힐미’ 제작발표회 당시 지성은 “내가 하면 잘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 작품을 기다렸노라 말했다. 내노라하는 배우들조차 ‘내가 연기하기 어려운 영역’이라 말한 다중인격 캐릭터를 지성은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였다. 시작부터 자신 있어하던 지성은 드라마 종영 후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 “내가 연기를 잘한다기 보다 왠지 자신 있었다”며 한결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것 저것 따지면 할 게 없어요. 저는 모험을 좋아해요. 내 선택에 뜻이 있어 이 작품을 선택한 거라 생각해요. 물론 제가 선택해서 안 된 작품도 많아요. 잘할 수 있었는데도 사극만 하면 존재감이 없어지니. 했는지도 몰라.(웃음) 사극 몇 작품 했는데 ‘사극은 해봤냐’고 그래요.”


1999년 드라마 ‘카이스트’로 데뷔한 지성은 ‘올인’(2003),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2004), ‘뉴하트’(2007), ‘보스를 지켜라’(2011), 대풍수(2012)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차근차근 연기 내공을 쌓아왔다. 지난 2013년 황정음과 첫 호흡을 맞춘 KBS 드라마 ‘비밀’로 수목극 왕좌를 기록하며 ‘미친 커플케미’를 선보였다. 지성은 ‘비밀’에 이어 최근 종영한 ‘킬미, 힐미’로 연이어 황정음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비밀’의 스포트라이트가 황정음에게 비쳤다면, ‘킬미, 힐미’의 스포트라이트는 지성에게 향했다. 서로가 돋보여야 할 순간을 알고 작품만 생각했던 두 배우의 신뢰와 배려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고, 호평도 이끌어냈다.


“’킬미, 힐미’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 뿐이지 드라마의 성공 기준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 ‘킬미, 힐미’가 정말 좋았어요.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고요.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배우답게 진심으로 작품만 생각하고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달려들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제게 연기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줬어요.”



‘기억해. 2015년 1월 7일. 오후 10시 정각. 내가 너한테 반한 시각’ 오글거리는 작업멘트와 가죽재킷을 입고 아이라인을 그린 ‘상남자’ 신세기는 차도현의 첫 번째 인격이다. 치명적인 매력의 신세기로 여심을 훔친 지성은 금세 핑크색 교복에 요염하게 틴트를 바르는 당돌한 여고생 안요나로 분해 시청자의 배꼽을 잡았다. 안방극장을 설레게 했다 짠하게 만드는 ‘지성의 마법’은 ‘킬미, 힐미’ 폐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성은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박서준(오리온 역), 황정음(오리진 역)과의 뒷이야기를 전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서준이와 뽀뽀신을 찍을 때 오글거린단 생각은 안 해봤어요. 저는 뽀뽀하는 척을 했는데 오히려 서준이가 제 입술에 진짜로 뽀뽀했어요. 자기가 와서 해놓고 ‘어!! 어!!’ 이러길래 ‘네가 했잖아’라고 했죠. 서준이 참 귀여웠어요. 뽀뽀신이나 ‘이빨 보이지마’와 같은 대사, 머리 때리는 장면 모두가 애드리브였어요. 그런 애드리브가 나올 수 있게 도와준 건 다 동료들이에요. 정음이가 차 안에서 제가 처음으로 요나로 바뀌었을 때 절 보면서 어이없어 하거든요. 그때 제가 ‘뭘 봐’라고 하니까 반응이 없어서 ‘기지배’라니까 또 반응이 없었어요. 리허설을 안 하고 해서 그런지 정음이가 웃음을 참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야! 너 이빨 보이지마’ 하고 이빨을 잡아버렸죠. 그러면서 하나둘 씩 애드리브가 생겼어요. 배우들 호흡이 없었으면 생길 수 없었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자살 충동’ 고딩 안요섭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딩 안요나의 매력 덕분인지 지성의 팬층은 더욱 두터워졌다. 촬영장을 찾은 여중고생들은 지성을 아이돌 마냥 좋아했다고.


“애들이 막상 만나니까 지성오빠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저씨라 부르기도 그러니까 되게 망설이더라고요. 환호를 지르려다가 ‘어떡하지?’ 하면서 눈치 보길래 제가 요나 컷을 찍을 때 딱 쳐다보면서 ‘뭘 봐 이 지지배야! 지성언니, 해봐’이러니까 애들이 ‘언니~’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그래그래 그렇게 인사해. 나 누구라고? 언니! 이것들아 빨리빨리 집에 들어가’ 하니까 애들이 정말 좋아했어요.(웃음) 전 진지한 과라 사람들 웃길 줄 모르는데 이번에 웃길 수 있는 요소를 몇 가지 얻었어요.”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지성은 어떻게 7개의 인격을 만들어냈을까. 캐스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품에 들어갔는데 연기 비결이라도 있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지성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7개 인격 모두 만들어냈다기 보다 다 제 성격이에요. 제 나이에 걸맞게 살아가야 하니 실제 성격은 신세기와 차도현을 섞어놓은 것에 가깝죠. 예를 들어 제 안에는 요나가 있어요. 요나의 애교를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보여드렸어요. 엄마를 웃게 하려고 까불었죠. 그리고 요섭이처럼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제가 살면서 한 번쯤 느낀 기분은 고스란히 담았고요. 힘들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요섭이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고, 사람들한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신세기는 남자들은 늘 남자답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저도 어렸을 때 운동을 했고,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와일드한 모습이 있을 거고요. 페리박은 저 또한 여수에 산 적이 있어서 그 기억을 전하고 싶었죠. 그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제 안에 나오는 모습들이에요.”


지금은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지성도 한 때는 관심 밖 외톨이었다. 배우로 성장하기 까지 배워야 했고, 적응해야 했고, 넘어서야 했다. “모두가 내 연기를 지켜봐 줄 수 있는 시점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가 그에게도 분명 있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기다린 끝에 지성은 ‘연기대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대중의 인정을 받았다. 지성은 극중 차도현처럼 친절하고 겸손하다. “대상이 뭐예요? 제가 대상을 받는 건 제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받으면 정말 좋겠죠. 정말 행복해서 울 것 같아요. 그런데 저한테 대상이 올까요?”


화양연화(花樣年華.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를 맞은 지성은 유례없던 다중인격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처럼 다시금 시청자를 놀라게 만들 준비가 된 배우다. 높아진 관심만큼 어깨가 무거울 법도 한데 차도현의 얼굴을 한 지성은 보는 사람이 설득 당할 만큼 편안해 보였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le vent se leve, il faut tenter de vivre)’고 읊조리며 차도현을 떠나가던 안요섭처럼.


“어떤 작품이 저한테 올지 기대돼요. 제가 ‘킬미, 힐미’ 7인격을 부담 안 가진 것처럼 차기작에 대한 부담도 없어요. 제 인생은 등산하듯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저는 시원하게 내려갈 준비도 되어 있어요. ‘킬미, 힐미’가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주길 바라지만 저는 빨리 잊고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죠.”


글 장은경 기자 / eunk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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